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반달곰을 만났습니다
마음 속 이야기를 꺼냈다“명색이 환경 기자인데, 자연을 취재할 기회가 없네.”
전화를 돌려보니 최근에는 KM-53처럼 지리산 밖을 나가 살던 반달곰이 더 늘었다고 한다. 반달곰이 지리산을 벗어나는 것이 ‘KM-53'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현상이 되는 것으로 보였다. 기사가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후 회의를 통해 멸종위기종 전반의 이야기를 짚되 반달곰과 따오기를 주로 취재하고, 서울에 사는 산양도 추가 취재하기로 결정했다.
기존 콘텐츠들이 가진 분위기와도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반달곰, 산양, 여우, 따오기...취재 과정에서 확보한 영상 자료들을 본 팀원들은 다들 ‘귀엽다’ ‘재밌다’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무겁지 않으면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멸종위기종은 복원사업을 통해 축적한 자료가 탄탄한 편이다. 환경 히어로콘텐츠는 취재 인력이 적었기 때문에, 자료가 풍부한 아이템을 선택해 빈 틈을 없애겠다는 계산도 있었다.
반달곰과 따오기와의 공존을 선택한 사람들은 어떤 이들일까. 큰 결심을 한 대단한 사람들이지 않을까. 불편함을 참으면서 자연을 위해 견디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그렇지 않았다. 반달곰 복원에 반대할 때도 있었고, 과거 어려운 시절에 새와 작은 동물들은 먹을 것을 훔쳐가는 ‘증오의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어떻게 함께 살게 됐냐는 질문에는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냥 산다’고. 딱히 불편하지 않고, 어떤 점에서는 경제적으로 상생할 수 있는 기회도 되니까. 무덤덤한 그 대답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거나, 룸메이트와 함께 살 때 누구나 겪는 과정이 있다. 처음에는 낯설고 불쾌하고 불편하지만 서서히 익숙해지고 상대방에 대해 잘 알게 될수록 그러려니 한다. 그냥 살게 된다. 자연과의 공존도 지금은 낯설고 거창한 일인 것 같지만 접점이 늘어나고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이뤄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반달곰 따오기와 공존을 택한 사람들에게는 ‘보기 좋다’는 박수가, 서울에 사는 산양 이야기에는 ‘나도 봤다’는 목격담이 이어졌다. 시기적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야기에, 어지러움만 난무하는 정치 이야기에 지친 사람들이 위안을 느낄 콘텐츠가 필요했던 것 아닌가 싶다.
디지털 기사에는 취재한 이야기를 마법처럼 버무렸다. 특히 한반도 지도 위에 각 지역별로 복원 중인 멸종위기종에 대한 설명과 영상이 떠오르는 설정이 인상적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흔히 ‘내가 사는 곳’이라 인식하고 보는 한반도인데 여기에 이런 동물들도 함께 살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는 반응이었다. 디지털의 잠재력을 잘 활용하면 글·사진·영상이 가진 각각의 전달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환경을 취재합니다. 일회용품은 가급적 안 쓰려 합니다. 습관이 되면 불편하지 않습니다. 지구에 이로운 방향,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나누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