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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
아들, 딸이었습니다.
딸의 소소한 일상, 아들과 주고받은 마음이 담긴 유품을 꺼내며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 모두가 말했다.
자랑스럽다고, 죽을 때까지 잊지 않는다고.
집에서 웃음소리가 나는 건 단비 덕이 컸다. 단비는 집에 오면 윷놀이판을 펼치고, 여행 갈 땐 마이크를 챙기는 딸이었다.
늘 살가웠지만, 그해 어버이날에는 더욱 다정했다.
“생전 그런 적은 없었는데, 절을 하면서 어버이은혜 노래까지 부르더라고. 지금 생각하면 떠날 걸 알고서 그랬나 봐….”
그리고 용돈과 함께 쥐여 준 편지. 평소에 못 한 말이 담겨 있었다.
‘어디서도 아빠 사랑 많이 받고 컸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해준 100점짜리 아빠.’
‘내 성격 원래 이렇다는 핑계로 엄마 얘기 많이 들어주지 못해 미안해요.’
단비의 마지막 편지가 됐다.
무엇인가 만져졌다.
딸이 마지막으로 입은 활동복을 끌어안고 고개를 파묻었다. 주머니 안쪽으로 무언가가 손에 잡혔다.
수박맛 사탕 두 개, 다 먹고 남은 사탕 껍질 두 개.
평소 군것질을 좋아하던 딸이었다. 몇 년째 ‘올해는 꼭 다이어트에 성공하겠다’며 곤약 따위를 사들이던 딸이지만 끝내 사탕을 놓진 못한 모양이다. 일하다가 ‘입이 심심하다’며 사탕을 입에 넣고 입이 볼록하게 이쪽저쪽 굴렸을 모습이 선했다.
“단비답다, 하고 웃었지.”
딸의 휴대전화 속 사진을 하나씩 넘겨 봤다. 익숙한 물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대학 졸업을 축하하며 사 준 가방이었다.
‘우리 딸도 이제 사회인인데 핸드백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단비의 단짝이었던 남편이 앞장섰다.
“그래서 셋이 아웃렛 가서 이거저거 메 보면서 같이 고른 거야. 남편이 ‘단비 선물인데 내가 사 준다’며 산 건데….”
친구들과 찍은 사진 속에서 단비는 항상 그 가방을 들고 있었다.
故 박단비 소방교(순직 당시 29세)의 어머니 이진숙
박 소방교는 2019년 10월 31일 소방헬기를 타고 독도로 향했다. 응급환자를 태우고 독도를 이륙한 헬기는 불과 2분 만에 바다로 추락했다. 박 소방교를 비롯해 김종필 기장(46), 서정용 검사관(45), 이종후 부기장(39), 배혁 소방장(31)이 함께 순직했다.
어린 아들에게 일찌감치 수영을 가르쳤다. 만에 하나 물에 빠져도 수영은 할 줄 알아야, 구해 주러 올 때까지 버티고 있을 테니까.
“나는 우리 애가 살아있을 줄 알았어. 수영을 워낙 잘했거든.”
혁이는 생각보다 더 수영을 좋아했다. 중학생 때 스킨스쿠버를 시작했고, 자라서는 해군 해난구조대(SSU) 요원으로 복무했다.
스쿠버 슈트는 아들이 자꾸 생각나 처분했다. 그러나 아들의 숨이 돼 줬을 호흡기, 그리고 오리발은 버리지 못했다.
“대신 받아오는데 아무 생각도 안 들었어. 주인 없는 상장이 무슨 의미가 있나.”
아들은 순직 두 달 전 다뉴브강을 누볐다. 2019년 5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침몰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호 실종자 수색에 투입되면서다.
헝가리 정부는 이듬해 5월 사고 1주기를 기려 아들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 이미 혁이가 세상을 떠난 후였다.
“그래도 죽을 때까지 갖고 있어야지.”
