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졌던 이들이 돌아왔다. 반달가슴곰, 산양, 여우, 따오기… 인간에 의해 종(種)의 명맥이 끊겼던 동물들이 복원 과정을 거쳐 다시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있다.
우리 마을에는 곰이 산다
2021년 12월 17일 발간
전남 구례군 지리산 자락에 사는 김윤식 씨(60)는 열다섯 살 때부터 벌을 쳤다. 반달가슴곰에 대해서는 어릴 때 포수들이 지리산 깊은 곳에 들어가 잡아온 것을 봤던 기억이 전부다. 커서는 볼 일이 없었다. 지리산 반달곰이 사라져서다.
2005년. 김 씨는 다시 곰을 마주했다. 외출했던 김 씨에게 어머니가 급히 전화를 거셨다.
‘곰인지 멧돼지인지가 벌통을 다 뒤집고 난리다!’라고.
2004년 지리산국립공원에 반달가슴곰이 방사된 이후 이와 같은 일은 종종 벌어졌다. 지리산 주민들은 이를 우려하고 한결같이 반달곰 방사에 반대했다. “곰이 사람보다 중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립공원공단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산에 갈 때 다시라’고 방울도 나눠주고 “곰은 먼저 위협하거나 당황하지 않으면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설득했다. 2005년부터는 관련 손해보험을 들어 반달가슴곰으로 인한 피해가 확인될 경우 보상을 하고 있다.
방사 이후 5, 6년은 동네가 떠들썩했다. 반달곰들이 달콤한 냄새를 맡고 내려와 벌통을 훔쳐가거나 장독을 깨고, 등산객의 배낭에 냄새를 맡다 등산객이 식겁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이와 같은 ‘사고’가 서서히 줄었다. 보상 건수는 2008년까지는 연간 161건까지 치솟았으나 이후에는 연간 50건 이하로 줄었다.
김윤식 씨는 곰들이 자연에 적응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농사를 지어도 처음 몇 년은 시행착오를 겪잖아요. 곰도 같다고 봐요. 곰도 처음에는 ‘여기가 어디지’ 하고 인가로도 오고 하지만, 이제는 자연에서 터전을 잡고 먹이가 많은 곳도 찾고 새끼도 낳고 하니… 점점 안 오는 거죠.”
마을 사람들도 서서히 마음을 열었다. 김 씨도 그중 한 명이다. 반상회마다 찾아와 반달곰 복원 사업의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곰을 만났을 때의 유의사항에 대해 설명한 국립공원연구원 남부보전센터 직원들의 노력이 있어서 가능했다.
“지리산에서 곰을 키우는 게 아니고….
여기가 원래 걔네들이 살던 데잖아요?”
이제 김 씨는 자신의 꿀에 ‘지리산 반달곰 벌꿀’이라 이름을 붙여 판다. 반달곰이 훔쳐 먹을 정도로 맛있고 달콤한 꿀이라는 얘기다. 인근에는 이처럼 반달곰 이름을 붙인 사과도 상품이 됐다. 반달곰과의 공존이 마을 사람들의 경제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지리산에 사람만 사는 게 아니잖아요. 이제는 같이 사는 거죠.”
‘베어빌리지’로 유명한 경남 하동군 의신마을도 원래는 반달곰 복원 사업을 반대했다.
마을 수익의 70% 이상이 고로쇠 수액 채취에서 나오던 시기.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는 초봄은 곰이 동면에서 깨는 시기다. 동면 기간 동안 새끼를 낳아 기르는 곰은 이 시기에 가장 예민하다. 국립공원공단이 반달곰 복원 사업을 추진하던 2000년대 초, 마을 사람들은 “청와대로 몰려가자”고 말할 정도로 동네 분위기가 흉흉했다.
그러나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 마을의 새로운 수익 사업을 고민하던 정봉선 씨(53)에게 반달곰 방사는 새로운 기회로 여겨졌다. 농작물 수확 체험 등 다른 마을에서도 하는 체험 사업보다는 지리산에서만, 이 동네에서만 할 수 있는 특화 사업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반달곰 복원 사업을 추진하는 정부의 취지와도 맞아떨어질 것이란 판단이 들었다.
‘곰이라니, 말도 안 된다’는 마을 어르신들을 설득했다. 마을 청년들은 ‘자료를 찾아보니, 반달곰은 순한 곰이다’ ‘상생의 기회가 될 것’이라며 각 집의 부모들을 설득하며 힘을 보탰다. 그렇게 2009년 마을 주민들과 하동군, 환경부, 국립공원공단 등과 협의를 시작해 2014년 11월 ‘베어빌리지’가 문을 열었다.
