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 안산. 그중에서도 유독 외국인이 많은 동네가 있다. 바로 원곡동이다.
발간일 2022년 1월 16일
전교생 중 한국인은 단 여섯 명, 안산원곡초.
누군가에겐 국경을 그어 피하고 싶은 곳,
누군가에겐 국경 너머로 가는 디딤돌이다.
한국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 안산. 그중에서도 유독 외국인이 많은 동네가 있다. 바로 원곡동이다.
외국인 비율 70%(1만4139명). 10명 중 7명이 외국인이다.
반월공단과 가까운 원곡동 빌라촌, 재개발이 마무리되고 있는 백운동 신축 아파트단지.
그 경계에 국경을 그리듯, 안산원곡초등학교가 있다.
“너 한국인이었어?”
하교길 분식집에서 안산원곡초 5학년 최성훈(가명·12)이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같은 반 친구 양주원(12)을 바라보며 물었다. 주원이는 입안 가득 떡볶이를 오물거리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12월 칼바람에 두 볼이 발갰다. 성훈이는 주원이와 친구가 된 지 3년 만에 주원이의 국적을 처음 알았다.
“주원이도 다른 나라에서 왔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두 살 때 중국에서 온 성훈이는 주원이가 한국인인 사실에 놀랐다. 수백 명이 다니는 원곡초에서 성훈이는 단 한 번도 한국인 친구를 본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성훈이가 본 친구들은 모두 외국인이거나 외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한국 국적을 얻은 아이들뿐이었다. 원곡초 학생 중 한국인은 단 여섯 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성훈이는 보기 드문 한국인에 주원이가 속할 줄 몰랐다.
1학년 때부터 원곡초에 다닌 주원이는 3학년 때서야 원곡초의 특별함을 깨달았다. 2년 전 어느 날, 하교하며 다른 학교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걸 봤다. 아이들은 한국어만 쓰고 있었다. 주원이에게는 이 모습이 매우 낯설었다. 원곡초 근처에선 하교 시간에 러시아어, 중국어가 많이 들리기 때문이다.
‘아, 우리 학교엔 한국인이 별로 없는 거구나….’
주원이네 반 수학 시간엔 한국인 선생님과 러시아어 선생님 두 분이 들어온다. 러시아어 선생님은 러시아에서 온 친구들에게 러시아어로 수학을 알려준다. 점심 급식 메뉴는 ‘비프 스트로가노프’(러시아 소고기 음식), 탄두리 치킨에 라씨(인도 음식). 원곡초 근처엔 러시아에서 온 학생들에게 러시아어로 수학과 국어를 가르쳐 주는 학원도 있다.
이날 오후 1시 반경 원곡초 정문을 나온 아이 50여 명 중 대부분은 원곡동 빌라촌으로 향했다. 주원이를 비롯한 5명가량만 빌라촌 반대편인 신축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 신축 아파트 단지는 원곡초에서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다. 하지만 원곡동이 아닌 백운동에 속한다. 인도가 좁은 빌라촌과 달리 인도도 도로도 넓은 아파트 단지. 원곡초에 다니는 대다수 아이들에겐 낯선 곳이다.
안산원곡초 5학년 양주원은 학교에 얼마 되지 않는 한국인이다.
주원이 가족은 지난해 8월 백운동 신축 아파트로 이사했다.
“아파트에 원곡초 다니는 애가 한 명도 없어요. 원래 6학년 형 한 명이 원곡초 다녔는데 관산초로 전학 갔어요.”
주원이가 다니는 아파트 근처 태권도 학원이나 논술 학원에도 원곡초 친구는 없다. 학교와 달리 학원엔 친구들이 전부 한국인이다. 주원이에겐 외국인이 대다수인 학교와 한국인이 전부인 학원이 너무도 다르다.
“엄마, 우리 반에 한국인이 나랑 선생님밖에 없어.”