해군 SSU 복무 당시엔 천안함 수색에 투입되기도 했던 아들이다. 언제든 출발할 수 있도록 가방에 항상 속옷과 양말 5개, 여권을 싸놓고 있었다. 그런 아들이었기에 이 표창장을 자랑스럽게 여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故 배혁 소방장(순직 당시 31세)의 어머니 유미영, 아버지 배웅식
배 소방장은 2019년 10월 31일 독도 인근에서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헬기에 박단비 소방교와 함께 타고 있었다. 헬기가 독도에서 이륙한 지 2분 만에 추락하면서 박 소방교 등 동료들과 함께 숨졌다.
“고 2때까지는 그냥, 축구 좋아하고 게임 좋아하고… 성적도 좋지도 않았어. ‘커서 뭐할래’ 하면 ‘축구선수?’ 이러고. 뭘 해도 대학은 가야 하지 않겠냐 하니까 자기도 성적은 올려야 되겠다 싶었나 봐. 악착같이 하더니 모의고사 칠 때마다 매달 점수가 30점씩 오르더라고.”
그렇게 정민은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제일 예쁘고 화려한 꽃목걸이를 걸어주고 싶었어. 동네 꽃집에서 생화도 넣고 조화도 넣고 색색깔로 만들어서 청주까지 가져갔어.”
파일럿 준비가 쉽지 않다고 토로하는 정민에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보라”고 말했었다. 아들은 좋은 성적으로 전투기 조종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며 학교를 졸업했다. 대구에서 공들여 주문한 꽃목걸이를 공사가 있는 청주까지 가져갔다.
화환을 보면 여전히 아들이 자랑스럽다.
故 심정민 소령(순직 당시 29세)의 어머니 최원숙
2022년 1월 11일 F-5E 전투기 한 대가 경기 수원시 공군 제10전투비행단 활주로를 이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체 이상 신호가 나타나자 조종사였던 심 소령은 관제탑에 비상탈출을 선언했다. 그러나 민가 피해를 막기 위해 끝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았다. 결국 전투기는 인근 야산에 추락했다.
“커서는 등산도 하고 수영도 하고 아주 만능이었는데, 어릴 때는 그렇게 운동 좋아하는 애는 아니었거든. 그런데 그때도 축구는 좋아했어.”
국환이는 직장에서도 축구 소모임 장을 맡아 주말에 종종 경기를 나가곤 했다. 등번호는 주로 7번이나 10번. 팀에서 에이스나 최전방 공격수들이 다는 번호다. 그만큼 축구를 잘하고 또 좋아했다.
소방서 축구 소모임 유니폼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First In, Last out)’
아들이 그 힘들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특전사)에 지원한 것을 뒤늦게 알았다.
“엄마 아빠 걱정할까 봐 그랬지.”
아내는 사서 고생하는 아들이 안쓰러워 어쩔 줄 몰랐다.
국환이에게 어릴 때부터 “이왕 가는 군대, 남자답게 해병대 가라”고 말하던 나 역시 놀랐지만 이내 자랑스러웠다. ‘짜식, 힘든 만큼 배우는 것도 많을 거다.’ 아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나도 으쓱했다.
故 김국환 소방장(순직 당시 28세)의 아버지 김도근
2020년 7월 31일 전남 구례군 지리산 피아골에서 물놀이를 하던 피서객 한 명이 물에 빠졌다. 며칠간 이어진 비로 계곡은 물이 불어난 상태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김 소방장은 피서객을 구하기 위해 계곡에 뛰어들었다가 급류에 휩쓸리며 순직했다.
해병대도 힘들 텐데 이라크 파병이라니. 전쟁터라니.
“나는 정말 싫다고 했어. 누가 아들을 그런 위험한 데 보내고 싶어 해. 그런데 고집을 안 꺾더라고….”
부모 동의서가 필요했다. 서명하면 무슨 일이 날 것만 같아 결사반대했지만 호종은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무사히 돌아와 메달까지 받았다.
