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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지나간 것은 찍을 수 없다
남건우 기자|사회부 2022-02-16 09:11:36
카메라를 멈춰서 놓친 장면이 많았다. 단골 슈퍼에 찾아간 미등록 이주민 아이를 반기는 한국인 주인의 모습도, 이주민 2세 아들의 해병대 입대를 앞둔 인도네시아 출신 어머니의 눈물도 카메라에 담지 못했다. ‘앵글을 바꿔볼까’ ‘이정도면 충분히 찍었겠지’라며 녹화 중지 버튼을 누른 순간 결정적 장면은 이미 지나가고 있었다. 재빨리 녹화 버튼을 다시 눌러봤자 지나간 순간을 담지는 못했다.

카메라를 멈출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있었다. 카메라의 배터리는 삶의 연속성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루 종일 이어지는 취재에 카메라 배터리에 빨간불이 들어오면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수시로 녹화 중지 버튼을 눌렀다. 하나뿐인 카메라 배터리가 야속했다. 얼마 뒤 여분의 배터리를 마련한 뒤에는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돌이켜보면 놓친 장면 못지않게 카메라에 담은 장면도 많았다. 그러나 언제나 놓친 장면 생각이 났다. 모든 장면을 기록하는 건 욕심이지만, 영상의 퀄리티를 높일 수 있단 점에서 좋은 욕심이라 여겼다. 서부영화 속 총잡이가 총을 꺼내는 것처럼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으면 카메라를 재빨리 가방에서 꺼냈다. 카메라를 멈추지 않을 순 없었지만, 최대한 덜 멈춘 덕분에 기사에 들어갈 영상을 만들 수 있었다.
펜 대신 카메라를 든 신문기자
카메라를 든 건 호기심 때문이었다. 신문기자로 살며 줄곧 글로만 기사를 써왔다. 기사에 들어갈 영상을 직접 촬영하고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만큼’ 취재할 수 있는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줬다. ‘영상을 만들고 싶다’는 팀 막내기자의 손에 회사는 카메라를 쥐어줬다.
안산역 부근에서 영상 촬영을 하고 있는 필자.The Original Content안산역 부근에서 영상 촬영을 하고 있는 필자.
이전까지는 단 한 번도 영상을 제대로 촬영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찍으면 되는 거라 생각했다. 회사가 준 카메라의 기능은 유튜브로 배웠다. 기사에 들어가는 영상은 주로 어떤 건지 찾아봤다. 기사를 많이 읽어야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듯 영상을 많이 봐야 좋은 영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회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부터 영상 촬영 강의도 받았다. 집에서 혼자 카메라를 켠 채 이것저것 촬영해보기도 했다. 얼른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나가고 싶었다. 현장에 나갈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다.

‘준비가 안 됐다’는 걸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해병대 입대 현장에서 카메라를 든 채 인도네시아계 한국인 윤대성 씨(20)를 따라다니다가도, 어머니 에코디르미야띠 씨(50)와 대성 씨 누나 윤송이 씨(22)를 놓칠까봐 우왕좌왕했다. 결과적으로 어느 누구도 제대로 담지 못했다. 급한 마음에 촬영하다보니 흔들린 영상도 많았다. 어떤 영상을 어떻게 찍을지 구체적으로 계획하지 않은 탓이었다.

글 취재와 영상 촬영은 비슷한 면도 있지만, 다른 점도 많았다. 글 취재의 경우 그물로 고기를 잡듯이 포괄적으로 취재하는 게 가능하다. 명확한 방향성을 잡지 못했더라도 우선 되도록 많이 취재한 뒤 기사를 쓰는 단계에서 조각조각의 팩트를 원하는 대로 조합할 수 있다. 글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렸기 때문이다. 영상은 다르다. 현장에 있었던 장면이라도 촬영한 영상이 없으면 CG를 활용하지 않는 이상 글만큼 마음대로 조합할 수 없다. 장비나 상황의 제한으로 무한정 촬영하는 것도 어렵다. 결국 영상 촬영을 할 때는 낚싯대로 고기를 잡듯이 목표지점을 두고 집중적으로 촬영하는 게 시행착오를 줄이는 길이라는 걸 배웠다.
965g의 무게감
카메라의 무게는 965g. 회사에서 받은 기사 작성용 노트북의 무게인 1.45㎏보다 물리적으로는 가벼웠지만, 심리적으로는 무거웠다. 촬영을 하면 할수록 영상 취재가 어렵게 느껴졌다. 될 수 있는 한 구체적인 계획을 짠 뒤 현장에 가서, 단 한 장면도 놓쳐선 안 된다는 생각에 부담감이 컸다. 영상 촬영 대신 취재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깐 했다가 관뒀다. 직접 촬영하고 편집한 영상을 기사에 꼭 넣고 싶었다.

