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의 세계는 두 평 원룸이 전부였다.
어린이집들이 번번이 입소를 거부하자
이주 속의 이주를 감행한다.
결국 이주민들은 안산으로 수렴한다.
“구십칠, 구십팔, 구십구, 백!”
2021년 12월 6일 경기 안산시의 한 어린이집 인근 놀이터. 그네 타기에 한창인 조나단(가명·6)은 한국어로 크게 숫자를 외쳤다. 엄마 와티(가명·39) 씨가 등을 밀어줄 때마다 박자 맞춰서. 조나단은 인도네시아인 부부가 낳은 아이다.
“스낭 다탕 크 테카(어린이집 오니까 좋아)? 푸냐 트만 바냑 디 테카(어린이집에 친구 많아)?”(와티 씨)
“이야 스낭(응 좋아). 바냑(많아요).”(조나단)
어린이집은 조나단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조나단은 어린이집에 다녀오면 ‘짹짹이’가 된다. 짹짹이는 어른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조나단이 호기심도, 말도 많아서다.
한국어가 서툰 엄마, 아빠에게 한국어도 가르쳐준다.
“나 화장실 가요.”(와티 씨)
“‘갔다 올게요’라고 해야지.”(조나단)
“간지러워.”(아빠)
“‘가려워’가 맞아.”(조나단)
“어린이집에서 실컷 놀며 에너지를 쏟고 와서 그런지 집에서 잠도 잘 자요. 짜증도 덜 내고요.”(와티 씨)
어린아이를 가진 부모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조나단과 와티 씨는 어렵게 얻어낸 행복이다. 이들에게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인도네시아를 떠난 부부는 경기 수원시에 정착했다. 수원은 ‘제2의 고향’이 됐다. 하지만 안산시로 다시 떠나야 했다. ‘이주 속 이주’를 감행해야 했다.
조나단은 인도네시아인 부부 구스티(가명·41) 씨와 와티 씨의 아들이다. 부부가 결혼한 지 13년 만인 2016년 5월 수원시에서 낳았다. 조나단이 미등록 이주아동이 된 건 부부의 국내 비자가 만료돼서다. 부모가 비자 갱신에 실패하면서 ‘한국밖에 모르는’ 조나단은 한국에 체류할 수 없는 신분이 됐다. 투명인간처럼 살게 됐다.
수원시의 두 평 남짓한 원룸방.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8만 원짜리인 조나단 가족의 보금자리. 조나단에겐 이곳이 세계의 전부였다. 미등록 신분 탓에 어린이집도, 문화센터도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나단이 만 1세가 될 때까진 괜찮았다. 하지만 걷기 시작하니 집이 점점 좁게 느껴졌다. 와티 씨는 조나단을 조심스럽게 데리고 다녔다. 조나단은 다치면 병원조차 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동네 놀이터, 전통 시장, 어디를 데리고 가든 다칠까 봐 겁이 났어요. 비자가 만료되고 나서는 보건소에서 예방 접종조차 거부당했거든요.”
인도네시아에서 온 신도들이 다니는 수원의 한 교회가 그나마 안전한 공간이었다. 비슷한 처지의 미등록 외국인들이 있었고, 인도네시아어로 소통할 수 있었다. 이젠 교회마저 자주 가기 어려워졌다. 2020년 초부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출입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아이가 자라며 원룸은 더욱 비좁게 느껴졌다. 아이의 활동 폭이 넓어졌다. 조나단이 말하고 뛰어다니는 데 익숙해진 세 살 무렵이었을까. 와티 씨의 몸과 마음도 지쳐버렸다.
생계까지 어려웠다. 일용직 노동자인 구스티 씨의 소득은 일정치 않았다. 한 달에 80만 원밖에 못 벌 때도 있었다. 와티 씨도 돈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조나단을 맡길 어린이집이 없었다.
식당에서 문 열기 전 청소하는 일을 구한 적은 있다. 오전 7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청소를 했다. 조나단을 유모차에 태워 놓고서.