베어빌리지에 온 ‘산이’와 ‘강이’는 모녀지간이다. ‘산이’는 2001년 환경부가 지리산에 시험방사한 사육곰이다. 자연에 적응하지 못하고 등산객을 따라다니며 먹이를 받아먹다 회수됐다. ‘강이’도 어미곰인 ‘산이’에게 사람이 부르면 달려가게끔 훈련을 받아 야생 적응이 어려웠다.
이 두 곰은 이곳에서 “산아” “강아” 하고 부르면 달려나와 사과와 곶감 수박 바나나 배 등을 야무지게 씹어먹는다. 사람들은 온순한 두 곰을 보면서 ‘곰이 마냥 무섭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할 기회를 얻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기 전까지는 연간 2만여 명이 이곳을 찾았다.
“한번 곰을 보러 오면 계속 지리산과 인연이 생겨요. 우선 지리산 경치에 반하고, 이듬해 여름에 이곳에서 숙소를 잡아 휴가를 보내죠. 그러다 숙소 주인과 연락을 해 지리산에서 딴 나물 등을 직거래하는 일도 많아요. 부수적인 효과가 엄청난 거죠.”
정 씨의 부모 세대는 국립공원공단을 참 싫어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땅값도 내려가고 공사 등을 할 때 제약이 생기는 등 불편한 일이 많아서다. 그런데 그때 자연을 지킨 효과를 후대인 자신이 얻고 있다고 생각했다. 반달곰과의 공존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한다.
“곰과 인접 지역에 살면, 언젠가는 인명 피해가 날 수도 있겠죠. 그게 자연이죠. 그런데, 원래 깊은 산은 야생 동물의 터전이에요. 서로가 조심해야죠. 우리 자식들에게 좋은 생태계를 물려주려면… 산에서 음식 버리지 말고, 지정된 곳으로만 가야죠. 규칙을 지키면 안전하게 공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제는 ‘지리산’ 반달곰이 아니다.
반달가슴곰(반달곰) 복원 사업은 여타 복원사업 중 가장 빠르게 시작됐다. 국토의 절반 이상이 산림인 우리나라에서 반달곰은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다. ‘우산종(umbrella species)’이라고도 불린다. 이 종을 보전함으로써 같은 지역에 사는 여러 동식물을 동시에 보전할 수 있는 종이란 뜻이다.
반달곰은 각종 나무 열매를 먹고 배설해 식물들이 고루 확산될 수 있게 도와 '숲의 농부’ 혹은 ‘숲의 관리자’라고 불린다. 환경부가 펴낸 ‘멸종위기 야생생물 보전 종합계획(2018~2027년)’에 따르면 반달곰이 안정적으로 사는 생태계는 건강성이 확인된 것으로 본다.
지리산에 반달곰이 방사된 지 17년이 흘렀다. 이제 자연에는 약 74마리의 반달곰이 산다. 2020년 50마리까지 살게 하는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매년 4마리씩 방사하던 것도 2020년 초 이후 중단했다.
이제 곰은 지리산에만 살지 않는다. 전북 남원 장수, 전남 광양, 경남 산청 합천 거창, 경북 김천 구미 고령, 충북 영동…. 수년간 반달곰들이 다녀온 곳이다. 국립공원공단 국립공원연구원은 반달곰이 사는 곳이 지리산에서 덕유산과 가야산으로 확대됐다고 본다. 자연성을 회복한 곰들이 인간이 정한 경계를 넘어, 스스로의 터전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어디서든 반달가슴곰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목격했다는 제보도 여기저기서 들어와요.”
반달곰의 서식 영역을 넓힌 일등 공신은 ‘오삼이’라 불리는 KM-53(개체 번호)이다. 올해 6살이 된 수컷 반달곰으로, 지리산에서 태어났다. 한국에서 태어나 K, 수컷이라 M이라 표기했다. 암컷은 F로 표기한다.
KM-53은 2017년부터 지리산을 나가 경북 김천 수도산과 가야산 등을 오가며 살고 있다. 지리산에는 번식기 때만 들어온다. 올해만 해도 충북 영동과 덕유산, 경남 거창과 함양, 전북 장수와 전북 남원을 다녀왔다. 그래서 별명이 ‘반달곰계의 콜럼버스(신대륙을 발견한 탐험가)’다.