“수당까지 두둑하게 받았잖아.”
씩 웃으며 덧붙이는 아들을 보며 어리게만 보이던 둘째가 어느새 저렇게 자랐나 싶었다.
“호종이 생각나는 물건은 집 안에 남겨두기 힘들어서 옷이나 신발, 모자, 아령 같은 운동기구도 다 버렸어. 그런데 이 다이버 시계는 그냥 버리기가 싫었어요. 해경 시험 준비할 때부터 찬 거거든. 합격하고 훈련받거나 일하러 갈 때도 이게 갖고 있는 시계 중에 제일 크고 두껍다고 자주 찼어. 보면 바닷물 소금기가 아직도 남아 있어. 여기 까만 고무에, 허옇게 희끗희끗한 것들이 다 소금이잖아.”
故 정호종 경장(순직 당시 34세)의 어머니 박상숙
2020년 6월 6일 경남 통영시 홍도 인근에서 스킨스쿠버를 하던 다이버 2명이 기상 악화로 인해 해상 동굴에 고립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정 경장은 9시간 넘게 구조 작업을 이어가다 너울성 파도에 휩쓸려 실종됐다. 그는 이튿날 숨진 채 발견됐다. 다이버 2명은 무사히 구조됐다.
취직한 아들이 첫 월급을 받아 사 준 선물. 그전까지 아빠와 아들이 서로 선물 주고받은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첫 월급 받았다면서 강릉 시내 끌고 가더라고. 나는 운동화나 사달라고 했는데 아니라고, 운동화는 평소에도 사지 않냐, 첫 월급인데 제일 좋은 거 사야 된다면서 구두를 사자 하더라고. 올가을이 간 지 5년인데 이제 잘 가라고, 호현이 물건들은 다 태우려고 하는데 이건 안 태우려고. 이건 유품이 아니라 나한테 준 선물이잖아.”
故 이호현 소방교(순직 당시 27세)의 아버지 이광수
2017년 9월 16일 오후 9시 43분경, 강원도 강릉의 오래된 목조 정자 석란정에 불이 났다. 이 소방교는 불을 끈 후 복귀했지만 이튿날 새벽 4시경 불이 다시 붙었다는 신고에 두 번째로 출동했다. 화재 진압 중 석란정이 무너지면서 작업 중이던 이 소방교와 이영욱 소방경을 덮쳤다. 18분 만에 구조됐지만 두 사람 모두 숨을 거뒀다.
부모님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물건을 정리하면서
그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그의 하루는 어땠는지
생각해 본다. 처음인 것 같다.
“아버지는 자연을 사랑하셨습니다. 돌이나 나무, 동물들과 같이 생명이 있는 것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이 원목 옷걸이는 산에서 벼락 맞은 나무를 직접 짊어지고 내려오셔서 집에서 손수 만드신 옷걸이입니다. 4, 5개 정도 만드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죽은 나무를 다듬으면서 다시 새 생명을 불어넣는 것 같아 이 작업에 매력을 느끼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젊으셨습니다. 불과 2년 전 제가 선물해드린 신발을 신고 체력장 시험에서 20대, 30대 후배들보다도 빠르게 뛰고 만점을 받았다고 자랑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이 신발을 보면 매일 운동을 하셔서 20대 후반인 저보다도 힘이 세고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故 이종우 경감(순직 당시 53세)의 아들 이길현
2020년 8월 6일 강원도 춘천 의암호. 댐을 방류할 정도의 폭우에 수질 정화용 인공 수초섬이 떠내려 갔다. 악천후 속 섬 고정 작업에 투입된 사람들이 급류에 휩쓸렸다. 이 경감은 떠내려가던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나섰으나 타고 있던 순찰정이 전복되면서 실종됐다. 이틀 후 북한강 근처에서 순직한 그가 발견됐다.
아내, 남편이었습니다.