이마저도 코로나19로 3개월 만에 일자리를 잃었다. 집에서 인도네시아 음식을 만들어 팔아보려 했지만 놀아 달라고 떼를 쓰는 조나단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계속 밖에 나가자고 해요. 집에선 TV와 스마트폰만 보려 하고요. 저는 책이라도 보여주려다가 싸우죠.”
조나단은 인도네시아어로는 말이 많은 아이였다. 그런데 동네 놀이터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들에게는 다가가지 못했다.
“같이 놀고 싶어 하면서도 어려워하더라고요. 말이 안 통해서 더 그랬던 거 같아요.”
수원 교회의 선생님 김모 씨는 어린이집을 해결책으로 제안했다. 한국어를 배우고 친구들도 사귈 수 있는 공간.
“미등록 이주아동이지만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야말로 꿈이었죠.” 와티 씨 대신 어린이집을 알아봐 준 김 씨가 당시를 회상했다.
“세 살짜리 미등록 아이가 있는데 받아줄 수 있나요?”
“미등록이 뭐예요?”
“부모님이 불법 체류하는 분의 아이요.”
“어휴 저희는 안 돼요.”
단칼에 거절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돈을 잘 낼 수 있다’는 말은 입가에만 맴돌았다.
“대화가 돈 얘기까지 가지도 않아요. 순화시켜서 ‘미등록’ 아이라고 하면 어린이집에선 무슨 말인지 몰라요. 그러다 ‘불법 체류자’라고 하면 기겁하며 전화를 끊는 패턴이 반복됐죠.”(김 씨)
그렇게 거절당한 어린이집이 10여 곳에 달했다. 어느새 3년이 흘렀다.
와티 씨도 조나단이 계속 투명인간처럼 지내는 게 싫었다. 2019년 말부터 인도네시아로 돌아갈 계획도 세웠다. 비행기 편을 알아보고 짐까지 다 쌌다. 그런데 돌연 코로나19가 터졌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코로나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었다.
“조나단에게 한국이 더 안전할 것 같았어요. 더 머물 수밖에 없었어요.”(와티 씨)
“미등록 이주아동을 받아주는 어린이집이 안산에 있대요.”
조나단의 안타까운 사정을 보던 교우 김모 씨가 대안을 내놨다. 안산시로 아예 이사를 하는 것이다.
“안산에는 미등록 이주아동들을 받아주는 어린이집이 많았어요. 보육료를 아예 안 내도 되는 곳도 있고, 조금 싼 곳도 있었어요.”(김 씨)
안산시에는 외국인주민상담지원센터, 글로벌청소년센터 등 외국인 부모들이 정보를 얻기 쉬운 곳들이 많다. 보육과 교육 여건이 좋은 편이다. 안산은 이주민 학부모들의 ‘대치동’인 셈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수원으로 이주해 겨우 정착했건만 수원에서 안산으로 또 이주해야 하다니.’
이주에 이어 이주를 하긴 정말 쉽지 않았다. 수원에서 쌓아온 걸 모두 버려야 했다. 보건소에서 미등록이란 이유로 예방 접종을 거부당한 조나단을 받아준 병원, 육아용품이 모자란 조나단에게 용품을 물려주던 집주인 할아버지와 할머니 모두.
와티 씨는 용기를 냈다. 이미 5년째 살아 ‘제2의 고향’이 된 수원이지만, 조나단의 어린이집 입소가 가장 중요했다. 안산의 한 어린이집이 2021년 5월 28일부터 조나단을 받아주기로 했다.
안산에서 구한 집에 입주할 수 있는 날짜는 2021년 6월 8일. 조나단의 어린이집 입소일보다 10일가량 뒤였다. 와티 씨는 조나단을 데리고 수원 집에서 안산 어린이집까지 지하철로 왕복했다. 지하철과 도보로 1시간씩, 왕복 2시간이 걸렸다. 조나단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근처에서 기다려야 했다.
“‘안산 적응’을 연습했어요. 제가 좀 길치거든요. 새로운 집과 어린이집 근처 길을 영상으로 찍어서 외웠어요. 아직 안산에는 친구가 없어요. 주말에 수원 교회를 가서 교인들을 만나요.”(와티 씨)
수원의 일부 어린이집들이 조나단을 거부한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한국인 자녀들이 많은 어린이집은 굳이 이주아동을 받을 필요성을 못 느낀다. 한국 학부모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수원시에서 이주아동은 한국인 아동과 달리 보육비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다. 부모가 보육료 전액을 내야 한다. 미납하면 어린이집 재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주노동자인 부모는 일자리가 불안정한 편이라 보육료를 밀린 채 달아날 수 있단 시각이 있다.
