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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안산으로 향한 이유

이주민 문제에선 우리가 이방인, 헤매고 돌아가며 자신감을 얻다
이새샘 기자|산업2부 2022-02-03 14:28:05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후덥지근해 웃옷을 펄럭거려야 하는 날씨였다. 지난해 9월 어느 금요일, 히어로콘텐츠팀 4기 취재팀 4명은 경기 안산시 원곡동에 있었다. 멀리서 보면 여느 동네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골목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자 금세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가게에 들어가면 주인들이 얼굴을 유심히 보다 “한국인이죠?”라고 물었다. 읽을 수 없는 글자로 적힌 간판이 즐비했다. 은행에는 중국어로 된 안내문이 있었다. 흔한 프랜차이즈 카페 하나 찾기 어려웠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았던 이주민과의 공존이라는 주제가 처음으로 피부에 와 닿는 순간이었다.
안산에서 취재할 당시의 필자(왼쪽)과 취재팀의 신희철 기자. 안산에서 취재할 당시의 필자(왼쪽)과 취재팀의 신희철 기자.
망망대해를 마주하다
지난해 8월 셋째 주 꾸려진 히어로팀 4기는 이전 1~3기 팀과는 조금 다르게 출발했다. 이전에는 팀을 꾸린 뒤 팀원들이 자유롭게 주제를 제시해 그중 아이템을 선택했다. 이번엔 동아일보 편집국 기자들을 대상으로 히어로콘텐츠 주제를 공모했다. 여러 아이템이 올랐지만 최종 선택된 것은 인구감소 현상과 엮어 안산의 이주민들을 들여다보겠다는 남건우 기자의 아이템이었다. 남 기자는 자연스럽게 히어로 4기 멤버가 됐다.

비록 사전에 선정된 아이템이 있었지만 4기 취재팀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원점에서부터 새로 아이템을 검토하기로 했다. 취재팀이 된 다른 취재기자도 자신이 쓰고 싶은 주제를 제시할 기회를 줘야 최종적으로 주제가 정해졌을 때 ‘내 기사’라는 주인의식을 갖고 쓸 수 있다고 봤다. 인구감소라는 주제 자체도 범위가 넓어 그 안에서 여러 아이템이 나올 수 있었다. 우선 자유 주제와 인구감소에 대한 세부주제로 나눠 탐색기간을 갖기로 했다.

제한 없는 완전한 자유. 선물 같은 말이지만 그만큼 막막하기도 했다. 약 2주에 걸친 시간 동안 기자들은 각자가 평소에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주제들을 마음껏 꺼냈다. 인구감소에 대한 논의도 했지만 한반도 기후변화나 한국인의 종교 같은 전혀 다른 주제도 이야기했다. 책을 읽고, 논문을 검색하고,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리고 모여서 난상토론을 벌였다.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주제일 것, 살아있는 현장이 있을 것, 이전과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 그 과정에서 취재팀이 원하는 아이템의 기준도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아이템 탐색 단계에서 현장을 가보기도 했다. 정말 아이템으로 선정할 만한가를 보기 위해 소멸 위기 지역으로 꼽혔던 경북 의성과 지방 대도시인 대구 등을 취재했다. 인구감소라는 주제가 사전에 던져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취재팀이 가장 많이 했던 말 중 하나가 바로 “우리는 실패할 시간이 있다”였다. 히어로팀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아이템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해 조금 돌아가더라도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해보려 했다.
항로를 그리다
3주에 가까운 탐색기간을 거친 지난해 9월 초, 최종적으로 남은 아이템은 역시 안산이었다.

우선 인구감소라는 주제 자체가 한국의 미래와 직결돼 있었다. 안산이라는 도시를 통해 이주민을 다룬다는 착점도 새롭다고 생각했다. 흔히 안산, 그리고 원곡동을 외국인 밀집지역의 대명사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가보거나 경험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 봤다. 많은 이들이 인구감소 시대에 이주민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막연하게만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를 현실로 생생하게 느끼도록 한다면 반향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안산과 이주민으로 윤곽을 좁히자 다시 한번 고비가 왔다. 이주민이라는 주제 자체가 너무나 다양한 층위를 포함하고 있었다. 해외동포,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등 신분이나 직업에 따라, 혹은 출신국가와 연령에 따라 이들이 겪는 문제가 서로 달랐다. 문제의 범위도 넓었다. 일자리 문제부터 교육, 주거문제까지 한국인이 겪는 모든 사회 문제를 이주민들도 똑같이 겪고 있었다.