카메라가 무겁게만 느껴진 건 아니었다. 영상 촬영이 잘된 날은 카메라의 무게가 가벼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최멜리스 씨(61)를 만난 날이 그랬다. 지난해 11월 멜리스 씨가 살던 경기 안산시의 교회 건물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가 6년간 살며 희망을 키우던 곳이었다. 지금은 아파트에 사는 그가 자신이 살던 곳을 돌아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백 마디 말보다 많은 것을 말해주는 웃음이었다. 카메라를 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안산시의 한 식당에서 영상 촬영을 하고 있는 신희철 기자(왼쪽)와 필자.The Original Content안산시의 한 식당에서 영상 촬영을 하고 있는 신희철 기자(왼쪽)와 필자.
팀원들의 도움 또한 카메라의 무게를 덜어주는 데 한몫했다. 취재와 영상을 동시에 담당했기에 모든 취재 현장에 따라갔다. 영상 촬영을 주로 할 때는 팀원들이 취재를 맡아줬다. 팀원들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날 대신해 취재원에게 궁금한 걸 질문해줬다. 바쁠 때는 나 대신 팀원들이 취재원에게 마이크를 채워줬다. “마이크 소리 들어가고 있어?”라고 체크해주기도 했다. 카메라를 세팅하는 동안 대화를 나누며 취재원을 편안하게 해준 것도 팀원들이었다. 부드러워진 분위기 덕분에 취재원들은 카메라 앞에서 보다 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팀원들이 없었다면 영상 촬영을 끝까지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카메라는 어느덧 노트북만큼이나 익숙해졌다. 영상 촬영이 자연스러워진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처음 영상 촬영을 할 때만 해도 팀원들은 취재원과 인터뷰를 하며 오디오가 겹치게 말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촬영 중인 카메라 앞을 지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촬영 후반부에는 취재원이 말할 때 소리를 내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카메라를 켜면 얼른 프레임 밖으로 몸을 피해줬다.
호박에 줄을 잘 그으면 수박이 될 수도 있다
촬영이 취재라면 편집은 기사 쓰기였다. 취재를 나열한다고 기사가 되지 않듯이 단순히 영상을 이어 붙이는 건 편집이 아니었다. 먼저 촬영한 영상을 전부 돌려봤다. 쓸만한 영상과 그렇지 못한 영상을 추렸다. 다시 보다보니 아쉬웠다. 이때 이 부분을 놓쳤고, 이 장면을 더 촬영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숱하게 들었다. 문제는 이미 그 시간은 지났다는 것. 편집의 힘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편집은 촬영을 처음 할 때만큼이나 낯선 작업이었다. 기자가 되기 전 잠깐 해봤던 편집 프로그램의 사용법은 가물가물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옛 기억을 되살려냈다. 영상을 초 단위로 끊어서 이 장면을 저 장면에 붙여도 보고, 길이를 늘였다가 줄이기도 했다. 편집 과정에서 하도 여러 번 영상을 보다보니 나뿐만 아니라 팀원들 모두 영상에 나오는 대사를 줄줄 외울 정도가 됐다. 하도 여러 번 봐서 지쳤는지 "좀만 쉬었다가 영상 보면 안 되느냐’"고 호소한 팀원도 있었다.

촬영과 마찬가지로 편집 단계에서도 팀워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사에 들어갈 영상 가편집을 끝내고 사내 부서인 디지털콜라팀에 자문을 구했다. 영상 문법상 필요한 장면과 덜어낼 장면이 가려졌다. 디지털콜라팀의 의견대로 편집을 하고나니 영상이 퍽 매끄러워졌다. 티저 영상을 만들 때는 디지털뉴스팀이 힘을 보태줬다. 가편집 영상을 본 디지털뉴스팀이 자막과 화면 전환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줬다. 서툰 실력으로 촬영한 영상이었지만, 두 팀이 편집을 도와준 덕분에 영상의 퀄리티를 높일 수 있었다.
카메라는 멈췄다
5개월 동안의 촬영은 전체 길이 5분 정도의 영상 7개로 남았다. 그동안 카메라를 분신처럼 지니고 다녔다. 혹여 카메라를 고장 내거나 잃어버릴까봐 불안한 적도 많았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도 카메라를 꼭 안은 채 졸았다. 얼른 촬영을 마치고 카메라를 내려놓고 싶었다. 정작 마지막 촬영을 끝낸 뒤 회사에 카메라를 반납할 때는 시원섭섭한 기분이었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지금이라도 부족한 장면을 다시 찍을까’라는 마음도 들었다.

보도 이후에도 여러 차례 영상을 다시 봤다. 취재원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해줬다. 영상을 돌려볼 때마다 촬영 당시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번 카메라는 여기서 멈추고, 취재원들과 동료들에게 고마운 기억만 남기기로 했다. 아쉬운 마음은 언젠가 다시 카메라를 잡을 때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으로 달래려 한다.
남건우 기자
남건우 기자|사회부

기자 일을 한 지 수년째이지만, 여전히 기사 쓰는 건 무척 어렵습니다. 어려워서 힘든데, 어려워서 재밌기도 합니다. 어려운 걸 해냈을 때 기쁨이 크니까요. 고생한 만큼 재미도 커질 거로 생각합니다. 결국 제가 즐거워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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