수원시 어린이집 200여 곳을 회원으로 둔 수원어린이집협의회 측은 미등록 아동에 난색을 표했다.
“외국인 아동은 수원시청이 전산시스템에 직접 등록해 줘야 입소할 수 있어요. 어린이집이 마음대로 받을 수 없습니다. 미등록 아동은 단체 상해보험에 가입도 안 됩니다. 혹시라도 다치면 보상을 못 받는 점도 부담입니다.”
안산의 상황은 달랐다. 미등록 이주아동의 입소를 허용하는 곳이 여럿 있었다. 비정부기구(NGO)가 운영하는 일부 어린이집은 아예 보육료를 받지 않았다.
“아이는 등록이든 미등록이든 차별받지 않고 교육받을 권리가 있어요. 안산시도 미등록 아동은 보육료를 지원하지 않아요. 그런데 부모가 돈을 낼 수 있다고 하면 똑같이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안산의 한 어린이집 원장)
이 어린이집은 조나단 부모의 여권과 조나단의 출생증명서만 확인하고 입소를 허락했다. 전체 아동의 90% 이상은 이주배경 아동이어서 선입견이 없었다. 보육료를 미납한 외국인 부모들을 독려해 본 경험도 있었다.
행복했던 기간은 한 달에 불과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같은 해 7월 초 어린이집 등원이 전면 중단됐다. 맞벌이 부모 등 특수한 경우에만 아이들을 돌봐주는 긴급 보육이 시작됐다.
조나단은 어린이집에 갈 수 없었다. 어린이집이 부모님의 재직증명서를 요구했지만, 비자가 만료된 구스티 씨는 재직증명서를 제출할 수 없었다. 매월 소득이 일정치 않아 재직증명서를 대신할 만한 월급 명세서도 내지 못했다.
“조나단 아빠가 고용됐던 기업이 부도났고, 이후 새로 옮긴 회사에서도 일감이 없어서 계속 회사를 옮겨 다녔어요.”(목사 아구스 씨(가명))
이 와중에 와티 씨에게 둘째가 생겼다. 와티 씨는 입덧이 심해지자 병원 진단서까지 받아 어린이집에 냈다. ‘제발, 아이를 받아주세요.’ 간절한 마음이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시 매뉴얼을 따라야 했어요. 코로나 확진자가 많이 나오는 지역이라 (시 측에) 저희만 봐달라며 (입소를 허용)할 수가 없었어요.”(안산 어린이집 원장)
2021년 11월 12일. 공사 중인 어린이집을 찾은 조나단은 와티 씨의 손을 잡고 정문 근처에서만 서성였다.
멀찍이 서서 바라보기만 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조나단, 어린이집이네. 어린이집 다시 가고 싶어?”
와티 씨가 말을 걸었지만, 조나단은 어린이집을 쳐다보기만 했다.
어린이집은 낯선 모습이었다. 시멘트 외벽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공사 폐기물이 자루에 담겨 입구에 잔뜩 쌓여 있었다.
조나단이 없는 사이 전면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간 것이다. 긴급 보육 대상인 어린이들은 임시로 마련된 다른 어린이집에 다니게 됐다. 조나단은 어린이집 친구들을 보고 싶지만 어린이집이 어딘지 알 수도 없다.
두 평 원룸에 다시 갇히다
조나단은 안산의 방 한 칸짜리 원룸에 다시 고립됐다. 어른 네 명이 앉으면 꽉 차는 공간. 조나단은 이곳에서 먹고 자는 것은 물론이고 공부와 놀이까지 다 해결해야 한다. 친구는 결국 엄마뿐이다.
와티와 조나단이 사는 원룸 내부를 클릭해 살펴보세요.
소파
현관
부엌
집에서 500m 거리에 있는 공원이 조나단의 유일한 놀이터다.
