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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으로 ‘쓰레기산’에 오르다

조금 더 많은 수고가 쌓여 탄생하는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 기사’
이청아 기자|동아일보 국제부 2023-01-05 10:28:46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전후로 내가 외식을 하던 횟수는 고스란히 배달주문 횟수로 바뀌었다. 그렇게 쌓인 플라스틱 용기를 세척 후 분리배출할 때마다 “어차피 다 재활용되는 것도 아니래”라고 말하던 친구의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폭우와 폭염, 폭설 등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까지 화두에 오르자, 내가 배출한 폐기물의 ‘말로(末路)’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그러던 차에 서울시가 폐플라스틱 감량을 위해 배달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일회용기 대신 ‘다회용기’를 제공하는 ‘제로식당’ 사업을 한다고 밝혔다. 그릇 회수부터 세척, 재활용 과정 등을 르포 기사로 담아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에 8월 31일 토요판 기획으로 발제했다. 회의에서 이를 ‘지구의 오염원, 서울’을 보여주는 환경 기획으로 발전시켜보라는 피드백을 받고서 본격적인 ‘쓰레기산’ 등정이 시작됐다.
신문과 방송, 그 사이 어딘가에 어울리는 기사 찾기
‘서울이 이만큼 많은 쓰레기를 발생시킨다’는 것을 입증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아보였다. 폐기물 배출량, 처리량, 재활용률 등을 집계해둔 통계는 무수히 많았다. 찾은 통계만으로도 스트레이트 기사 여러 건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이를 디지털로 ‘시각화’하는 것이었다. 지면기사보다 훨씬 더 많은 시청각자료가 들어갈 수 있는 동시에, 방송기사보다 더 많은 활자를 담을 수 있다는 건 분명히 장점이었다. 그렇다고 분량 제한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원하는 모든 것을 담으면 ‘스압(스크롤 압박)’으로 독자들에게 부담감을 줄 수 있기에 ‘적당한 분량(길이)’과 ‘적당한 시각자료’ 등 모든 요소를 골고루, 조화롭게 갖춰야 했다.

이 때문에 기획 목적, 즉 기사의 주제를 찾는 것부터가 고행이었다. 텍스트 기사에서는 단독 통계도, 익명 사연도 전부 ‘기삿감’이었지만 디지털에서는 아니었다. 아이디어를 낼 때 마다 “그건 텍스트 기사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굳이 ‘디지털 기사’로 써야할 이유가 있을까요”라든가 “시각화 방식이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할 것 같은데요” 등 날카로운 질문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중간에 어떤 아이디어는 통과됐다가 결국 시각화 방안이 마땅치 못해 킬되기도 했다.

이렇게 약 한 달 간 폐기물 ‘수치(양)’를 참신하게, 시각적으로 보여줄 주제를 고민하다가 자연스럽게 시선이 닿은 곳이 ‘쓰레기산’이었다. 어마어마한 양의 폐기물을 충격적인 이미지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소재였다.

하지만 나 역시 몇 년 전에 현장취재를 했던 적이 있을 정도로 쓰레기산은 이미 여러 차례 언론에서 다룬 문제였다. 새로운 통계 내지는 팩트만 더해지면 기사화할 수 있는 지면기사와 달리, 새로운 팩트 취재 하나만으로 참신한 디지털 기사를 만들기는 불가능했다. 일단 직접 전국 8도의 쓰레기산을 등산하며 사진과 영상을 찍었지만, 유튜브 검색 한 번이면 환경단체에서 만든 고퀄리티의 쓰레기산 영상물이 줄을 지었다.

