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공유하기 닫기

어디 있나요, 안전의 눈

최근 강력범죄가 이어지면서 불안한 시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 때 수천 개의 눈을 활용해 우리를 범죄로부터 지켜주는 곳이 있다.

“CCTV가 없는 곳을 골랐다.”

올 8월 서울 신림동 공원 둘레길에서 30대 여성을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최윤종(30)은 범행 장소로 공원을 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건이 발생한 관악산생태공원은 크기가 축구장(7140㎡) 10개보다 넓은 7만6521㎡(약 2만3000평)였지만 설치된 폐쇄회로(CC)TV는 7대에 불과했다. 사건 후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곳을 찾아 “CCTV를 적극 증설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CCTV 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방범용 CCTV 설치가 늘고 있지만, 서울 자치구의 경우에도 재정자립도와 예산 사정에 따라 인프라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서울 자치구 간 ‘CCTV 치안 편차’를 체감하기 위해 강남구와 노원구의 번화가와 주택길 1km 씩을 걸으며 관제센터가 기자를 얼마나 포착할 수 있는지 측정했다. 강남구는 서울 자치구 25곳 중 설치된 CCTV 수가 가장 많고, 인구당 설치 대수는 3위로 최상위권이다. 반면 노원구는 CCTV 수는 22위, 인구당 설치 대수는 24위로 최하위권이다.

갈림길, 뜀박질에도 CCTV 눈은 못 속여

지난달 22일 오후 7시경 본보 이소정 기자가 강남구 논현초 인근 주택가에 들어섰다. 어둑어둑한 하늘을 올려다보자 ‘방범용 CCTV 설치 작동중’이라고 쓰인 노란색 표지판과 붉게 깜빡이는 카메라 불빛이 눈에 띄었다. 방향을 바꿔 골목길 안쪽으로 발을 옮기자 카메라 렌즈가 기자의 움직임을 따라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CCTV 화면을 골목 앞까지 당기세요.”

같은 시각 서울 강남구 U-강남 도시관제센터. 강남경찰서 생활안전과 문일선 경감이 관제요원에게 지시했다. 요원 8명이 골목길을 걷는 본보 기자를 CCTV로 포착하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강남구 관제센터 사진

강남구 주택가 CCTV 포착 실험 결과

지도: Google Earth, ⓒ 2023 Airbus

강남구 주택가 지도
1-246 1-287 1-260

요원들은 각자 자리에 놓인 6대의 모니터를 통해 지도와 분할된 CCTV 화면을 번갈아 보며 ‘추적’에 나섰다.

실험이 시작된 지 56초 만에 한 요원이 “1-246번에 잡혔다”고 외쳤다. 확대된 화면에는 네이비색 원피스를 입은 기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기자가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돌자 다시 CCTV 화면에서 사라졌다.

예상 외의 곳으로 기자가 들어서자 고개를 갸웃하던 문 경감은 침착하게 “1-287번을 봐 달라”고 지시했다. 곧바로 1-287번 카메라에 다시 기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카메라를 따돌리기 위해 숨이 찰 정도로 달려도 소용이 없었다. 1-260, 1-232번 등 1㎞ 안에 설치된 CCTV 12대가 기자의 동선을 거의 실시간으로 따라잡았다.

포착된 시간

11분 23초(87.2%)

포착되지 않은 시간

1분 40초(12.8%)

실험 결과 강남구 주택가 1㎞를 걷거나 달리는 동안 12대의 CCTV에 기자가 14번 포착됐다. 13분 3초 중 11분 23초(87.2%)가 CCTV에 찍혔다. 사실상 카메라 사이 공백 시간이 거의 없었던 셈이다.

CCTV 통합관제센터는 시민을 지키는 ‘안전의 눈'이다. 지자체마다 관제요원과 파견 경찰이 24시간 상주한 가운데 수천 대의 CCTV를 돌려가며 범죄 취약 지역을 감시한다. 방범용, 어린이보호구역, 화재예방, 교통단속 등 다양한 목적의 CCTV가 연계돼 있다. 범죄가 발생하면 경찰 및 소방과 공조해 용의자를 실시간으로 추적한다. 경찰이 녹화된 영상을 돌려보며 수사에 활용해 범인을 잡기도 한다.