“공원에 나가자.”
와티 씨의 말에 조나단은 재빨리 일어섰다. 모래놀이용 삽과 통을 들고서. 날씨가 좋을 땐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을 찾는다. 하지만 겨울엔 이마저도 어렵다.
경기 안산시의 한 공원을 찾은 와티 씨와 조나단.
와티 씨는 미등록 신분으로, 낯선 안산이란 도시에서 더욱 움츠러든다. 어느 날 조나단이 열이 많이 났다. 수원에서라면 자주 가던 병원을 찾았을 일이었다. 하지만 와티 씨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어느 병원이 미등록인 우리를 받아줄까.’
다른 곳도 함부로 갈 수가 없다. 조나단은 책을 좋아하지만 지역 도서관을 아쉽게 지나치기만 한다.
와티 씨 모자는 둘 다 한국어가 서투르다.
“쉬 안 가? 쉬 안 갈래?”
와티 씨가 한국어로 묻자 조나단은 “응”이라고만 했다.
서툰 한국어를 듣고 자란 조나단의 한국어도 더디다.
“조나단이 여섯 살인데 한국어 수준은 두 살 정도로 보여요. 놀 때 단어들만 말해요. 문장을 만들어서 자기 의사를 전달하는 건 아직 안 돼요. 인도네시아 말은 되게 잘해서 ‘짹짹이’라고 별명을 붙여 줬을 정도인데 말이죠.”
조나단 가족을 돕고 있는 인도네시아인 목사 아구스 씨는 조나단의 언어 능력이 걱정이다.
사회성도 떨어지고 있다. 조나단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모든 걸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했다.
“점점 애 같지 않아졌어요. 애들은 울거나 떼를 쓰는데 조나단은 어른들처럼 화를 내더라고요. ‘너 가만히 안 둘 거야’ 같은 험악한 말을 해요. 표정도 어른들이 눈살을 찌푸리거나 하는 것을 따라 해요.”(와티 씨)
경기 수원의 단골 어묵집을 찾은 와티 씨와 조나단(왼쪽 사진). 수원의 교회에서 드럼을 갖고 노는 조나단.
조나단이 한국을 떠나 인도네시아로 가면 모든 게 해결될까. 조나단은 단 한 번도 인도네시아를 가본 적이 없다.
“조나단, 보고 싶어. 인도네시아로 와.”
“제 집은 한국이에요. 인도네시아 안 가요.”
조나단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영상으로만 만나봤다. 그럴 때마다 조나단은 분명히 선을 긋는다.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조나단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은 많다. 조나단이 다니는 교회만 해도 미등록 이주아동 미카엘(가명·3)과 안나(가명·2)가 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다. 미카엘과 안나의 부모들도 어린이집에서 계속 거부를 당했다. 이제 수원에서 안산으로 이사를 고민 중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미등록 이주아동은 약 2만 명 규모로 추산된다. 인권단체는 규모가 이보다 더 클 것으로 예상한다. 외국 국적 아동은 출생 등록을 하지 않아 통계에 잡히지 않은 아동들이 있을 수 있다.
이 아이들이 갈 곳은 안산뿐이다. 안산시는 2018년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시 예산으로 등록 외국인 주민 자녀에게 보육비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2020년에는 전액 지원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부터 누리과정 보육비 24만 원을 전액 지원하고 있다. 어린이집들이 보육비 지원을 받으니 이주아동들도 입소하기 수월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주민 가족들은 안산으로 수렴한다. 안산은 이주민이 모이는 섬 같은 곳이 됐다.
경기도의 이주아동 보육 실태를 조사한 이영아 아시아의창 상임이사는 이주민 보육 정책이 안산 외의 지역에서도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외국인 아동이 늘어난다는 건 한국에서 가족을 형성해 살아가는 이주민들이 많아진다는 얘기입니다. 보육 정책은 가족 전체를 도울 수 있어요. 보육비를 지원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늘어나야 합니다.”