2017년 7월 경북 김천시 수도산에서 발견된 반달가슴곰 KM-53. 당시 산길 보수작업을 하던 인부들이 놓아둔 초코파이 등을 건드리고 있었다. 국립공원공단 제공
2017년 6월 수도산에서 사람들이 먹던 초코파이 상자와 팩음료를 뜯던 KM-53이 처음 발견됐을 때, 국립공원공단 사람들은 ‘우리 곰은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다. 근처 사육 농장에서 탈출한 곰이거나, 멧돼지를 착각한 신고라고 생각했다.
“지리산에서 수도산까지 지도상 직선거리만 80㎞가 넘어요. 실제 간 길은 그것보다 훨씬 더 길겠죠. 그런데 정말 반달곰인 거예요.”
(남성열 국립공원연구원 생태보전실장)
당시 수도산에는 얼마나 많은 올무가 있는지 파악이 안 된 상황. KM-53은 생포돼 지리산에 방사했지만, 약 일주일 뒤 다시 수도산으로 돌아갔다. 왜 다시 수도산으로 돌아갔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수도산에 산딸기와 다래, 버찌 등 열매 종류가 많고, 곰이 잘 먹는 나물도 많아서라고 추정할 뿐이다.
KM-53은 이후 다시 포획돼 지리산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2018년 5월, KM-53은 세 번째로 지리산을 벗어났다. 산등성이를 따라 달리다 대전~통영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로 달리던 관광버스에 치여 왼쪽 앞발 상완골(어깨부터 팔꿈치까지)이 부서졌다. 이후 국립공원연구원 내 야생동물의료센터에서 복합골절수술을 받았다. 야생 반달가슴곰이 복합골절수술을 받은 것은 세계 최초다.
“정말 특이한 애예요. 보통 수술하고 재활하는 과정에서 직원들과 친해지고, 그러면서 야생성을 잃기 쉬운데 KM-53은 달랐어요. 여전히 사람을 경계하고 피했죠.”
(정동혁 국립공원연구원 야생동물의료센터장)
2018년 5월 지리산을 세 번째 탈출해 수도산으로 향하던 KM-53은 고속도로에서 관광버스에 치여 왼쪽 앞발 상완골(어깨부터 팔꿈치까지의 부분)이 산산조각났다. 이후 국립공원공단 국립공원연구원 야생동물의료센터로 옮겨져 복합골절수술을 받았다. 야생에서 태어난 반달가슴곰이 복합골절수술을 받은 것은 세계 최초다. 동아일보 DB
건강을 회복한 KM-53은 자연으로 다시 돌아갔다. 이번에는 지리산이 아닌 수도산으로 돌아갔다. 환경부는 “스스로 터전을 개척한 것 같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반달곰의 터전이 지리산 이외 지역으로 처음 확대된 것이다. 3번이나 ‘지리산 탈주’를 감행한 KM-53의 의지가 아니었더라면 어려웠을 일이다.
이후 KM-53은 경북 구미 금오산으로, 충북 영동 삼봉산으로, 전북 무주 덕유산으로 활발하게 돌아다녔다.
지난 겨울 가야산에서 동면한 KM-53은 4월부터 8월 말까지 수도산과 가야산을 중심으로 충북 영동 민주지산과 덕유산, 경남 거창과 함양, 전북 장수와 남원을 오갔다. 번식기(6~8월)에는 다른 곰들이 있는 지리산도 들렀다.
올해는 KM-53처럼 지리산을 벗어난 곰이 3마리 더 늘었다.
“앞으로 곰 개체 수가 늘면 더 많은 곰들이 지리산을 벗어날 겁니다. 반달곰 복원 사업의 최종 목표가 백두대간을 연결하는 생태축 복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제 사람과 함께 사는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장정재 국립공원연구원 남부보전센터장)
자연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KM-53 사례에서 보듯 자연성을 회복한 곰들은 인간이 정한 경계를 신경 쓰지 않는다. 반달곰 수가 늘어나고, 서식지가 넓어지면 언제 어디서든 인간과 곰이 마주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반달곰이 인간과 맞닥뜨려도 사고가 날 일은 없다. 반달곰은 조심성이 많다. 사람 소리가 들리면 몸을 숨긴다. 육식을 하지도 않는다. 주로 도토리, 취나물, 과일 등을 좋아한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인간을 덮치거나 공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반달곰 출현에 놀란 사람이 위협을 가한다면, 곰 역시 사람을 공격할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
사람 역시 예측이 불가능하다. 정규 탐방로만 다닌다면 곰과 마주칠 일은 더더욱 줄어든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일부러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을 다니고, 정해진 곳을 벗어나 비박을 하기도 한다. 이들이 들고 다니는 음식 냄새에 홀려 반달곰이 올지, 혹은 지나가던 반달곰과 눈이 마주칠 일은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국립공원연구원에서는 곰 퇴치용 스프레이를 최소한의 방법으로 보고 있다. 후추나 캡사이신이 포함된 이 곰 스프레이는 호신용으로 판매하는 스프레이와 성분이 같다. 그러나 용량이 커 국내에서는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에 따라 경찰에 신고해야 소지할 수 있는 상황. 담당자들은 반달곰 개체 수가 많아지고 서식지가 넓어지는 만큼 구입할 때 신분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본다.