낯설기만 했던 ‘디지털 기사’를 향해 한참을 돌고 돌아 마지막에 도착한 곳은 기자들이 입사 후 가장 먼저 배운다는 ‘사연취재’였다. 기존에 알려진 쓰레기산과는 그닥 가깝지 않아보이면서도, 독자들 마음 가까이에 다가가기엔 이만한 무기가 없었다. 처음 도전해보는 플랫폼이었지만 디지털기사 역시 결국은 ‘기사’였는지, 기자들이 가장 잘 하고 또 오래 해온 것이 디지털 기사에서도 해법이 된 셈이다.
“지면 그래픽이 아니에요”…활자 크기, 배경색, BGM까지 고민하기
‘발제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한 달 만에 주제를 확정했지만 아직 난관들이 남아있었다. 지면에 ‘내러티브 기사’를 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상세한 사연 취재지만, 디지털 기사는 이밖에 취재원의 ‘사진’도 필요로 했다. 디지털 기사에서는 모니터 전체가 ‘시각 자료를 위한 여백’이나 다름없기에 사진 유무가 독자들의 몰입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구, 부산 등 방방곳곳을 다니며 여러 피해자들을 긴 시간 동안 인터뷰했지만 다들 얼굴 공개를 꺼려했다. 사업을 하고 있어서 재산을 가압류당한 재정 상태을 공개하는 것이 어렵다던 피해자도 있었고, 연로하신 아버지가 아시게 되면 큰 충격을 받을 것 같다며 거절한 피해자도 있었다. 분량을 채울 만큼의 인터뷰는 진작 마쳤지만 사진 공개를 허용해주는 취재원을 찾다 보니 인터뷰한 피해자만 어느덧 5명을 넘어섰고, 그 끝에서 문수용, 김순연 어르신을 만날 수 있었다.

취재한 내용을 구현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지면기사에 넣을 그래픽을 만들 때처럼 내가 원하는 형태를 그려서 기획자와 개발자에게 전달했지만 “스크롤을 내리면 그래픽이 잘려 형태 수정이 필요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세로로 긴 신문만 염두에 뒀을 때는 생각지 못했던 점이었다.
필자가 직접 그린 시안.필자가 직접 그린 시안.
시안을 토대로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제작한 도식.시안을 토대로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제작한 도식.
글씨 크기까지도 고민의 대상이었다. 작은 글씨가 세련돼보였지만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들을 생각해 조금 키우기로 했다. 인터랙티브 기사인 만큼 독자들이 스크롤을 내렸을 때 몰입을 깨뜨리지 않을 화면 움직임 속도까지 다함께 고민했다. 꼼꼼한 후배 기자는 스크롤을 해서 글자의 배경화면이 바뀌는 순간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디테일을 짚어냈다. ‘배경음악이 없으니 밋밋하다’는 의견과 ‘어차피 소리를 켠 채로 기사를 읽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의견이 맞섰다. 틀린 단어를 수정하는 작업도 스스로 할 수 없어 개발자의 손을 거쳐야 했다. 신문 역시 취재기자와 사진기자, 편집기자, 그래픽디자인팀 등의 협업으로 만들어지지만, 디지털 기사에는 여기에 기획자와 개발자의 노고까지 더해졌다.

그렇게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모여 완성된 것이 ‘쓰레기 덫에 빠지다’ 디오리지널 기사다. 기사가 생각보다 길어져 과연 사람들이 스크롤을 끝까지 내릴지 걱정했지만, 기사를 완독한 티가 잔뜩 묻어나는 댓글들이 줄이어 달린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피해자의 사진들과 함께 읽으니 안타까운 사연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졌다”던 독자도 있었다.

독자들이 남겨준 깊이 있는 댓글들을 보여주자 다른 기자가 내게 한 얘기가 있다.
“독자들도 기자들이 고생해서 만든 기사는 알아보는 거지”
기자, 기획자, 개발자, 취재원 등 많은 사람들의 노고로 쌓아올려진 ‘디지털 기사’의 가치를 알게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기사의 정상을 완성해주신 독자분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청아 기자
이청아 기자|동아일보 국제부

2019년에 입사해 사회부를 거쳐 국제부에서 취재하고 있습니다. 사회 가장 낮은 곳의 이야기를 듣고 또 전해드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