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 - 첫 번째 이야기 내 동생 현승이

환생 - 첫 번째 이야기 (2) 여행

11월 10일, 부산에서 손현승 씨의 어머니가 아들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마음먹었던 날. 그날 저녁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KONOS·코노스) 상황실에는 간호직 공무원 최정아, 이주미 주무관이 있었다. 그들은 대형 모니터를 바라보며 전국 병원에 긴급 전화를 돌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부산대병원 39세 A형 남자분, 신장 기증자가 발생해서요. 조직 일치하시는 분 있는지 확인 좀 부탁드릴게요.”
“심장 매칭 리스트 곧 올릴 거거든요. 확인해주세요.”

보건복지부 소속인 코노스는 365일 24시간 당직 체제다. 국내 모든 장기기증 데이터를 관리한다. 이를 바탕으로 ‘이식인(장기 이식을 받는 사람)’을 결정하고, 이식 전 과정을 감독하기도 한다.
전국 어딘가에서 뇌사 환자의 장기기증이 결정되면 즉시 코노스에 보고된다. 이후 전국의 장기 이식 대기자의 생체 정보와 기증인 조건을 대조해 수혜자를 결정해야 한다. 총 4만3182명(2020년 말 기준) 중에서.

“일단 혈액형이 같아야 하고요. 그 외에도 백혈구 항원이 동일한지, 조직 검사 결과가 일치하는지, 대기 기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또 얼마나 위급한지 등을 따집니다. 질병관리청 시스템에 사람마다 대기 점수가 다 있어요. 결국 수혜자 순위는 점수를 기준으로 결정되죠. 어느 누구도 미리 알 수도, 바꿀 수도 없어요.”(최 주무관)

가끔 기증인이 자신보다 너무 고령일 경우나 장기 상태가 좋지 않으면 우선순위의 대기자가 다음 기회에 하겠다며 수혜를 포기하기도 한다. 그럼 다음 순위 대기자에게 기회가 넘어간다. 모든 관문을 넘어 1순위 이식인으로 선정돼도, 이식수술을 위한 최종 검사에서 좌절될 때도 있다.

현승 씨의 장기를 받을 최종 수혜자 결정은 꼬박 하룻밤이 걸렸다. 다음 날인 11일 아침에야 확정됐다. 심장 이식 대기자는 서울 A병원에, 신장 이식 대기자는 부산의 B병원에 있었다. 나머지 신장 하나는 부산대병원 대기자에게 이식될 예정이었다. 기증인이 있는 병원에 신장 하나를 우선 할당하는 원칙에 따랐다.

이날 코노스에서 장기 이식이 가능하단 통보를 받은 A병원 의료진은 고심에 빠졌다. 서울과 부산 간 항공 스케줄과 기차시간표를 계속해서 들여다봤다.
“적출 수술은 장기를 받을 환자가 있는 병원 의사들이 기증인이 있는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이식자의 혈관 구조나 컨디션, 장기 사이즈 등에 맞춰 적출을 해야 하기 때문에···.”
특히 이번엔 기증인이 부산에 있어 더욱 동선을 잘 짜야 했다. 심장은 몸 밖으로 나오면 버틸 수 있는 시간이 4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의료진은 이동 방법을 놓고 거듭거듭 검토했다. 항공편과 기차는 물론 역에서 병원까지는 어떻게 이동할지도 체크했다. 수술 시간은 다음 날 오후 5시. 심장은 6시 반 정도면 적출된다. 심장이 살아있는 오후 10시 반 전에, 병원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원래 항공편으로 왕복하려 했는데, 서울로 돌아오는 시간대가 퇴근시간이란 점이 변수였습니다. 공항에서 병원까지 차가 밀리면 안 되잖아요. 갈 때는 비행기로 가고 올 때는 고속열차를 타기로 했습니다.”
병원과 역 사이는 앰뷸런스를 타고 총알처럼 달려야 했다.