“아직까지는 관리 업무에 주력하고 있어요. 곰을 추적하고, 주변 주민들을 설득하고 곰에 대한 정보를 알리죠. 그러나 곰이 앞으로 계속 늘어난다면 곰 스프레이 수입 등 제도적 지원이 필수예요. 안전하게 곰과 함께 사는 최소한의 방어선이죠.”
(정동혁 센터장)
40년 만에 다시 날아왔다
2021년 12월 24일 발간
경남 창녕군 이방면. 물을 빼고 마늘을 심어 푸릇푸릇해진 주변 논과 달리 베어낸 벼의 밑동만 남아있는 이주호 씨의 논은 휑해 보였다. 논 가장자리 2m에는 그나마 벼 밑동도 없어 더 허전하다.
“저기는 따오기들이 먹이 먹으면서 돌아다니라고 비워둔 곳이에요. 우리가 논에 들어가서 농사짓고 있으면 따오기들은 가장자리에서 부리를 물속에 넣고 먹이를 먹죠.”
이 씨가 마을에서 따오기 울음소리를 들은 건 3년 전부터다. 원래 논이나 하천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새였던 따오기는 농약 사용과 남획으로 1979년 한반도에서 멸종됐다. 이후 2008년 중국에서 한 쌍을 들여와 증식했고, 2019년 40년 만에 다시 자연으로 돌아왔다.
“따오기는 진짜 ‘따옥 따옥’ 하고 웁니다.
소리가 둥글면서도 꽤 울림이 있어요.”
영상을 클릭하면 따오기 소리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따오기는 얕은 물가에서 물속이나 땅속에 있는 벌레와 미꾸라지 등을 잡아먹는다. 강이나 바다가 아닌, 사람이 사는 논이나 하천이 최적의 서식지다. 동시에 오염에 약하다. 농약을 치는 논에서는 곤충이나 작은 동물이 없어 따오기가 살 수가 없다.
마을 주민들이 나섰다. 창녕군 14개 마을마다 따오기가 날아가서 쉬고 먹이도 먹을 수 있는 ‘거점 서식지’가 필요했는데, 이 씨와 같은 이들이 자원했다. 자신의 논을 거점 서식지로 내놓으면 제초제와 농약을 일절 쓸 수 없다. 따오기들이 놀 수 있게 논 가장자리를 비워 그만큼 거둘 수 있는 벼의 양도 줄어든다. 대여료가 지급되지만 가을철 논에 물을 빼고 벼를 벤 뒤 마늘을 심는 등 부가 수익도 포기해야 한다.
따오기를 받아들인 것에 대해 이 씨는 ‘시대 흐름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이제 따오기들은 마을을 날아다니고 논에 와 미꾸라지와 고둥을 잡아먹는다. 둥지도 민가 근처에 트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주민들이 따오기를 보는 날이 잦아졌다.
“자꾸 보니 예쁘죠. 별로 불편하지도 않고요. 날아갈 때 날개를 펼치면,
속깃털이 분홍색이에요. 정말 예뻐요.”
따오기가 자주 나타나니 마을에는 변화가 찾아왔다. ‘따오기는 농약에 약하다’는 내용이 확산되자 이 씨처럼 거점 서식지로 자기 논을 내놓은 사람이 아니어도 농약을 스스로 줄이는 사람들이 늘었다.
동네 여론을 주름잡는 할머니들은 즐거움이 늘었다. 따오기 사진을 찍으러 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접근하지 마라’고 안내하기도 하고, 올봄 따오기가 야생에서 처음 알을 낳고 새끼가 태어났을 때는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따오기 둥지를 지키기도 했다. 따오기가 날아가면 그 방향을 따라 마을 사람들의 머리가 돌아가는 것도 이색적인 볼거리다.
따오기가 사는 환경은 인간에게도 이롭다. 기후 위기의 시대, 생태계 보전이 주요 가치로 떠오르면서 인간에게 이로운 생태계는 향후 경제적으로도 높게 평가될 것으로 전망된다.
