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죠···."
- 심장을 기다리는 58세 장경준 씨
“처음 심부전 진단을 받은 건 2008년이에요. 그때만 해도 숨차는 것 같은 증상이 심하지 않아서 약을 먹었는데 방심을 했죠. 몸 관리를 안 했어요. 장사하면서 스트레스에 술, 담배 하고···. 그러다 2019년 12월 어느 날 밤에 사달이 났어요. 초저녁부터 가슴이 답답하더니 갑자기 숨을 못 쉬겠는 거예요. 마치 폐에 물이 찬 것처럼 아예 숨이 안 쉬어져요. 헉헉대다가 쓰러져서 집사람 다리를 꽉 잡고 있는데 숨을 못 쉬니까 말이 안 나와. 집사람이 구급차 불러서 병원으로 가는데 정말 죽는구나 싶었죠. 응급처치받고 나서야 정신이 다시 돌아왔어요.”

“의사 선생님이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다고 해서 당시에 심장 제세동기를 삽입하는 수술을 받았어요. 10년에 한 번 배터리를 갈면 된다는데 이건 치료용은 아니고 만약 심장마비가 와서 심장이 안 뛰면 전기 충격을 주기 위한 장치예요. 입원 당시 심장 기능이 15%밖에 남지 않았었거든요. 의사 선생님이 ‘제세동기를 넣어도 결국 이식을 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심장은 계속 안 좋아졌어요. 밤에도 계속 답답해서 깨고, 숨이 너무 안 쉬어져서 아내가 운전해 밤에 응급실 간 적도 있고. 앰뷸런스도 타고. 작년 2월에 의사선생님이 이제 더 이상은 안 되겠다며 이식받기 전에 인공심장(심실보조장치) 수술부터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다시 대수술을 했죠. 기계 수명이 보통 2, 3년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사이에 이식을 받아야 한다는데 벌써 1년이 지나서 초조하죠.”

“인공심장을 달면 생활이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에요. 심장에 연결된 배터리가 한 3㎏ 되는데 언제 어디서든 항상 매고 다녀야 하니까···. 항상 완충해서 24시간 꺼지지 않게 배터리를 가지고 다녀야 해요. 제일 소원은 목욕 가는 거죠. 전기가 흐르는 기계가 연결돼 있다 보니까 물속에 못 들어가거든요. 샤워만 겨우 하는데 기계에 딸린 샤워용 방수 가방이 있어서 배터리랑 장치 다 넣고 한 번 또 비닐로 싸고···. 삽관 부분도 물 안 들어가게 테이프 붙여서 막고. 항상 감염 우려가 있으니까 와이프가 도와줘야 하죠. 불편하고 눈치도 보이고 해서 제대로 씻는 건 석 달에 한 번 정도일까. 평소엔 머리 따로 감고 몸 아래 따로 씻고···. 가족들의 도움이 없으면 못 살죠.”

“언제 이식을 받을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죠. 기다리는 기간이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언제 죽어도,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죠. 그래서 항상 좋은 일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언제 잘못될지 모르니까 마지막까지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어서. 이제는 집사람하고도 절대 안 싸워요. 제가 다 받아들이죠. 전 아침에 가게(돈가스집) 문을 열기 전에 항상 같은 카페에서 설탕 안 넣은 아메리카노를 마십니다. 항상 같은 시간에 가서 현금으로 결제하죠. 한 사람이라도 저를 좋은 모습으로 기억해줬으면 해서 이렇게 하는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처음 안 좋았을 때 제대로 몸 관리 안 한 게 너무 후회가 됩니다. 그래서 제가 심혈관질환 카페도 자주 들어가 글도 쓰고 댓글도 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되지 말라고요. 장기 기증에 관한 부정적인 댓글을 보면 처참합니다. 지금은 건강하니까 남의 일이려니 하겠지만 가까운 주변에서 이식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생기면 생각하는 게 달라질 겁니다. 왜냐면 저도 그랬으니까요. 지금은 저희 부부 모두 장기 기증을 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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