A병원에 입원해 있던 심부전증 환자 채현수(가명) 씨. 그는 복잡한 심정이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심장이 자신에게 온다. 놀라움과 감사, 미안함과 불안이 뒤섞였다.
“너무너무 고맙지요. 말로 다 할 수 없이 감사하고, 그리고 죄송합니다. 어떤 분인지는 몰라도 그분이 생명을 주신 거니까요. 덕분에 제가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됐으니. 한편으로는 막상 정해지고 나니 갑자기 겁도 나네요. 혹시 뭐가 잘못되진 않을지···.”

눈물이 맺힌 채 힘겹게 말을 잇는 채 씨. 그의 환자복 사이로는 심장에서 살을 뚫고 뻗어 나온 굵은 전깃줄이 눈에 띄었다. 벌써 6개월째, 이 줄은 채 씨의 몸과 박카스 상자만 한 검은 장치와 연결돼 있다. 혼자서 어딜 갈 수도, 목욕조차 할 수 없었다.
“이 전선이 몸에 심은 인공 심장이랑 연결돼 있어요. 이 검정 박스는 배터리예요.” 현수 씨는 “올해 5월 ‘이대로라면 길어야 1년밖에 못 산다’는 판정을 받고 인공 심장을 달았다”며 “3㎏ 정도라 엄청 무겁고 불편하지만 이게 몸에서 떨어지는 순간 난 죽는다”고 했다.

현승 씨의 수술이 예정돼 있던 12일 오전 10시. A 병원의 흉부외과 의료진 3명은 현승 씨의 심장을 담아올 푸른색 아이스박스를 들고 출발했다.
김포공항에서 김해공항을 거쳐 부산대병원에 도착한 수술팀은 부산대병원 및 신장을 가져갈 부산 B병원 의료진과 수술실에서 현승 씨를 맞을 준비를 했다. 푸른 수술복과 푸른 마스크, 흰 라텍스 장갑을 착용한 이들이 정확하고 빠르게 수술도구와 장비를 정돈했다.

오후 4시 20분. 현승 씨가 누운 침대가 수술실 안으로 들어왔다.
시작이었다.
A병원 흉부외과 의료진이 제일 먼저 수술대 앞에 섰다. 적출하는 장기는 순서가 있다. 몸에서 떼어졌을 때 손상이 빨리 되는 장기부터 비교적 오래 버틸 수 있는 장기 순. 통상 심장은 4시간, 폐는 6시간, 간은 12시간, 췌장은 14시간, 신장은 24시간을 버틴다.

기증인과 수혜자, 기증인 가족과 수혜자 가족 그들 모두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오후 6시 50분, 마침내 A병원 의료진이 아이스박스를 들고 수술실을 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빨리!” 이들은 마치 100m를 전력 질주하듯 병원 복도를 뛰어 앰뷸런스에 올라탔다.

부산대병원을 출발한 앰뷸런스는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오후 7시 10분 부산역에 도착했다. 오후 7시 반 고속열차를 타고 부산역을 출발한 의료진은 오후 10시 6분 수서역에 닿았다. 또다시 전력 질주. 역 앞에서 기다리던 A병원 앰뷸런스는 의료진을 태우고 10분 만에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로비로 뛰어들어간 의료진은 3층 수술실로 향하는 모든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1초라도 더 빨리···.
첫 번째로 도착한 엘리베이터로 뛰어들어간 의료진이 마침내 중환자실 문을 통해 수술실로 사라졌다. 현승 씨로부터 심장을 적출한 지 3시간 58분 만이었다.

다음 날 오전 3시. A병원은 5시간 반 만에 현승 씨의 심장을 현수 씨의 가슴에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오전 7시 반 현수 씨가 드디어 힘겹게 눈을 떴다. 부산에서 현승 씨의 신장을 이식받은 환자들도 무사히 깨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현승 씨와 세 사람이, 함께 환생(還生)한 순간이었다.

 

 

 

 

 

 

발간일 2021년 2월 1일

  • 기사 취재|곽도영 이윤태 김동혁 김은지 기자
  • 사진·동영상 취재|곽도영 이윤태 장승윤 양회성 기자
  • 동영상 편집|김신애 안채원 CD 이샘물 기자
  • 그래픽|김충민 기자
  • 프로젝트 기획|이샘물 김성규 기자
  • 사이트 제작|디자인 이현정, 퍼블리싱 조동진 김수영, 개발 윤태영
  • 총괄팀장|임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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