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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 속 숨겨진 철근, 3D로 그려내다

비파괴검사 결과를 3D로 그려내다
위은지 기자|동아일보 디프런티어센터 2025-02-11 14:00:01
1월 말 보도된 히어로콘텐츠 9기팀(이하 히어로팀) ‘누락’ 시리즈의 인터랙티브 기사에서 방점을 둔 것은 3D 모델이었다. 히어로팀은 아파트 부실시공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 아파트 도면을 확보, 건물의 하중을 받는 지하 주차장 기둥에 도면대로 철근이 시공되었는지를 검증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취재했기 때문에 독자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기둥의 내부를 투시해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개인적으로도 3D 모델을 활용하는 인터랙티브 기사를 더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3년 전 히어로콘텐츠 5기팀의 ‘산화’ 시리즈 보도를 준비할 때 처음으로 팀에서 3D 모델을 직접 제작했다. 이후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을 다룬 기사를 통해 외부에서 제작된 3D 모델을 활용해 봤다. 그리고 지난해 하반기, 3년 전보다 더 큰 스케일의 3D 모델을 제작할 기회를 맞았다.
기사에 등장하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3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프레임을 뽑아낸 결과물. 총 180프레임이다.기사에 등장하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3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프레임을 뽑아낸 결과물. 총 180프레임이다.
아파트 취재 현장을 3D화하다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 지난해 하반기 3D 이미지를 제작할 수 있는 인턴 디자이너가 합류했다. 비슷한 시기 활동을 시작하게 된 히어로팀은 아파트 부실 공사 실태를 파헤치기로 했다. ‘아파트’는 3D 모델링으로 시각화하기에 아주 좋은 소재였다.

히어로팀이 아파트 부실 공사 실태를 검증하기 위해 활용한 ‘비파괴검사’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조사하는 방법이었다. 비파괴검사기로 콘크리트 기둥을 위에서 아래로, 혹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훑으면 콘크리트 속에 철근이 몇 가닥, 몇 cm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는지 기계 화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마치 X레이 검사로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우리 몸속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
히어로팀이 사용한 ‘힐티’사의 비파괴검사 장비 페로스캔 PS300(왼쪽 사진). 히어로팀이 직접 측정한 비파괴검사 결과가 페로스캔 기기 화면에 나타나고 있다.히어로팀이 사용한 ‘힐티’사의 비파괴검사 장비 페로스캔 PS300(왼쪽 사진). 히어로팀이 직접 측정한 비파괴검사 결과가 페로스캔 기기 화면에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지는 직관적이지 않았다. 취재기자들이 올려주는 검사 결과지를 보고 설명을 들어도 정확히 이해가 잘 안됐다. 기둥 취재 현장에 동행해 직접 기계를 사용해 보고서야 결과 이미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비파괴검사 결과를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시각화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겠다고 느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가. 쉬울 것 같지만 생각보다 결정해야 할 것이 많았다. 기둥 하나만을 3D로 만들 것인지, 혹은 기둥 주변 주차장 공간까지 그려낼 것인지. 우리도 기둥 안을 뜯어보지 않은 이상, 검사 결과를 보고 기둥 속 철근을 추정해서 그려내야 하는 것인데 얼마나 사실적으로 그릴 것인지 등을 놓고 치열한 논의를 거듭했다.
인턴 디자이너가 프로젝트 초기 만든 기둥 샘플 이미지.인턴 디자이너가 프로젝트 초기 만든 기둥 샘플 이미지.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인 만큼 이미지를 직관적으로 제작하는 게 중요하겠다고 결론 내렸다. 예를 들어 한쪽 면에 철근이 4개가 들어가야 하지만, 비파괴검사 결과 철근이 3개만 시공된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철근 3개의 위치는 도면 상 철근이 놓여져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을 수 있다(아래 이미지를 참고하면 이해하기 쉽다).

설계 도면대로의 철근 모습을 보여준 뒤 거기서 몇 개가 ‘빠져있다’는 식으로 보여주는 게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겠다고 판단했다. 도면 상 이상적인 기둥 속 철근의 모습을 보여주고, 거기서 n개의 철근이 사라지는 방식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인턴 디자이너가 제작 초기에 만들었던 기둥 3D 이미지 샘플을 위에서 바라본 모습. 실제 비파괴검사 결과를 이미지에 적용하면, 설계 도면대로의 이상적인 철근 배열에서 몇 개가 인턴 디자이너가 제작 초기에 만들었던 기둥 3D 이미지 샘플을 위에서 바라본 모습. 실제 비파괴검사 결과를 이미지에 적용하면, 설계 도면대로의 이상적인 철근 배열에서 몇 개가 '빠진' 모습으로 나타나진 않는다. 하지만 독자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왼쪽 이미지를 먼저 보여주고 여기에서 철근 몇 가닥이 빠지는 식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어떻게 보여줄지’ 또 고민하다
취재팀이 조사한 아파트 단지 중 3곳을 뽑아 문제의 기둥 중심으로 주차장 공간을 3D로 제작하기로 했다. 그다음 질문도 또다시 ‘어떻게 보여줄지’였다. 3D 모델을 그대로 웹에 올려서 독자들이 원하는 부분을 줌인, 줌아웃하거나 돌려볼 수 있게 할 것인가. 아니면 팀에서 애니메이션 영상을 제작해 삽입할 것인가.