주원이 어머니 최지윤 씨(가명·46)는 어느 날 주원이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한국 아이가 별로 없으니 괜히 주원이만 소외되는 거 아닌가.’
지윤 씨는 불안감에 주원이를 전학 보낼까 고민도 했다. 주변에서도 걱정을 키웠다.
“주원 엄마, 왜 그 학교엘 보내?”
“다른 학교에 안 보내?”
하지만 주원이는 싫다고 했다. 주원이는 원곡초가 좋다. 좋은 친구, 좋은 선생님이 있는 우리 학교니까. 지윤 씨도 주원이가 5년째 잘 다니는 모습을 보며 생각을 바꿨다.
“학교에서 중국어나 러시아어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도 있고, 앞으로 외국인이 더 많은 세상에서 살 테니 미리 적응하면 좋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등교하는 학생들이 경기 안산시 단원구 백운동 신축 아파트 단지 앞을 지나고 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김지민 씨(가명·39)는 6학년인 딸을 관산초에 보낸다. 원곡초보다 조금 더 멀다. 이렇게 하기까지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른다. 2016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의 주소지를 친정으로 옮겼다.
“원곡초 교육과정이 너무 다문화 아이들 위주로 돌아간다고 들었어요. 다문화 아이들이 오히려 한국 애들을 왕따시킨다는 얘기도 있었죠….”
주변 한국인 학부모들도 마찬가지였다. 관산초 배정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아이 주소지만 옮기거나, 아예 가족이 다같이 잠깐 그쪽으로 이사 다녀오기도 했다. ‘위장전입’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부모 마음은 대개 그랬다.
‘한국 애라서 소외되면 어쩌지?’ ‘이러다 국어 성적 떨어지면 안 되는데….’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원곡초 배정을 피하는 ‘꿀팁’이 공유됐다.
“원곡초 배정인데 어떡해요.”
“빨리 주소를 옮기세요. 입학하고 난 뒤 전학시키긴 어려워요.”
한국인 학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일러두곤 한다.
“원곡초 쪽으로는 가지도 말아야 해.”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지민 씨가 원곡동에 간 건 2년 전 지인 식당을 방문한 게 마지막이었다.
“식당가는 것도 무서워요. 외국인이랑 눈 마주치면 괜히 해코지 할 것 같고…. 혼자는 절대 못 가요.”
“다문화 많은 곳은 분위기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원곡초에 아이 안 보내려면 전입신고밖에 방법이 없어요.”
“신축 단지에서 관산초로 아이들 보내기 위해 엄마들이 엄청 노력했어요.
학교 거리는 멀지만 만족해요.”
“원곡초는 외국인들이 많아 수준이 떨어진다고 들었어요.”
“다문화 많긴 합니다. 비추천이요.”
원곡동과 백운동은 국경으로 갈린 것 같지만 5년 전까진 하나의 원곡동이었다. 백운동은 과거 원곡 1, 2동이었다. 원곡동은 원곡본동으로 불렸다. 2017년에서야 지금처럼 나뉘어졌다.
백운동 지역 주민 수가 크게 늘었고, 숫자로 나뉜 동명을 정비해야 할 필요도 있었다. 여기에 원곡동에 선을 그으려는 여론도 작용했다.
“외국인이 많다는 원곡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명칭을 바꾸는 데 영향을 미쳤죠.”(송바우나 안산시의원)
장벽은 더 높아졌다.
“원곡초에 아이들을 보낼 수 없어요.”
백운동 신축 아파트 입주민들은 입주 6개월 전부터 원곡초 배정에 반대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경기도안산교육지원청에 100건이 넘는 민원을 제기했다. 통학구역을 관산초까지 넓혀달라는 내용이었다.
안복현 원곡초 교장은 학부모 설명회를 열었다. 이주배경 학생들은 한국어 실력에 따라 수준별 수업을 하니 한국 학생들 피해가 없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 한국인 학생들이 혜택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홍보하려 했다.
