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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에 빠지다.

어느날 내 땅에 거대한 쓰레기산이 생겼다.

발간일 2022년 1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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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고 죽어버릴까 고민했어.
만일 내가 죽으면 나라가 해결해줄까 싶어서.”

대구에 사는 문수용(81), 김순연(79) 씨 부부에게는 경북 경산시에 소중한 땅이 하나 있었다. 맨손으로 시작해 자식 4명과 동생들을 돌보며 몸이 부서져라 일해 모은 돈으로 2005년 마련한 노후 대비용 공장 부지였다.
2019년 3월 22일. 손 모 씨(62)가 그들의 땅을 임차하겠다고 찾아 왔다.
그 때는 몰랐다. 이날을 두고두고 후회할 것을.

“낮에 깨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숨이 안 쉬어져서 하루에도 몇 번씩 집 밖으로 뛰쳐나가서 심호흡을 했어.

밤에는 계속 눈물이 나서 잘 수도 없었지.
인생 말년에 이런 꼴을 보려고 살았는지 자괴감이 들어.”

3년 반이 넘게 흘렀지만 노부부는 손 씨와의 대화를 정확하게 기억한다고 했다. 김 씨는 “직접 만나보기까지 하고 계약했는데… 이제는 사람이 무서워서 믿을 수가 없다”며 몸서리를 쳤다.

"어떤 일을 하시려고요?"

"비닐재생업을 하려고 합니다."

계약서와 손

"다른 고철이나 고물, 폐기물은
절대 갖고 들어오면 안돼요.
특약으로 추가해도 되죠?"

"그럼요."

도장찍기 전 계약서
떨어지는 사람
쓰레기 산
덫

그렇게, 그들은 쓰레기산의 덫에 빠졌다

노부부는 ‘쓰레기 덫’에 빠진 피해자 122명 중 한 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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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원, 20원도 아끼면서 살았지. 70살까지 일했어. 동네에서 남들 심부름도 하고 국화빵도 구워서 팔고, 구멍가게, 식당, PC방… 안 해본 일이 없어.

자식이 넷이라 한 명은 업고, 우는 딴 아이는 달래며 가게를 봤지…갈빗대가 부러져도 가게에 나갔어.

그렇게 빚 다 갚고 예순 두 살에야 마련한 땅이었는데, 너무 억울해서…”

김순연 씨는 울먹이면서 그날의 얘기를 들려줬다.

“집에서 낮잠을 자다가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눈이 저절로 떠졌어.
잠이 덜 깬 채로 앉아있는데 친척한테 전화가 온 거야.”

2019년 4월 19일. 손 씨가 부부의 땅을 빌린 지 19일째 되는 날이었다.

수신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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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표시
실루엣 실루엣

"이모, 지금 이모 땅 지나가는 길인데
쓰레기가 쌓여 있어요! 혹시 보셨어요?"

"그게 무슨 소리니?"

"빨리 와보세요, 누가 여기 쓰레기
부어서 산더미같이 쌓아놨다고요!"

날벼락 같은 이야기에 차를 타고 달려간 부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쓰레기 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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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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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재생업’을 하겠다던 손 씨가 그들의 땅에 갖고 들어온 것은 비닐이 아닌 약 3000t의 ‘불법 쓰레기’였다. 쓰레기는 넓이가 3951㎡(약 1197평)인 공장 부지를 구석구석 빈틈없이 채웠다. 285㎡(약 86평)인 공장 건물은 쓰레기로 가득 차 부풀어 오르면서 벽에 금이 갈 정도였다.


평화로울 줄만 알았던 노부부의 말년이 그렇게 ‘쓰레기산’에 깔려 무너져 내리는데 걸린 시간은 19일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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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전쟁은 이날부터 시작됐다.

여든을 앞둔 노부부는 더 이상 일당이 공장에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도록 몸으로 이들을 막기로 했다.

"사흘간 밤새 철문 앞에 차를 세워놓고 지켰어
칠흑같이 어두운데 밤에 비까지 오고
우리 둘만 있으니까 너무 무서웠지.