강남구 관제센터 사진

민상현 강남구 재난안전과 도시관제팀장은 “CCTV를 활용해 해결되는 범죄가 연간 1만여 건”이라고 했다. 올 8월에는 관제센터에서 50대 남성이 가위를 품에 넣는 장면을 발견해 경찰에 알리기도 했다. 이외에도 마약 의심, 뺑소니 등 다양한 상황을 관제센터에서 발견해 초동 조치를 한다.

모두가 강남은 아니다

강남구에선 상대적으로 CCTV 인프라가 잘 갖춰진 상황에서 관제요원들이 적절히 움직인 덕분에 기자의 동선을 놓치지 않고 추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울 모든 자치구의 골목이 이렇지는 않다.

노원구 주택가 CCTV 포착 실험 결과

지도: Google Earth, ⓒ 2023 Airbus

012 198 1031

“카메라가 별로 안 좋아서….”

지난달 25일 오후 8시경 서울 노원구청 4층 스마트도시통합운영센터.

공릉동 주택가에 설치된 ‘방범012’ 카메라에 뿌옇게 찍힌 기자의 모습을 바라보던 관제요원이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포착됐던 기자의 모습은 제과점을 향해 걷던 중 금세 사라졌다.

다음 CCTV에 기자가 다시 포착된 것은 3분 2초 후였다. 그동안 기자는 골목길 빌라 사이를 지나 어린이공원을 끼고 걸었지만 관제센터에선 전혀 알지 못했다.

잠시 CCTV에 포착됐던 기자는 다시 화면에서 사라졌고 43초 만에야 다시 화면에 잡혔다. 포착되는 간격이 넓다 보니 센터에서 기자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정창호 노원구 스마트안전도시팀장은 “빌라 골목마다 CCTV가 설치돼 있지 않다 보니 용의자나 피의자의 동선을 따라잡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공릉동 주택가는 노원구와 노원경찰서가 함께 조성한 ‘범죄제로화 사업구역’이다. 주택가 초입 안내판에는 ‘촘촘한 CCTV와 밝은 발광다이오드(LED) 보안등, 방법덮개 등 방범 인프라 설치’란 문구가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포착된 시간

6분 38초(53.2%)

포착되지 않은 시간

5분 50초(46.8%)

1㎞의 골목길을 걷는 동안 관제센터에서는 기자를 8대의 CCTV로 8번 잡는 데 그쳤다. 12분 28초 중 CCTV에 포착되지 않은 공백이 절반에 가까운 5분 50초(46.8%)에 달했다.

번화가에서 진행한 실험 결과도 비슷했다. 강남구 신논현역 일대의 경우 CCTV 10대가 기자가 걸은 13분 33초 중 9분 43초(71.7%)를 포착했다. 반면 노원구 상계동 문화의거리 일대에선 12분 16초 동안 5대가 42.9%(5분 16초)만 포착해 포착률이 절반에도 못 미쳤다.

다른 구들도 CCTV가 부족한 골목길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달 10일 찾은 강서구의 한 주택가에서 어린이집 3개가 위치한 골목길 약 700m를 걷는 동안 방범용 CCTV 6대가 눈에 들어왔다. 이 중 절반인 3대에만 비상벨이 달려 있었다. 강서구의 인구 1만 명당 CCTV는 59대로, 25개 자치구 중 세 번째로 적다. 강서구 관계자는 “인구 대비 CCTV 설치 대수가 적다는 걸 알고 예산을 꾸준히 책정하려 하지만 사업별 우선순위가 있다보니 쉽지 않다”고 말했다. CCTV 1개소(고정형 3대, 회전형 1대, 폴대 등)의 평균 설치 비용은 2500만 원에 달한다.

주민들도 불안을 호소한다. 주민 송정옥 씨(71)는 “이 골목은 가로등도 적게 설치돼 있다. 밤만 되면 골목이 컴컴해져 돌아다니기가 무섭다”며 “구에서 가로등과 CCTV를 좀 더 설치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박영란 씨(70)도 “대로변이라면 모르겠지만 으슥한 골목에는 CCTV가 더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날 찾은 동작구 대학가도 큰 길을 제외한 작은 골목에서 CCTV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약 2km를 걷는 동안 발견한 방범용 CCTV는 6대에 그쳤다. 주민 류모 씨(24)는 “밤에는 큰 길로만 다니고, 어쩌다 골목으로 들어오더라도 최대한 CCTV가 있는 길 위주로만 다닌다”고 말했다.

