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식의 기회가 온다면
그게 제게는 가장 큰 기적이겠죠."
- 간 이식을 기다리는 38세 박선영 씨
“처음 발병한 건 2018년 12월. 서른네 살 때예요. 그날 일은 지금도 안 잊혀져요.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막 숨이 안 쉬어지는 거예요. 걱정돼서 집 근처 병원에 가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가슴이 모두 하얗게 나왔어요. 의사가 보더니 복수가 가득 차 있다고···. 2L를 뽑아냈죠. 전 아파서 병원 한 번 간 적 없을 정도로 건강했던 사람인데···.”

“정밀검사 결과 자가 면역성 간염과 간경변 진단을 받았어요. 알 수 없는 이유로 면역체계가 잘못돼서 내 세포들이 간세포를 공격하는 병이죠. 간이 나빠지니 신장까지 나빠져서 신부전증도 왔어요. 체내에 암모니아가 쌓여서 한 달에 한두 번씩 갑자기 쓰러지는 간성혼수에 빠지곤 해요. 면역 억제제를 먹으면 머리도 빠지고, 살도 갑자기 쪘다 갑자기 빠지고···. 우울증까지···. 부작용을 견디며 매주 외래진료, 매달 입원치료를 받아요. 그렇게 3년이 됐어요. 이식 대기 등록하고 1년이 다 돼가지만 기증자는 나타나지 않아요.”

“가족이식요? 생체이식을 받을 수 있을까해서 온 가족이 다 검사했어요. 위로 언니, 아래로 남동생, 부모님까지 다 검사했지만 맞는 이가 없었어요. 제 간 상태가 나빠서 모든 간을 다 도려내야 하는데 모두 다 간 크기가 작아서 부적합 판정을 받았죠.”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젊은 여자가 얼마나 술을 많이 마셨길래 간이 안 좋냐’고 수군댔어요. 저는 한 잔 정도밖에 못 마시는 편인데···. 많이 억울하고 괴로웠어요. 작년 9월에는 맹장이 터져서 수술했는데 간이 나쁘다 보니 진통제를 맞을 수 없었어요. 간에 무리가 오니까···. 죽을 것 같다고 울고 통사정해도 절대 안 된다고 해서 고통을 생으로 참았지요. 간이 나빠지면 아플 때 정말 힘들어요. 타이레놀조차도 못 먹으니까요.”

“나는 왜 이런 병을 갖게 됐을까 세상이 원망스러웠어요. 그런데 병이 길어지니 지금은 부모님 생각이 제일 많이 나요. 우리 부모가 나 때문에 얼마나 힘들까···. 혹시나 제가 잘못될까봐 얼마나 노심초사하시겠나 생각하면 너무나 미안하죠.”

“제가 갑자기 아팠던 것처럼···. 이러다 갑자기 멀쩡해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하곤 해요. 꿈을 꾸듯이···. 이식의 기회가 온다면 그게 제게는 가장 큰 기적이겠죠. 제가 나중에 떠나게 된다면···. 장기든 뭐든 내가 줄 수 있는 것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다 주고 떠나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면 장기기증이 조금 더 활성화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전으로
the original의 다른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프로젝트 더보기
  • 증발을 택하다

    ‘사건본인(부재자)은 실종되어 2015.6.1 실종기간이 만료되었으므로 실종을 선고한다.’ 그렇게 사라졌던 ‘증발자’ 문모 씨(48)가 어느 날 살아 돌아왔다.

    더보기
  • 증발해 산다

    저마다의 사연을 감당하지 못해 자발적 실종을 택한 사람들, 자신이 몸담던 세상과 모든 것을 단절해버린 사람들, 그러나 엄연히 속세에 존재하는 사람들. ‘증발자’ 4명이 머물고 있는 공간을 찾아가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더보기
  • 어느 날 죄인이 됐다

    전북 진안에서 17년, 전주 우아동에서 20년. 매운탕에 인생을 걸고 열심히 살았다. 60대 후반의 김호섭 씨 부부가 젊은 날을 쏟아 부은 ‘죽도민물매운탕’.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이 이름이 졸지에 ‘코로나 식당’이 되고 말았다.

    더보기
공유하기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