하지만 안 교장은 그 때만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해진다. 학부모들이 언성을 높였다.
“왜 그런 학교에 다녀야 합니까?”
“학교 성적이 전국 몇 등인 거예요?”
안 교장은 애써 준비한 설명 자료를 다 소개하지도 못했다.
교육지원청은 결국 지난해 7월 결단을 내렸다. 신축 아파트 통학구역을 원곡초, 관산초로 지정했다. 학부모들은 둘 중 한 곳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 신축단지 일부 동에선 관산초가 가깝다는 이유에서였다. 관산초는 빈 교실이 많지만, 원곡초는 인근 재개발이 끝나면 과밀학교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신축 아파트 학부모들에겐 선택지가 두 곳이 됐다. 하지만 원곡초에 입학한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원곡초 기피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원곡초 1, 2학년엔 주원이처럼 조부모 때부터 한국인인 학생이 단 한 명도 없다. 지난해 10월 기준 원곡초 학생 수는 총 449명. 이 중 이주배경 학생은 지난해 기준 98.6%, 443명이다.
2013년
2015년
2017년
2019년
2021년
*출처: 안산원곡초등학교. 매년 4월, 2021년만 10월 기준.
원곡동은 어떻게 이렇게 변했을까. 원곡초 앞에서 20년가량 문방구를 하는 홍모 씨(66)는 원곡동의 변화를 몸소 체감했다.
“15년 전쯤부터 한국인들은 점점 고잔동 같은 동네로 빠져나갔어요. 새 아파트가 올라오는 곳들이죠. 원곡동 빈자리는 이주노동자들이 채웠죠. 그러면서 외국 아이들이 늘었어요.”
사람들이 애들을 점점 적게 낳은 탓도 있었다. 인근 공단 때문에 공기가 나빠져 사람들이 떠난다는 얘기도 들렸다. 원곡동 외국인 주민 비중은 2012년만 해도 35%였다. 2021년엔 70%나 됐다.
주민 이명자 씨(41)도 원곡동과 함께 컸다. 조부모 때부터 원곡동에 산 토박이다. 자신은 물론이고 딸, 아들까지 같은 원곡초를 나왔다. 명자 씨가 원곡초를 졸업한 시기는 1994년. 당시만 해도 원곡동은 안산의 중심이었다. 활기차게 돌아가는 반월공단과 가까웠기 때문이다. 원곡동 중에서도 원곡초는 인기 학군이었다.
20년 뒤 큰딸이 입학할 때는 원곡초의 위상이 달라져 있었다. 아이를 원곡초에 보낸다고 하면 다른 학부모들은 명자 씨를 ‘특이하다’고 했다.
“거기 외국인 다니는 학교잖아요.”
“수준 떨어지는 학교에 왜 굳이 아이를 보내요?”
1994년 이명자 씨 안산원곡초 졸업 사진(왼쪽 사진). 지난해 12월 이명자 씨가 같은 장소에서 꽃다발을 들고 있다.
명자 씨는 2018년 원곡초의 마지막 한국인 학부모회장을 지냈다. 지금은 중국인 학부모가 회장을 맡고 있다. 명자 씨가 회장을 맡는 동안 한국 학생들은 한 명, 두 명씩 전학을 갔다. 반면 이주배경 학생들은 경기 안산시 상록구, 경기 시흥시에서 애써 전학을 왔다.
어른들이 만든 원곡의 국경. 이 너머의 세계를 원곡초 학생들은 졸업 후에야 접한다. 원곡초에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이주배경 학생들만 주로 만나기 때문이다. 졸업하면 학교 때와는 온도가 다른, 차가운 현실과 마주한다.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고려인 피브키나 이리나(15·여)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와 줄곧 원곡초를 다니다 2020년 졸업했다.
초등학교 때는 적응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원곡초에는 러시아어를 하는 이중언어 강사가 있었다. 러시아어로 얘기할 친구들도 많았다.
