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 발짝 더'의 마음으로
옷깃에 가랑비 젖듯 취재원에 스며든 5개월안산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지하철에 오후 10시 쯤 몸을 실은 히어로팀원들은 이 말을 자주 했다. 하루 종일 안산의 교회, 경찰서, 시민단체를 돈 뒤, 마지막 일정으로 각 회차 주인공들과 저녁식사를 마친 팀원들은 녹초가 된 상태였다. 너덜너덜해진 우리에게 가장 큰 위안은 어제보다 오늘의 취재원이 우리를 더 편하게 대했다는 느낌, 그리고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실이었다. 첫 만남에서 "네" "아니오"로 일관했던 원곡중 2학년 피브키나 이리나가 처음으로 학교에서 누구와 친한지를 이야기했을 때, “힘든 거 없다”며 듬직한 모습만 보이던 선일중 3학년 이고리 허가이가 진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을 때 히어로팀원들은 이들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갔다는 뿌듯함으로 피로를 씻었다.
조금은 불편하고 어색한 첫 만남에서 한 꺼풀 벗겨진 모습을 알아가기까지의 과정에는 시간이 걸렸다.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취재원에게 다가가는 과정은 낯설었다. 기존 취재부서에서는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다음날 지면에 실을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압박은 기자라는 직업의 숙명이기에, 누군가의 마음을 얻으려 이토록 오랫동안 공을 들인 적은 처음이었다.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오늘 좀 더 친해졌다”는 말 뒤에는 늘 이 말이 따라왔다. “친해질 시간이 주어진다는 게 참 다행이에요. 히어로팀이 아니었다면 절대 이렇게 못 했을 텐데.”
조급함은 팀원들을 지배했다. 그날 그 자리에서 ‘얘기가 되는’ 멘트를 들어야만 하는 직업병에 수년 간 단련이 된 탓이었을 것이다. 도통 마음을 열지 않는 취재원 앞에서 말을 빙빙 돌리다 “한국에서 겪은 차별이 무엇이냐”를 끝내 묻지 못하고 허탈한 마음으로 택시에 몸을 실은 날도 숱했다. 조급한 마음에 “영주권 신청은 왜 못하셨어요? 재산요건을 못 맞추시나요? 사는 곳은 월세인가요?”라고 돌직구를 던졌다가 “뭘 그렇게까지 자세히 알려고 해. 오늘은 그만하자”며 불편한 내색을 하는 취재원 앞에서 안절부절 못했던 기억도 있다. ‘지친다’고 느꼈던 적도 있었다. 아니, 사실은 매번 지쳤다. 취재원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상처를 아프지 않게 건드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가 머릿속 한켠을 빙빙 돌았다.

순수한 호의, 그 힘에 기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공존’이라는 기사의 취지에 공감했던 사람들은 마음을 열어 주었다. 이주민이 점점 많아지는 한국, 이런 한국의 현실에서 당신들이 겪었던 불합리, 차별, 아픔의 경험이 한국을 공존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점을 전달하는데 취재 초반의 상당부분을 할애했다. 보통 기사를 쓸 때 취재원을 한번, 많게는 두 번을 만나지만 히어로팀 취재에서는 두 번째 만남까지 기사의 메시지를 설명하고 그들의 공감을 얻는데 할애됐다. 1~4회의 주인공들 모두 세 번째 만남에서야 진짜 인터뷰가 시작됐다.
“우리 집에서 저녁 먹고 갈래?”
지금 사는 집이 월세냐는 질문에 “그만 하자”던 몽골인 치메도르치 어티겅도야 씨가 이런 제안을 했다. 정확히 다섯 번째 만남에서였다. 퇴근 뒤 어린이집에서 손자를 하원시킨 뒤 저녁 7시가 다 돼 약속장소에 나타난 그였다. 30분만에 ‘남편이 기다린다’며 걸음을 재촉하던 그를 부축해 집앞까지 바래다줬다. 발가락이 부러져 깁스를 하고 있던 터였다. 옥탑방 계단 앞에서 어티겅도야 씨는 “저녁 안 먹었지? 먹고 가”라며 기자의 등을 두드렸다.


4회의 주인공인 서샤니 씨의 이야기를 듣기까지도 오랜 시간 친해지는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샤니는 당당하고 쾌활한 26살 직장인이었다. 고난이 있어도 그걸 고난이라 생각하지 않는,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그에게서 상처를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학창시절 차별의 기억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면 늘 샤니는 “전혀 없었어요”라고만 했다. 그런 샤니도 친오빠, 단짝 친구와 함께 만나고 서너 번 넘게 식사도 하며 가까워진 끝에 상처가 됐던 과거의 기억을 털어놨다.
바람이 찼던 11월의 어느 날 밤이었다. 1차 떡볶이집, 2차 이자카야를 거쳐 3차로 간 양꼬치집에서 샤니는 “요즘 친구들 만나면 이 술밖에 안 먹는다”며 연태고량주와 칭따오 맥주를 섞은 ‘연타오’를 만들어줬다. 연타오 몇 잔을 마신 샤니는 고등학교 시절 국사시험에서 1등을 한 그를 일으켜 세운 선생님이 “샤니는 국사를 몰라도 되는데도 성적이 좋다”고 칭찬했던 날을 떠올렸다.
“나도 한국인인데 왜 내가 국사를 몰라도 되느냐고 선생님한테 가서 따졌어요. 화도 나고 속도 상했죠.”
2021년 8월부터 2022년 1월까지 5개월 동안 1주일에 3, 4번을 안산에 가면서 히어로팀원은 이들과 무척 가까워졌다. 나중엔 “오늘은 왜 ○○기자 안 왔어요?”라며 아쉬워하는 취재원도 생겼을 정도다. 기사가 나간 뒤 밥 먹자며 취재원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안산에서 보기로 한 분도, 서울의 맛집을 가기로 한 분도 있다.
돌이켜보면 지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많은 곳을 다녔다. 히어로팀 4기의 취재 현장은 그 어느 기수보다 넓었다. 안산, 수원, 대부도, 포항, 광나루, 안양까지. 1주일 내내 안산을 누비다가 4화 주인공 윤대성 씨의 해병대 입대를 취재하기 위해 포항을 가기도, 2화 주인공 와티의 단골 어묵집을 가기 위해 안산에서 수원으로 핸들을 돌리기도 했다. 팀원 누구 하나 꺼리지 않고 5개월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누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래도 오늘 좀 더 친해졌다”는 뿌듯함 아니었을까.

2015년 입사해 산업부, 사회부, 문화부를 거쳐 기획 및 심층취재를 하는 히어로콘텐츠팀에 왔습니다. 히어로는 기자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 기자에 의해 발견되길 기다리는 분들이 히어로입니다. 그 분들이 내는 용기있는 목소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고 믿습니다. 숨은 히어로를 찾기 위해, 주저하는 히어로의 마음을 열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