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년생,남[부산 30번] 2020.2.21(금)19:30 팔레드시즈(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298번길 24)
  • [부산 19번]90년생,여 2020.2.21(금)19:00 팔레드시즈(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298번길 24)
부산 보건당국의 공지로 19번과 30번은 ‘공식 커플’이 됐다. 8년간 교회 누나와 동생으로 친하게 지내던 김동현 씨(27)와 김지선 씨(30·여) 얘기다.

이들은 2월 14일부터 사흘간 부산 온천교회 수련회에 참석했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렸다. 23일 두 사람이 동시에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각각의 동선이 공개됐다. 이를 통해 두 사람이 확진 판정 이틀 전 같은 시간 같은 숙박시설에 머무른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밝혀진 계기부터 황당했다. 더구나 온라인 댓글은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 호실까지 까봅시다”(인티**)
  • “회 포장해서 같이 먹었네. 회는 여자가 샀어”(아크***)
  • 영계 킬러네 아주”(시니**)
  • 친자검사 후기 기다릴게요~”(방향***)
  • 와…벌레들 곧 OOO 들어가겠네.ㅋ”(X왜*****)
  • “이마니가 불륜은 사랑이라고 가르치디? ㅋㅋㅋ꼬시다…”(프로**)

어느날 불륜남이 됐다. TMI(Too Much Information)가 부른 비극,
모니터 뒤에 사람이 있다

온라인에서 두 사람은 졸지에 신천지 신도이자, 불륜 커플이 돼 있었다.
당시는 한창 대구 신천지교회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퍼지던 시기. 이 때문에 부산에서 첫 집단감염이 발생한 온천교회에도 ‘신천지 관련 교회 아니냐’는 의심이 쏟아졌다. 누리꾼들은 두 사람을 신천지 신도로 몰아붙였다.

설상가상 두 사람이 불륜 커플로 몰린 것은 지선 씨의 약혼자 때문이었다. 약혼자 역시 온천교회 신도로, 이들과 함께 수련회에 다녀왔다. 약혼자는 두 사람보다 하루 빠른 22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부산시는 24일 두 사람의 역학조사 결과를 공개하는 과정에서 “온천교회의 부산 19번 확진자는 13번 확진자와 약혼한 사이”라고 밝혔다. 쓸데없는 ‘TMI(Too much
information·너무 많은 정보)’였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약혼자가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호텔에 드나들었다는 글을 써대기 시작했다.

13번 남자와 19번 여자는 약혼한 사이.
그런데 19번 여자 동선 까는 중 30번 확진자와 같은 호텔에 들러
숙박한 사실 들통남. 19번 여신도의 화끈한 나눔 정신

완벽한 오해였다. 먼저 21일 팔레드시즈에서는 온천교회 청년부 리더 10여 명이 참석한 모임이 열렸다. 당시 코로나19 감염 사실을 몰랐던 두 사람은 이 모임에도 나갔다. 모임 참석자 중 두 사람만 코로나19에 걸려 이틀 뒤 동선이 공개됐다.

​ 그리고 팔레드시즈는 평소 온천교회 교인들이 회의나 소규모 MT를 할 때 자주 이용하던 콘도였다. 이를 호텔이라고 단정하고 ‘다른 목적’으로 갔을 거라 오해한 누리꾼들이 문제였다. 이런 와중에 보건당국의 오류도 있었다. 부산시가 보도자료에 지선 씨 약혼자의 확진 번호를 잘못 기재한 것. 약혼자는 13번 확진자가 아닌 16번 확진자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틀린 것 투성이었다. 헛소문을 바로잡고 누명을 벗어야 했다. 병상에서 코로나19와 싸우는 두 사람 대신 가족과 지인들이 나섰다. 동현 씨의 누나는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했고, 지선 씨의 친구는 인터넷에 해명 글을 올렸다.

‘망상은 머릿속으로만 하면 죄가 안 되지만
글로 썼을 경우는 다릅니다.’
‘더러운 건 본인들 생각입니다.’
‘모니터 뒤에 사람이 있다는 거 알고 쓰셨어야 합니다.’ ‘키보드를 마음대로 두드려 사람을 우습게 만들고
조롱의 대상으로 두신 것 전부 캡처했습니다.’
악성 루머 글에 비해 해명 글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해명 글을 본 이들은 또 악플을 달았다. “뭔 헛소리야 이거?”, “신천지 집안끼리 결혼하는 거네, 좋겠다” 등 막무가내였다.

동현 씨는 입원 2주 만에 퇴원했지만 한 달 동안 기침이 끊이지 않는 후유증을 겪었다. 코로나19와 싸우는 것도 힘든데 낯 뜨거운 루머까지 겹치니 마음이 힘들어 회복이 늦었다. 자기 때문에 회사 동료가 자가격리된 것도 마음을 짓눌렀다.

불륜의 꼬리표는 기침보다 길었다. 심지어 부산시가 나서서 근거 없는 루머라고 밝혔지만 인구 340만 명의 부산 바닥 곳곳에 두 사람에 대한 오해가 퍼진 상태였다.
부산시 공식 인스타그램 중 ‘가짜뉴스’ 란에 올라온 게시물
퇴원 후 약 100일이 흘러 만난 동현 씨는 덤덤하게 말했다. “저를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제 동선으로 이야기를 꾸며 내는 게 웃겼어요. ‘호텔에서 둘이 뭘 하다 걸렸을 것이다, 밥은 이 식당에서 먹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고 음식을 사다가 호텔 방에서 먹었을 것이다’라면서 말이죠.”

동현 씨의 여자친구는 최근에도 지인의 결혼식에서 “온천교회 불륜 소문 들었냐”는 말을 들어야 했다. 여자친구는 “그거 내 남자 친구 얘기다, 절대 사실이 아니다”라고 펄쩍 뛰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진짜 네 남친 의심스럽지 않냐?”고 불쑥 묻거나, “내가 아는 사람이 불륜인 걸 직접 확인했다던데…”라는 말을 던지는 주위 사람들이 있다.

동현 씨는 “아직까지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이젠 억울함을 넘어 신기한 마음도 들어요”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동선은 공식적으로는 삭제됐다. 보건당국은 확진환자가 마지막 접촉자와 접촉한 날로부터 14일이 지나면 동선 정보를 삭제한다. 그러나 한 번 퍼진 루머나 인터넷에 남은 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코로나19 확진자들의 동선을 보도한 기사들도 그대로 남아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마음의 상처는 아주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 지선 씨의 ‘약혼자’도 6월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남편’이 됐다. 동현 씨는 이제 ‘불륜남’이 아닌 ‘혈장 기증자’로 불리고 싶다. 온천교회 확진자 32명 중 혈장 기증이 가능한 21명은 6월 8일 혈장을 부산시에 단체로 기증했다. 혈장 기증자가 부족하다는 뉴스를 보고 교회 청년부에서 의견을 모았다. 온천교회가 부산에서 집단감염이 시작된 곳인 만큼 마음의 빚도 갚고 싶었다고 한다. 이들의 혈장은 코로나19 중증환자를 치료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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