“처음에는 한국 애들이랑 놀았어요. 점점 러시아에서 온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나중에는 거의 러시아어 할 줄 아는 친구들이랑 놀았죠.”
이리나는 원곡초에서 한국어를 못하는 친구들에게 통역사였다. 매일 두 시간씩 꾸준히 한국어를 배운 결과였다. 6학년 때부터는 밴드부에 들어가 학교에서 공연을 했다. 방탄소년단의 ‘봄날’, 노브레인의 ‘넌 내게 반했어’를 기타로 쳤다. 밴드부 활동을 한 뒤부터는 학교에 조금이라도 빨리 가고 싶어졌다. 친구들과 기타를 치고 싶었다.
안산 원곡동 한 카페에서 만난 피브키나 이리나.
이리나는 정든 원곡초를 졸업하며 한국 학생이 더 많은 원곡중을 선택했다. 지난해 3월 기준 원곡중의 이주배경 학생 비율은 17.8%다.
“러시아 애들이 많은 중학교가 있지만 거긴 가기 싫었어요.” 이리나는 한국인이 많은 학교에서 한국어를 더 많이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이리나는 오히려 중학교에 오고 나서 말수가 더 줄었다. 한국인 친구와 친해지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리나의 중학교 친구는 러시아계 아이들 네 명뿐이다.
“같은 반 한국인 친구들하고 더 얘기하고 싶어요. 놀고 싶고…. 근데 한국인 친구들은 다른 반 애들이랑 친해요.”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니 한국어가 늘기 힘들다.
“선생님과 반 애들이 다 같이 있는 단체 채팅방이 있어요. 애들이 ‘레알’(진짜의 속어) 같은 말이나 줄임말을 쓰면 전 잘 못 알아들어요. 다른 애들은 학교에서 있던 일을 채팅방에서 얘기하죠. 근데 저는 그냥 글을 읽기만 해요.”
공부도 점점 어려워졌다. 수학은 그나마 낫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선행학습을 한 터였다. 하지만 어려운 단어가 많은 국어, 국사가 큰 문제다.
“국어, 역사는 머릿속에서 번역이 잘 안 돼요. 문제를 못 풀겠어요. 집에 가서 다시 해석해봐야 해요.”
이리나는 요즘 갓 태어난 조카를 돌보는 틈틈이 시간을 쪼개 미술학원에 다닌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는 꿈이 생겼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다. 안산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온 뒤 프랑스로 유학을 가 미술대학을 나오고 싶다. 대학을 마치면 한국으로 돌아와 디자인 회사에 취업하고 싶다. 한국에서 자랐으니 한국에서 계속 살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꿈이 막막하게 느껴진다.
“제가 한국 사람이 아니니 회사를 다니기 어려울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어떡하죠?”
원곡초는 국경을 지우려 애쓰고 있다. 이리나 같은 아이들이 벽에 부딪히지 않도록.
원곡초 수학시간엔 한국어와 러시아어, 중국어가 들린다. 각 언어 강사가 해당 언어권에서 온 학생들을 돕는다. 러시아어 담당 김율리아 선생님(29)은 나눗셈 기호 등 중앙아시아권과 다른 한국의 부호와 표기법 등을 가르친다.
“한국어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는 학생이라도 수학문제를 이해하고 푸는 데는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그런 학생들을 돕기 위해 협력수업을 진행합니다.”
원곡초는 경기도교육청이 지정한 다문화국제혁신학교다. 이주배경 학생에게 한국어와 모국어를 같이 가르친다. 한국 정착을 도우면서 뿌리를 잊지 않게 하려는 취지다.
정서적 융합도 돕는다. 사물놀이와 민요, 태권도와 테니스 수업을 한다. 밴드부를 따로 운영하며 예체능 교육에도 공들인다. 원곡초 안 교장은 예체능 활동이 아이들 간 거리감을 좁힐 것으로 믿는다.