결국 돌고 돌아 안산으로
안산의 ‘이주민 인프라’를 찾아 또 다른 이주를 하는 이주민들은 조나단뿐만이 아니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누르가셰프 아딜벡(16)은 카자흐스탄에서 온 소년이다. 열 살 때인 2015년, 고려인 3세인 어머니를 따라 안산에 왔다. 카자흐스탄 경제가 악화돼 더 좋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아딜벡 가족은 4년 만에 안산에서 충북 청주로 이사하게 됐다. 아버지가 직장을 청주로 옮겨서였지만 사실 안산에 남으려면 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딜벡은 이주민이 많은 안산 밖 다른 지역에서 스스로 실력을 알아보고 싶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한국어도 잘하고, 적응을 잘했어요. 그래서인지 ‘한국 아이들과 제 실력으로 경쟁하고 싶다’는 말도 했었죠.”(임미은 선일중 교사)
아딜벡이 다니던 안산 선일중은 이주배경 학생이 전체의 50%를 넘는다. 하지만 청주의 학교에선 이주배경 학생이 한 학년에 서너 명 정도뿐이었다. 아딜벡이 처음 겪어보는 환경이었다.
“처음에 애들이 엉덩이를 툭툭 치며 장난을 거는 거예요. 카자흐스탄에선 절대 남자들끼리 밀접한 접촉을 안 하거든요. 안산에선 한국 애들도 중앙아시아 출신 애들이 싫어하는 걸 잘 아니까 그런 장난 안 쳐요.”
아딜벡은 문화적 차이에 당황했다. 이른바 ‘일진’ 같은 친구들은 적나라하게 대했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
아딜벡은 갑작스러운 성적 하락에도 당황했다. 전학 온 청주 학교에서 본 중간고사 점수는 평균 60점대였다. ‘원래 반에서 3등 밑으로 떨어져 본 적이 없었는데….’
시험 난도가 높아지며 취약한 한국어 실력이 발목을 잡았다.
“2학년 되고 나서 놀긴 했지만…. 사회 같은 과목에선 제가 별로 안 좋아하는 서술형이 정말 많이 나오더라고요.”
아딜벡은 정신이 번쩍 들어 공부에 매달렸다. 다행히 이듬해에는 평균 80점 후반까지 점수를 끌어올렸다. 이번엔 고등학교 진학이 문제였다. 아딜벡은 경영 분야에 특화된 특성화고에 가고 싶었다. 카자흐스탄 증권업계에서 일했던 아버지처럼 금융계 진출을 꿈꾸고 있다. 이미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주식 공부를 시작할 정도로 관심이 많다. 특성화고를 가면 의류 사업도 시도해 보고 싶다. 하지만 청주 근처에는 그런 특성화고가 없었다.
진로 선택을 상담하고 비자 문제를 상의할 곳이 없는 점도 문제였다. 안산의 선일중엔 다문화부가 따로 있었다. 러시아어에 능통한 선생님이 비자 문제를 상세히 안내해줬다. 일반 선생님들도 이주배경 학생에게 익숙해 ‘맞춤형 진로상담’을 해주곤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주배경 선배들도 있어 쉽게 조언을 구했다. 하지만 청주에선 이 모든 걸 아딜벡이 알아서 해야 했다.
아딜벡 가족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안산으로 돌아왔다. 결국 안산밖에 답이 없다. 이렇게 이주민들은 안산으로 수렴된다. 안산은 이주민의 섬이다.
섬이 징검다리가 되려면
안산 아이들이 다른 지역으로도 건너갈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아주려는 시도도 있었다.
2019년 경기도의회에서는 ‘경기도 이주아동 조례’가 발의됐다. 조례안은 이주아동을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지지 아니한 18세 미만의 사람’으로 규정했다. 미등록이든 등록이든 관계없이 지원 대상으로 본 셈이다.
‘이주아동은 출생등록 될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하기도 했다. 출생등록은 이주아동의 규모를 파악하고 최소한의 복지 지원을 하기 위한 첫 단추다. 조례안이 통과되면 조나단도 수원에서 어린이집에 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사실이 알려지자 ‘문자 폭탄’이 쏟아졌다.