하지만 아파트 공간을 구현한 3D 모델의 용량이 커서 도저히 웹에 올릴 수 없었다. 기사를 로딩하는 데 아주 긴 시간이 걸릴 게 자명했다. 이에 기사 첫 화면에 등장하는 아파트 3D 모델만 직접 웹에 올리고, 나머지 세 곳의 모습은 영상으로 삽입하기로 했다. (3D 모델을 웹에 최적화해 보여주는 과정에 대해서는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의 인사이드에서 읽어보실 수 있다.)

히어로팀 5기 <당신이 119를 누르는 순간> 기사에서 활용했던 스크롤로 영상을 재생하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영상 맨 앞에는 기자들이 문제의 기둥을 취재하는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넣고, 그 뒤에 실사가 3D 이미지로 전환되도록 제작했다. 3D 모델을 바로 보여주면 가상의 공간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다음 문제는 이 3D 공간을 어떤 카메라 화각과 움직임으로 보여줄지였다. 기사에 소개된 세 아파트 단지의 상황이 모두 달랐다. A 아파트에서는 조사 기둥 30개 중 6개, B 아파트는 기둥 1개, C 아파트는 연달아 있는 기둥 3개에서 철근 누락이 확인됐다.

B 아파트에서는 문제 기둥 하나만 보여주면 돼 간단했다. A와 C 아파트를 그린 모델에서 애니메이션을 구상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특히 A 아파트의 경우 조사 기둥 30개를 부감 샷으로 보여주도록 모델을 제작했는데, 모바일은 화면이 작아 화면 속 기둥을 독자들이 인지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 때문에 모바일 영상에서는 기둥 30개를 보여주는 장면 바로 앞에 기둥 1개가 줌인되어 있는 장면을 추가했다.
모바일 화면에서 A 아파트 모델 속 기둥 1개를 줌인하여 보여주는 장면. 모바일 화면에서 A 아파트 모델 속 기둥 1개를 줌인하여 보여주는 장면.
블렌더(3D 프로그램)로 제작한 3D 모델 애니메이션 자체를 수정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때 가장 힘들었다. 모델 하나를 한 번 수정할 때마다 200장 안팎의 프레임을 뽑아내야 했는데, 프레임 한 장을 뽑는데 1~3분이 걸렸다. 미세한 수정도 10시간이 걸릴 수 있는 셈이었다. 아파트 단지 1개당 PC용 이미지와 모바일용 이미지가 따로 있어, 한 아파트 단지에서 수정 사항이 생기면 영상을 다시 제작하는 데 하루 이상 걸렸다.

아파트 단지 모델 외에도, 기사에서 등장하는 어려운 건축 용어를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는 간단한 애니메이션 등을 추가했다. 기사 길이가 짧지 않다 보니 독자의 현재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끔 목차를 삽입했고, 마지막에는 챕터별 기사 한 줄 요약 텍스트를 넣었다.
기사의 핵심인 무량판 구조를 이미지화해 설명했다.기사의 핵심인 무량판 구조를 이미지화해 설명했다.
왜 이렇게 제작하는가
인터랙티브 기사를 기획해 온 지 4년째다. 여전히 많은 독자에게 생소하고, 어딜 가든 ‘새로운 형식’으로 소개된다. 인터랙티브 기사의 시초라고 여겨지는 뉴욕타임스의 ‘스노우폴(2012년 보도)’이 나온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그렇다. 스노우폴이 나오기 7년 전인 2005년 만들어진 유튜브가 전 세계적인 플랫폼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인터랙티브 형식의 확장성은 상대적으로 아쉽다. 

그래도 인터랙티브의 장점은 명확하다. 글 혹은 영상 형식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내용을 잘 보여줄 수 있다. 웹 기술이 허락하는 안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다.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어렵기도 하다. 필자와 팀원들은 ‘커스터마이징’의 장점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해 왔다.

히어로콘텐츠는 장인정신으로 가득 찬 콘텐츠다. 하루에도 여러 번 핫이슈가 바뀌는 우리 사회에서, 기사가 나오게 될 반년 뒤의 독자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을진 알 수 없지만 치열하게 고민해 결정한 어젠다를 깊이 있게 취재하고, 한땀 한땀 꼼꼼하게 기사를 빚는다. 단어 하나, 이미지 하나에도 고민이 담기지 않은 것이 없다. 인터랙티브 기사도 정해진 템플릿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첫 화면부터 마지막 푸터까지 뉴스룸 디벨로퍼들이 하나하나 코드로 작성한다.

인터랙티브 기사의 시대가 언 올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해외 언론에서 지속적으로 인터랙티브 웹 형식을 활용한 다양한 기사를 제작하고 있고, 그러한 기사들이 유료 독자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을 본다. 콘텐츠의 진정성을 알아봐 주는 독자들이 점점 늘어나길, 개인적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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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 아파트 건설 현장은 '보이지 않는 세계'입니다. 아파트가 올라간 뒤에는 제대로 지어졌는지 누구도 알기 어렵습니다. '안전'을 단지 '운'에 맡겨야 하는 현실. 기자들이 직접 탐사장비를 들고 아파트의 철근 누락을 7개월 간 추적했습니다.
2025.01.23~01.27·히어로콘텐츠 9기·
위은지 기자
위은지 기자|동아일보 디프런티어센터

2021년부터 히어로콘텐츠와 같은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 기획을 맡고 있습니다. 지면에 비해 제약이 적은 디지털 공간에서 어떻게 독자들에게 기사를 더 효과적이고 흥미롭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