6년 전 귀농한 공희표 씨(61)는 이 점에 주목했다. 경남 창녕군에서 나고 자란 그는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아이들을 키웠다. 그러다 다시 돌아온 그에게 한창 따오기 방사를 앞두고 주변 환경을 다지는 우포늪은 천혜의 인프라였다. 그는 이 인프라를 활용하면 주민들의 수익이 늘어날 방법이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다양한 생물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우포늪은 정부와 환경단체 모두가 신경 쓰는 지역이죠. 과거에는 새와 같은 작은 동물과 늪은 증오의 대상이었는데, 이제는 그게 기회의 산물이 됐다고 생각했어요.”
우선 친환경 농업을 시도했다. 올해는 오랫동안 묵혀둔 땅 700평에 무농약 논을 만들었다. 여기서 약 1t가량의 쌀을 수확했다. 쌀 나락은 다 거두지 않고 일부 논에 그대로 뒀다. 사람도 먹고, 새도 먹자는 취지다.
향후 친환경 농사에 동참하는 주민들이 늘고 수확물도 많아지면 ‘따오기쌀’과 같은 브랜드를 만드는 것도 고민 중이다. 사람에게 도움이 될 때 환경을 지키는 일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 생각한다.
“농촌은 고령화됐어요. 과거와 같은 방식만으로는 지속하기 어려워요. 환경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죠. 요즘 사람들, 가격만 싸다고 쌀 사나요. 어떤 땅에서 어떻게 기른 쌀인지 보고 산다고요. 앞으로 우리 마을은 사람도 동물도 함께 살고 모두 이득을 보는 마을이 될 겁니다.”
따오기가 자연으로 돌아간 지 3년. 지금까지 총 160마리의 따오기가 창녕 하늘로 날아갔고 현재 우포늪과 인근 자연에서 116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는 처음으로 야생에서 따오기 두 마리가 태어나는 경사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습지 생태계는 점점 더 건강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우선 점점 더 많은 새들이 창녕군을 찾는다. 우포따오기복원센터와 마을 사람들이 따오기들이 오는 논이나 습지에 미꾸라지도 풀고 농약도 적게 쓰자 새들이 모이는 것이다. 2016년 60여 마리가 관찰된 제비가 올해는 200여 마리가 넘게 관찰됐다. 또 과거에는 오리들이 논에 들어가는 일이 없었는데, 이제는 논에 들어가 먹이를 잡아먹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논이 건강해졌다는 얘기다.
따오기들도 야생성을 회복하고 있다.
지난달 11일 경남 창녕군 우포따오기복원센터에서 김성진 따오기서식팀 박사가 야생 적응 훈련 중인 따오기를 쳐다보고 있다. 과거 오염과 남획으로 사라진 따오기는 따오기복원센터 직원들의 노력으로 40년 만에 돌아왔다. 따오기는 습지 생태계가 얼마나 건강한 지 알 수 있는 지표기도 하다.
창녕=전영한 기자
“케이지(야생 적응 훈련장) 안과 다르제. 경쟁 치열하제.”
지난달 11일 창녕군 유어면 우포따오기복원센터 인근의 한 습지. 중대백로 쇠백로 노랑부리저어새 따오기 등이 뒤섞여 미꾸라지와 벌레를 잡아먹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김성진 따오기서식팀 박사가 혼잣말을 했다. 김 박사는 2012년부터 이곳에서 근무하며 따오기 사육과 방사 준비, 야생 적응 훈련에 참여했다.
부리를 물에 집어넣고 콕콕 두드리다 미꾸라지 한 마리를 찾아낸 따오기가 바로 옆에 선 백로가 날개를 크게 벌리고 위협하자 잽싸게 미꾸라지를 문 채 옆으로 날아가 먹이를 삼켰다. 따오기들끼리만 모여 먹이를 찾는 훈련을 하던 훈련센터와 달리 자연은 말 그대로 경쟁의 연속이다. 그러다 보니 올해 봄에 방사한 선배 따오기가 가을에 방사한 후배 따오기와 자리다툼을 하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따오기들도 점점 먼 곳으로 날아가고 있어요. 방사는 창녕에서 했지만 이제는 하동, 밀양, 경북 경주, 전북 남원에도 가요. 한 따오기는 창원에서 월동도 했고요. 먹이를 찾아 떠나기도 하고, 먹이가 있으면 그곳에 머물기도 한다는 말이죠.”
따오기는 철새다. 따오기 복원 사업의 최종 목표는 따오기가 예전처럼 다시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철새가 되는 것이다. 따오기복원센터는 따오기 방사 장소를 늘리는 것도 고려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