나를 두고 떠난 게 원망스러운 날도 있지만 알고 있다.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던질 수 있을 만큼의
그런 마음으로 나를 사랑해준
남편, 아내였다는 것을.
“오빠가 원래 글씨를 진짜 못 쓰거든요. 본인도 콤플렉스고. 그런데 스케치북을 꺼냈는데 그 글씨가 직접 쓴 거라는 거예요. 절대 이렇게 쓸 수가 없는데… ‘이거 오빠가 쓴 거 아니지’ 의심하니까 아니라고, 진짜 자기가 썼다고. 보니까 바탕에 연필로 밑그림처럼 그리고 그 위에 흰색 물감으로 덧대서 칠했더라고요.”
‘살다가 힘들어도 서로 웃으면서 바라보고 이겨내자’
재국의 프러포즈에 고개를 끄덕였다.
“와, 남자친구가 다이어트 기념으로 꽃을 줬다고?”
재국은 ‘꽃을 든 남자’였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꽃을 선물했다. 같이 있다가 화장실 다녀오겠다더니 꽃을 내밀고, 다이어트를 한다고 하면 다이어트 기념 꽃을 주는 남자친구 이야기에 친구들의 탄성이 쏟아지곤 했다. 그가 남편이 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남편에게 받은 꽃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가장 큰 꽃을 남긴 채 떠났다. 임신 4개월이었다.
故 유재국 경위(순직 당시 39세)의 아내 이꽃님
유 경위는 2020년 2월 15일 한강 가양대교 북단에 출동했다. 투신자살 기도자를 수색하기 위해서였다. 수중 수색을 이어가던 유 경위에게 교각 돌 틈에 몸이 끼어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구조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치료 중 순직했다.
“이건 생전에 남편이 몸에서 한시도 떨어뜨리지 않고 들고 다니던 것들이야. 정말로 절대 놔두고 가는 법이 없었거든. 그런데 그 현장에는 아무것도 안 들고 갔더라고. 휴대전화도 놔두고 간 거야. 파출소장이 직접 출동을 한 것도 그렇고, 대체 얼마나 급한 상황이었으면 아무것도 못 챙기고 뛰쳐나갔는지….”
우리 가족 네 사람을 15년 동안 태우고 다니던 자동차 키.
남편은 언제나 우리 넷 다 가야지, 말했다. 아내와 둘만 가는 여행도 손사래 쳤다. 꼭 아들 둘까지 다 끼고 가야 한다고 했다. 괜히 서운할 때도 있었지만 웃어 넘겼다. 그래 우리 넷이 가족이잖아.
그래서 이 차를 여전히 처분하지 못하고 그대로 주차장에 뒀다. 남편이 운전하러 올 것만 같다.
“파출소도 그랬나 봐. 남편 생각난다고 차를 치워달라고 하더라고….”
칠보국민학교 1학년 2반 6번
수, 수, 수, 우, 수, 수, 우….
“이거 봐, ‘매사 성실하며 성적 우수하다’. 어릴 때부터 그래도 성실한 거 하나는 인정받았다니까.”
1979년, 40여 년 전 남편의 초등학생 시절이 담긴 생활통지표와 상장들을 아내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남편의 그 시절 자랑이 귀여웠다.
“나이 마흔 줄에 별 의미 없는 거기도 한데 그냥 어쩌다 같이 보면서 자랑하면 칭찬해주고 웃고 그랬어요.”
故 이강석 경정(순직 당시 43세)의 아내 김성선
2015년 2월 27일 경기 화성시 주택가에서 총기 인질극이 벌어졌다. 남양파출소장이던 이 경정은 직접 현장에 출동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신속하게 범인을 설득하고 피해자를 구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범인이 쏜 총탄에 맞아 순직했다.
“이 시계가 남편 보물 1호였어. 다른 건 모르겠는데 이건 차마 못 버리겠더라고.”