“음악이나 운동은 말이 안 통해도 아이들이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는 계기가 됩니다.”
‘세계 음식 체험의 날’도 한달에 한번 운영된다. 급식 때 다양한 국가 음식이 나오는 날이다. 감혜은 원곡초 영양사는 아이들이 급식을 패밀리 레스토랑 외식처럼 반길 때마다 뿌듯하다.
“친환경 식자재로 무상 급식을 한다고 얘기하면 아이들이 ‘왜 비싸고 좋은 걸 우리에게 주나요’라고 물어요. ‘여러분이 자라서 이 나라 국민으로 같이 건강하게 살라고 지원하는 거예요’라고 설명해주죠. 그러면 아이들이 ‘감동이에요’라고 해요.”
안산원곡초 테니스 연습장에서 테니스부 학생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위쪽 사진). 지난해 11월 안산원곡초 ‘세계 음식 체험의 날’에는 멕시코 음식이 나왔다.
원곡초 덕에 5학년 제임스(가명·12)는 빠르게 한국에 적응했다. 2019년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한국어를 한 마디도 못했다.
하지만 제임스는 2년 만에 유성과 나로호 발사에 대해 한국어로 설명하는 ‘우주 소년’이 됐다.
“과학자가 돼 우주를 연구하고 싶어요. 학교에서도 과학 시간이 제일 좋아요. 중력이나 가속도 같은 어려운 표현은 유튜브로 예습하고 있어요.”
제임스의 동생 3학년 주디(가명·9)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학교 도서관이다. 주디 역시 수준별 한국어 수업의 도움을 받았다. 아직 한국어 발음은 서툴지만 야무지게 표현한다.
“음악 시간에는 아름다운 기분이 들고, 체육시간에는 신나는 기분이 들어요.”
주디는 작년까지 친구들이 ‘놀자’고 말할 때 친구들을 노려보기만 했다.
“‘놀자’는 말을 ‘놀리자’로 알았어요. 날 놀리려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이젠 그 차이를 알아요. 그래서 친구들이 많아졌어요.”
학교는 제임스와 주디에게 한국에 적응할 시간을 벌어준 곳이다.
원곡초에서도 어려움은 있다. 중국과 러시아계 아이들이 대다수를 이루며 다른 나라 아이들은 소수자가 됐다. 아이들은 끼리끼리 어울리게 된다. 제임스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중국계 친구에게 놀림 받았다.
모국어로만 말하는 아이들은 한국어를 배울 기회를 놓친다. 한국인과 이주배경 학생이 골고루 섞인 학교에서 일하다 지난해 원곡초에 온 한 선생님은 이 점이 우려스럽다.
“한국 아이들이 일정 비율 이상이어야 외국 아이들도 한국어를 배울 의지를 가져요.”
교사들의 부담도 가중된다. 러시아계 학생이 최근 급증해 164명이나 된다. 인근에 러시아어로 한국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학원이 생겨날 정도다. 하지만 원곡초의 러시아어 이중언어 강사는 둘 뿐이다.
이런 현상은 원곡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주배경 학생이 곳곳에서 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1년 전국 초등학교 학생 중 4.2%가 이주배경 학생이다. 비중이 9년 전(1.1%)에 비해 4배가량으로 늘었다. 실제로 원곡초 인근의 안산서초등학교 역시 지난해 기준 이주배경 학생이 전체의 절반 수준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안산 선일중학교도 이주배경 학생 비율이 50%를 넘었다. 안산국제비즈니스고등학교도 19%가량이 이주배경 학생이다.
전국에서 비슷한 환경의 학교들이 원곡초에 ‘공존 노하우’를 묻는다. 대구의 신당초등학교도 그 중 한 곳이다. 2018년 이주배경학생이 전체 학생의 절반에 조금 못 미쳤지만, 지금은 65%에 이른다.