사람들이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깡패'라는 거야.

그런 얘기까지 듣고 나니 차창을 깨고 우리를 끌어내는 건 아닐까
겁이 났지만 벌벌 떨면서도 차로 막고 지켰어"

쓰레기를 들여오려던 중장비와 지게차가 부부에 가로막혀서 되돌아갔다.
손 씨 또한 연락을 끊고 잠적해버렸다.

나중에 드러난 사실이지만 손 씨는 쓰레기 전문 투기 조직의 일원이었다. 쓰레기산을 만들기 위해 계획적으로 부부의 땅을 임차한 것이다. 손 씨 일당은 그해 부부의 땅 외에도 경북 고령군과 김천시에 쓰레기를 불법으로 산처럼 투기했다.

계약서 이미지 계약서 줄글

‘임차인은 비닐재생업종 외 기타 고철·고물 폐기물 입고는 불허한다.’

부부가 사전에 대비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부부는 부동산임대차계약서에 이 같은 특약까지 넣었다.
부부가 보관하고 있는 계약서에는 아직도 손 씨의 붉은 지장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전문 투기조직이 작당한 계획범죄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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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투기행위를 막거나 적어도 피해를 줄일 기회도 있었다.
손 씨가 공장을 임차한 지 이틀 만인 4월 3일부터 주민들이 "누군가
폐기물을 무단 투기하고 있다"며 잇따라 경산시에 신고했던 것이다.

경산시 직원이 4월 4, 8, 15일 현장에 나와 손 씨의 투기행위를 눈으로
확인했지만 "반입을 중단하라"는 말만 했을 뿐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땅 주인인 문 씨에게도 이 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5월 초 손 씨는 경산시의 연락도 받지 않고 잠적했지만 시가 경산 경찰서에
수사의뢰를 한 것은 한 달이 더 지난 후였다.

"시청이 왜 바로 우리한테 연락을 안했는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안돼.
미리 연락만 해줬으면
우리가 중간에 몸으로라도 막았을 텐데."

부부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억울하다"였다.
시장 사무실을 찾아가 항의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행정처리명령서

경산시는 그해 8월 손 씨의 주소로 폐기물처리명령서를 보냈지만 그는 이미 5월에 달아난 뒤였다.
잠적한 손 씨 대신 폐기물 처리 책임을 떠안게 된 건 문 씨 부부였다. 경산시는 부부에게 폐기물처리명령서를 보내 왔다.

행정처리명령서

문 씨 부부가 쓰레기를 감당하지 못하자 경산시는 쓰레기를 대신 치운 뒤 땅 주인에게 비용을 청구하는 ‘행정대집행’을 했다.
2021년 4월 부부에게 ‘4억 9051만 3520원’이라는 금액이 찍힌 납부 명령서가 날아왔다.

행정처리명령서

부부가 이 돈을 납부하지 못하자 땅은 시에 압류됐다. 노부부에게는 요즘도 납부 독촉장이 날아온다.

손 씨 일당과 같은 불법 투기 조직은 오래 전부터 전국에 쓰레기산을 만들어왔고, 지금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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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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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물 처리 명령

지방자치단체

바지사장

쓰레기산 범죄를 추적해 온 서봉태 환경운동가는
“무고한 피해자의 돈으로 범죄 조직을 배불리는 시스템”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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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출입구에 주먹만한 자물쇠가 걸려 있는 압류된 땅이지만 문수용, 김순연 씨 부부는 가끔 이곳을 찾아 잡초를 뽑는다. 김 씨는 애지중지했던 땅이 잡초로 무성해진 모습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피땀 흘려 노년에 겨우 마련한 땅을 뺏겨버렸어. 정말 바르게 살았는데, 몸이 부서져라 일해 가며 산 땅인데…

죽기 전에 해결이 안 될 것 같아
분하고 억울한 마음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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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짐작이나 했겠어?
자고 일어나니 내 땅 위에 쓰레기산이 생겼을 줄….”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충청북도 진천군
충청북도 음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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