결혼 25주년 선물로 남편에게 시계를 선물했다. 아이처럼 좋아하면서 매일 찼다. 사고가 난 그날도 마지막까지 차고 있었다. 지금은 그녀의 남동생이 대신 시계를 차고 있다.
“팔찌는 몇 년 전에 내 생일 선물로 해준 거야. 같이 TV 보고 있다가 팔찌 예쁘다니까 ‘그럼 팔찌 살까’ 해서 금은방 가서 산 거거든. 그때 퇴직할 때는 순금 팔찌 해준다고 적금도 들었는데….”
“내가 사준 구두는 아니야. 남편 가기 2년 전쯤에 인터넷으로 같이 고르고 산 거야. 그때 남편이 내 것도 사주겠다고 하는 걸 내가 신발 선물 하면 도망간다고, 신발은 선물하는 거 아니라고, 됐다고 했었어. 이제 와서 보면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남편 영욱이 출근하기 전 신고 나갈 구두를 매일 닦아 줬었다.
“지금도 매일 닦는 건 그냥 그때 습관도 있고. 아무래도 여자 혼자 사는 집이니까 그렇잖아. 집에 남자가 있는 느낌 주려고 하는 것도 있어.”
영욱은 한문을 아는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했다. 쉬는 날이면 책을 읽거나 한문, 영어 공부를 했다.
외아들 인에게도 한문과 수학 등을 옆에 끼고 직접 가르쳤다.
사진은 20여 년 전 남편 영욱이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들과 공부했던 한문 책자. 남편이 쓴 한자를 빈칸에 아들이 따라 썼다.
故 이영욱 소방경(순직 당시 59세)의 아내 이연숙
2017년 9월 16일 강원도 강릉 석란정 화재 사고 당시 팀장으로 이호현 소방교 등과 함께 출동했다. 불을 끈 후 복귀했지만 이튿날 새벽 4시경 불이 다시 붙었다는 신고에 두 번째로 출동했다. 화재 진압 중 건물이 무너지면서 작업 중이던 이 소방경과 이 소방교를 덮쳤다. 18분 만에 구조됐지만 두 사람 모두 숨을 거뒀다.
승민과 만나게 된 계기는 탁구였다.
비슷비슷한 하루를 보내던 중 새로운 취미 생활을 해보고 싶었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의 권유로 탁구를 배워 볼까 지역 체육교실에 등록했다. 동료들은 “재미있는 노총각 소방관이 있다”며 어느 저녁 자리에 두 사람을 불러냈다.
“잘 어울리는데!”
우직해 보였는데 말을 꽤 재미있게 하는 남자였다. 짓궂은 주변의 장난이 왠지 싫지 않았다.
같이 탁구를 치다 보니 어느새 연인이, 부부가 되어 있었다.
“이거는 푸껫으로 신혼여행 가서 같이 산 지갑이에요. 여기에 공무원증이랑 주민등록증 같은 것도 다 들어있어요. 원래는 사진 찍는 걸 막 좋아하지는 않는데, 신행 갔을 때 찍은 사진도 한 장 있고. 나중에 딸내미 크면 아빠 쓰던 거라고 보여주려고 그대로 두고 있어요.”
故 허승민 소방위(순직 당시 46세)의 아내 박현숙
2016년 5월 4일 강원도 태백의 연립주택 지붕이 강풍에 날아가 도로에 떨어졌다. 허 소방위는 위험하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도로변에 떨어진 지붕 구조물을 철거하고 있었다. 강풍이 이어지며 옥상에 남은 또 다른 지붕 구조물이 작업 중이던 허 소방위의 머리로 떨어지면서 순직했다.
모아 보기
지갑의 주인이었던 승민이 세상을 떠난 지 6년이 흘렀다. 태어난 지 백일 만에 아빠를 잃었던 아기는 일곱 살이 됐다.
사랑하는 자식, 부모, 남편, 아내는 떠났지만 남겨진 이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다. 남겨진 이들은 무너지고 또 무너지지만 살아있다. 살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