대구 신당초에는 인근 성서공단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다닌다. 다른 동네에서 신당초로 원거리 통학을 하기도 한다. 이주배경학생 학생들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이 있다는 소문이 돌아서다.
학교는 급격히 늘고 있는 이주배경 학생에 분주하다. 시의적절하게 대응하기 어려울까 우려가 나온다.
“언젠가 선생님들이 한국어로 수업하기 어려워질까 봐 걱정이네요.”
앞으로 인구가 줄며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건 불가피하다. 지금 늘고 있는 이주배경 아이들은 그들의 2세, 3세를 낳을 것이다. 우리 모두를 위한 ‘공존 정책’이 필요할 때다.
교육현장에서는 최대한 많은 학교에 이주배경 학생을 위한 제도를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이주배경 학생들이 특정 학교로 몰리지 않기 때문이다.
“자꾸 한 학교에만 이주배경학생들이 몰리다보면 한국인 학부모들이 해당 학교를 기피하게 됩니다.”(안복현 원곡초 교장)
“우리학교는 베트남 출신 학생들이 많아 자기들끼리 어울리며 베트남어를 주로 써요. 한국 아이들과 어울릴 기회가 적다 보니 한국어를 배우는 속도가 느려요.”(김진성 신당초 교감)
안상규 안산서초 교감은 한국어 예비학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외국에서 온지 얼마 안 된 학생은 한국어 예비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뒤 일반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지원했으면 좋겠어요.”
다문화 교육 초점이 이주배경 학생들에게만 맞춰져 있다는 점도 문제다. 기존 한국인 학생도 달라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공존하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지역사회가 국경을 긋지 않게 이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인구의 27%가 이주배경 출신인 독일에선 일반 학교에 상호문화 교육을 권한다. 이주민에겐 독일 문화를 가르친다. 이민자가 늘어난 아일랜드도 2005년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수준별 상호문화 교육 과정을 마련했다.
2018년
49.7
2019년
54.6
2020년
56.4
2021년
65.4
자료: 대구신당초등학교
‘원곡초 마지막 한국인 학부모회장’ 명자 씨는 원곡초 인근에 공사 중인 신축 아파트 단지에 2023년 입주한다. 원곡초 바로 코앞에 있는 단지다. 원곡초에서는 기대도 나온다. 이 단지의 통학구역만큼은 원곡초에만 배정될 것이라고. 원곡초에 한국 학생이 늘면 공존이 더 가능하리라고.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인근 공인중개업소에선 벌써부터 통학구역 변경 얘기가 나온다.
“입주 시점에 주민들이 민원을 넣으면 아파트 통학구역이 관산초로 확대될 거예요. 아파트 가격이 좀더 올라갈 수 있죠.”
이 단지 재개발조합 관계자는 이주민 아이들이 오히려 전학 갈 거라고 장담했다.
“통학구역이 바뀌지 않더라도 한국 아이들이 많아지면 그 학교의 이주민 아이들이 전학을 나가게 될 거예요. 1, 2년만 있으면 학교 분위기가 (한국인 중심으로) 바뀔 겁니다. 지켜보세요.”
한국인과 이주민이 어울려 산다는 선택지는 좀처럼 어른들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국경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원곡초 선생님들은 이주배경 학생들에게 적응의 ‘첫 단추’로 한국어를 꼽는다. 하지만 이주배경 아이들은 한국에서 나고 자라도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기 어렵다.
조나단은 2016년 한국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인도네시아인이지만 조나단은 한국을 떠나본 적이 없다. 5년 동안 ‘조나단의 세계’는 팔 뻗으면 세간이 손에 닿는 수원의 원룸이 전부였다.
조나단은 어린이집에 가고 싶지만 계속 거절당했다. 그들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은 안산뿐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수원으로, 수원에서 안산으로. 조나단의 부모님은 아들을 위해 ‘이주 속의 이주’를 감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