CCTV 인프라도 ‘빈익빈 부익부’

같은 서울이라도 자치구 간 CCTV 인프라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취재팀이 국민의힘 소속 김태수 서울시의원 등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강남구는 올 6월 기준으로 서울에서 가장 많은 CCTV 7243대를 운영하고 있었다. 반면 종로구(1966대), 도봉구(2385대), 중구(2584대), 노원구(2626대) 등은 강남구 대비 CCTV 운영 대수가 3분 1 안팎이다.

인구 1만 명당 CCTV 대수 상위 3곳(중구 196대, 성동구 146대, 강남구 134대)의 평균 CCTV 대수는 159대였다. 하위 3곳(송파구 49대, 노원구 52대, 강서구 59대) 53대로 상위 3곳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CCTV 인프라는 자치구의 재정자립도에 비례하는 모습을 보였다. CCTV 설치는 자치구 소관이라 어느 정도 예산을 투자할 여력이 있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강남구는 올해 기준으로 재정자립도가 60.4%로 25개 자치구 중 가장 높지만 노원구는 16.5%로 가장 낮다.

노원구 관계자는 “취약 계층도 많은 편이라 복지 예산에 돈을 많이 쓴다”라며 “CCTV 설치에 쓸 수 있는 예산은 한정적”이라고 말했다. 강서구, 도봉구, 강동구 등 CCTV가 적은 지차구들의 재정자립도도 서울시 평균(29.5%)에 못 미친다.

서울시가 자치구에 지원하는 CCTV 설치 비용도 ‘서울시 50%, 자치구 50%’ 분담이 원칙이다 보니 자체 예산 마련이 어려운 자치구는 시비 지원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이는 서울시 지방보조금 관리 조례안에 나온 ‘도시안전 분야 보조사업 기준보조율(50%)’에 따른 것이다. 이에 각 자치구에서는 “예산이 적어 도움이 필요한 구들이 오히려 예산 제약 때문에 시비도 잘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나온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설치 비용을 100% 지원하면 자치구의 자체 설치 의지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25개 자치구가 CCTV 설치에 쓰는 예산도 차이가 크다. 2019~2023년 5년간 CCTV 설치 및 유지보수에 가장 많은 구비를 쓴 구는 강남구(172억3791만 원)였고, 반대로 가장 적은 곳은 영등포구(53억635만 원)였다. 김도우 경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재정 자립도가 떨어지는 지역은 범죄 수익금 일부를 범죄 예방 기금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 국가 차원에서 CCTV 재원을 충분히 지원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시에서 설치비만 지원하기 때문에 유지보수 비용은 온전히 구비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도 CCTV 확충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2019~2023년 5년간 CCTV 유지 및 보수에 투입된 예산은 강남구가 71억6761만 원으로 가장 많은 반면 강북구는 17억6689만 원으로 가장 적었다. 강북구 관계자는 "고장 신고가 접수되는 CCTV가 하루 평균 5, 6대"라며 “재정자립도가 낮은 편이다 보니 유지 보수 예산도 많이 확보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행정안전부도 특별교부세 형식으로 구에 CCTV 설치 비용을 일부 지원하지만 충분치 않다는 게 구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국민의힘 소속 엄태영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행안부가 서울 25개 자치구에 지원한 CCTV 설치 지원금은 구당 평균 4억906만 원에 불과했다. CCTV를 19곳에 설치할 수 있는 돈이다.

CCTV 설치 장소에 대한 통일된 매뉴얼이 없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개인정보보호법은 CCTV의 설치 운영에 대한 일반적 사항만 규정할 뿐 설치 장소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은 명시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각 자치구에서 관할 경찰서와 협의해 장소를 결정하는데, 주민 민원이 많은 곳 위주로 우선 설치되거나 설치가 필요한 곳인데도 주민 반대로 설치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CCTV 설치 후 범죄 검거 건수 등을 활용해 설치 장소로서 적정했는지 사후적으로 검증하는 절차도 없다. 2018년 발표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범죄 예방 목적의 공공 CCTV 운영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에서도 “보다 일관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의 공공 CCTV 설치 계획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단순 대수 증설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순찰 강화와 모니터링 인력 확대 등 적절한 정책 뒷받침이 따라야 한다는 의미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대 교수는 “중요한 건 범죄 대책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가 얼마나 관심을 가지는지”라며 “중앙정부와 광역지자체, 기초지자체가 협업하며 CCTV 확충 및 활용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소스

OpenstreetMap, Envato Elements, Google Earth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