출처: 다문화 반대단체 온라인 커뮤니티
조례안을 주도한 김현삼 의원은 물론 다른 경기도의원에게 문자메시지가 쏟아졌다. ‘난민 반대’ ‘다문화 반대’를 외치는 외국인 혐오 단체들이었다. 안산시에서는 10차례가 넘는 집회가 벌어졌다. 김 의원 집 앞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단체들과 따로 면담까지 했지만 설득할 수가 없었어요. 반대 단체 분들은 이주민들이 아이를 앞세워 한국에 들어오고, 결국은 한국인의 자리를 빼앗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더라고요.”
김 의원은 이 ‘실패한 조례안’을 씁쓸하게 회상한다. 1980, 90년대 반월공단에서 일했던 그는 공단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안다.
“요즘 사장님들이 이주노동자가 더 필요하다고 하소연합니다. 일할 사람이 없어 주문량을 못 댄다는 거예요. 내국인은 채용하고 싶어도 오질 않고요. 그런데도 이주민에 대한 인식은 바뀌지 않고 있죠.”
독일 정부는 자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에게 출생증명서를 발급한다. 태국이나 베트남 같은 개발도상국도 대부분 국적과 관계없이 출생등록을 해준다. 정부가 아동들을 출생등록 하면 아동의 인권침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예방 접종 같은 기본적인 복지 지원도 할 수 있다. 일본은 2019년부터 국적을 묻지 않고 만 3~5세 어린이에게 무상보육 및 유아교육을 해준다.
보육 측면에서 지원을 강화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지난해 경기도의회는 등록 외국인주민 자녀에게 보육비를 직접 지원하도록 명시한 조례를 통과시켰다.
흔히 외국인 주민이 늘어나면 복지 부담도 늘어날 거라는 예상이 많다. 이민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이주노동자가 한국 전체의 소득세수에 기여하는 액수는 2017년 1조 원을 넘어섰다. 주민 관련 정책 예산은 2018년 기준 8500억 원 규모에 그친다.
세금을 꼬박꼬박 내도 보육에선 차별을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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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례는 통과됐지만 그뿐이었다. 현재 경기도 내에서 이주아동에게 보육비를 별도로 지원하는 지자체는 안산, 부천, 시흥, 군포 등에 그친다. 그마저도 시 자체 예산으로 해결하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조례 통과 뒤에도 지원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외국인 보육비 지원은 예산 규모가 크고, 지자체가 아닌 중앙 정부가 해야 할 일입니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지침을 통해 보육비 지원 대상을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자로서 주민등록법에 의해 주민번호를 정상적으로 부여받은 만 0~5세 아동’으로 제한한다. 이 지침의 근거가 되는 영유아보육법을 살펴보면 국적에 따른 차별이 용인되고 있다. ‘영유아는 자신이나 보호자의 성, 연령, 종교, 사회적 신분, 재산, 장애, 인종 및 출생지역 등에 따른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받지 아니하고 보육되어야 한다.’ ‘국적’이 문구에서 빠져 있다.
이 조항에 국적을 포함시키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지난해 7월 국회에 발의됐다. 하지만 현안에 밀려 본격적인 논의는 시작되지 못했다. 게다가 복지부는 국적 중심으로 설계된 다른 사회보장 제도와 연계해 논의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표류가 끝나는 그날까지
와티 씨에게 안산은 여전히 낯선 땅이다. 하지만 조나단을 위해 적응해야 하는 곳이다.
“아직 적응 기간이라 조금 낯선 땅이에요. 실은 아직도 수원을 그리워해요. 언젠가는 가족들이 있는 인도네시아로 돌아갈 거예요. 조나단이 한국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와티 씨는 조나단 같은 아이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는 신이 주신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아이의 미래에 부모가 걸림돌이 되는 안타까움을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았으면 해요.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니기 위해 사는 곳을 옮기지 않고 본인이 사는 곳에서 어린이집을 보낼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어요.”
어린이집뿐만이 아니다. 조나단 같은 이주배경 아동들은 학교를 다니면서도 한국어를 잘하는지, 체류 자격이 있는지 끊임없이 시험받는다. 이런 조건을 갖춰도 아이들은 한국 사회의 ‘하류’에 고일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이방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부에 더욱 매달린다. 2009년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에 온 소년에겐 고등학교 진학조차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