게다가 취재팀 4명은 모두 한국인이다. 안산 출신도 아니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취재팀이 이방인이다. 과연 수박 겉핥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을까?
팀원들과 함께 취재 방향을 브레인스토밍할 당시 사용한 화이트보드. 여러 각도에서 고민한 흔적이 담겼다. 팀원들과 함께 취재 방향을 브레인스토밍할 당시 사용한 화이트보드. 여러 각도에서 고민한 흔적이 담겼다.
취재팀은 잘 모르는 세계를 취재하는 것인 만큼 기사가 피상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야 할 원칙들을 정했다.

첫 번째, 얼굴을 드러내고 실명을 쓸 수 있는 취재원을 찾기로 했다.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하려면 얼굴이 있는 주인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실명 보도를 원칙으로 했다.

시혜적이거나 혹은 온정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세웠다. 단순히 이주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이주민들의 힘든 삶만을 조명하는 기사는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 사회가 이들과 함께 살아갈 준비가 돼 있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목적이라는 점을 항상 되새겼다.

가족 단위로 취재를 하자는 원칙도 초반부터 정해졌다. 가능하면 한 가족 내에서 연령이나 신분, 직업에 따라 달라지는 이주민들의 삶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싶었다. 이주민은 이주 경험이 없는 사람보다 훨씬 더 복합적인 정체성을 갖기 마련이다. 누군가 한 명을 주인공으로 정하더라도 그의 진면목을 알려면 가족과 주변인을 함께 취재해야 한다고 봤다. 이 원칙은 이주민들의 삶을 생애주기별로 보자는, 전체 시리즈 콘셉트의 기준점이 됐다.

물론, 모든 취재는 철저히 취재원의 동의를 얻어 진행한다는 기본 원칙도 다시금 되새겼다. 한국어가 서투른 취재원인 경우 주변인이나 통역의 도움을 얻었다. 여러 차례 취재 의사나 취재 내용에 대한 확인을 거쳤다. 미성년자를 취재할 때는 선생님이나 부모님을 함께 취재하는 등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또 다른 항해를 위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월 보도까지 4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취재팀은 안산과 인연이 있는 ‘안산인’ 100여 명을 만났다. 실제로 만나 얼굴을 마주하고 인터뷰를 한 사람이 100여 명일 뿐 전화로 취재하거나 스쳐 지나간 취재원은 그보다 더 많다.

지금 돌이켜보면 좀더 효율적으로 취재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여러 아이템을 탐색하고 지방까지 기초취재를 다녀왔지만 결국 사전에 공모한 아이템이 최종 선정됐다. 100여 명을 취재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기사에 모두 담지 못했다. 누군가가 보면 비효율적이라고 할 만한 과정이다.

하지만 헤매고 돌아가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결과물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주민이라는 미지의 세계, 인구문제라는 거대한 주제를 다루기 위한 도움닫기였던 셈이다.

생각해보면 취재란 실패하는 과정이다. 거르고 걸러 가장 가치가 있는 소식을 전달해야 하니 언제나 실패와 탈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실패할 시간이 있다. 그건, 충분히 취재할 시간이 있다는 말과도 같다. 히어로팀을 하며 무엇을 얻었냐고 묻는다면 ‘실패를 감수하는 법을 배운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망망대해에 항로를 그리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취재기자들도 노력했지만 사진, 영상편집, 그래픽, 기사를 다듬는 과정까지 곳곳에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숨어있다. 덕분에 새로운 항로를 만들어가며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히어로 4기 팀의 항해는 마무리됐다. 이제, 다시 배를 띄울 때다.
이새샘 기자
이새샘 기자|산업2부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신문과 방송을 오가며 대중문화부터 사건사고, 경제정책, 부동산 분야를 다뤘습니다. 다양한 이슈를 취재하며 호기심을 놓지 않는 법, 질문 던지기를 주저하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필요한 순간에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지는 기사를 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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