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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면기사와 완전히 다른 디지털 기사를 제작했나

디지털 기사를 제작하기 위한 다른 방식의 취재와 사고방식

위은지 기자|동아일보 디프런티어센터 2022-08-22 09:27:55

‘이번엔 정말로, 디지털 플랫폼에서만 가능한 기사를 제작하자.’ 다섯 번째 히어로콘텐츠팀이 출범하며 부여받은 가장 중요한 미션이었다.

히어로콘텐츠팀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 1) 기존 출입처 취재 구조에서는 하기 어려웠던 아주 깊이 있는 취재를 하는 것. 2) 다양하고 참신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독자들이 더 몰입해 읽을 수 있는 기사를 제작하는 것. 돌이켜보면 늘 2)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매 히어로콘텐츠팀은 디지털 기사 제작을 염두에 두고 시작해왔다. 마감도 디지털 기사가 늘 먼저였다. 막상 결과물이 나오면, 디지털 기사는 마치 지면 기사를 옮긴 것처럼 보였다. 순서를 따져보면 디지털 기사의 텍스트를 좀 더 다듬어 지면 기사가 나간 것임에도 말이다.

이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는 내부의 문제 의식이 있어왔다. 텍스트 기사에 사진, 영상이나 인터랙티브 효과한 요소를 조금 더 추가한 형식이라면 굳이 디지털에서 그 기사를 읽어야 할 이유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기사를 구성하는 과정에도 영향을 줬다. 지면을 의식하다 보니 디지털에’만’ 특화된 무언가를 생각하기 어려웠다.

이번에야말로 지면을 통해서는 구현할 수 없는, 디지털에서만 봐야 하는 기사를 제작하고자 했다. 그 고민의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와, <당신이 119를 누르는 순간> 기사다.

주제를 넓혀서 생각하다

이번 팀은 ‘제복 공무원’이라는 주제로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제복을 입지 않았음에도 공동체를 위해 헌신한 의인들 혹은 순직하거나 부상을 입은 제복 공무원 등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인터뷰이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순직 소방관 유족을 들여다보는 방향으로 주제가 좁혀져갔다.

이 주제로 어떠한 디지털 오리지널리티를 갖춘 기사를 기획할 것인지 고민스러웠다. 무언가 사건이 진행되는 현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다양한 사진이나 영상이 나오기도 어려웠다.

결국 디지털은 지면과 달리 좀 더 주제를 넓게 보기로 했다. 꼭 ‘소방관’의 유족이 아니어도 되고, 꼭 ‘순직한’ 소방관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와 <당신이 119를 누르는 순간>이다. 전자의 기사는 순직한 군인, 경찰, 소방 공무원들의 유족을 만나 순직자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후자의 기사는 현직 소방관들의 노고에 초점을 맞췄다. 결과적으로 지면에 나간 기사와는 결이 달라졌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시도를 한 기사는 <당신이 119를 누르는 순간>이다. 이 기사는 ‘소방관과 숫자’라는 가제로 시작했다. 소방관의 노고를 각종 통계로 보여주자는 취지였다. 신문기자의 관점에서 보면 솔직히 뻔한 기사다. 이미 비슷한 기사는 인터넷에 많이 있었다. 소방관들이 힘들게 일한다는 것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 통계 자체로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어려워 보였다.

우리는 그러한 통계를 여러 인터랙티브 효과와 멀티미디어 재료를 활용해 ‘와닿을 수 있게’ 전달하고자 했다. 통계의 맹점은 독자들이 공감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119에 접수된 신고 건수가 1000만 건이 넘는다는데, 글로만 쓰면 신고가 ‘많다’는 것이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별로 느껴지진 않는다. 그러한 통계 하나 하나에 담긴 소방관의 노고를 독자들이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시각적인 여러 효과와 더불어 실제 소방관들의 진솔한 목소리도 같이 담았다.

직접 3D 모델을 제작해보다

개인적으로 기사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부분은 소방관 3D 모델이다. <당신이 119를 누르는 순간> 파트2에 나오는 3D 모델을 팀에서 직접 제작했다. ‘포토그래머트리(Photogrammetry)’라는 기술을 활용했는데, 아마 이를 활용한 건 국내 언론 중 우리가 처음이 아닐까 한다.

포토그래머트리의 존재를 안 건 작년이다. 디지털 기사 기획에 참고하기 위해 해외에서 제작한 기사들을 찾아보던 중, 뉴욕타임스에서 포토그래머트리를 활용해 제작한 기사들을 접하게 됐다. 기존에는 접해보지 못한 방식이라 꽤나 충격이었다. 당시 ‘공존’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Chinatown, Resilient and Proud> 기사를 보며 경기도 안산의 길거리도 이렇게 보여줄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뉴욕타임스가 자세한 제작 가이드 도 제공했다. 혼자 가이드를 따라해봤는데, 2D를 3D로 바꿔주는 소프트웨어(Reality Capture)가 노트북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찾아보니 엔비디아 그래픽카드가 탑재돼있어야만 작동이 됐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다행히 ‘다음’은 빨리 찾아왔다. 올해 봄 인턴들이 채용되면서다. 인턴들에게 제공할 컴퓨터를 구매해야 했는데, 디자이너 인턴용으로 3D 모델링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는 고사양 맞춤 컴퓨터를 주문했다. 새로 채용된 개발자 인턴이나, 디자이너 인턴 모두 3D 기술에 관심도 있었다. 그 덕에 올해 상반기에 3D 모델과 포토그래머트리 구현 방법을 같이 리서치할 수 있었다.

뉴욕타임스 가이드를 하나하나 따라해본 뒤 직접 샘플 모델을 제작해봤다. 나는 사진을 찍었다. 청계천 벽에 걸린 화단을 찍어왔다. 디자이너 인턴이 3D 모델링 소프트웨어를 돌렸다. 개발자들은 3D 모델을 웹에 띄우는 방식을 연구했고, 그 결과로 <제임스웹 망원경> 기사를 제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근시일 내에 포토그래머트리를 실제 보도에 활용할 수 있을 거란 자신은 없었다.

그러다 이번에 <당신이 119를 누르는 순간> 기사를 기획하게 됐고, 소방관들이 입는 소방장비의 무게를 보여주자는 얘기가 나왔다. 어떻게 보여줄까 논의하던 중, 포토그래머트리로 모델을 제작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한 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잘 안되면 다른 대안을 찾기로 하고 말이다.

먼저 사진을 촬영했다. 소방장비를 입힌 마네킹을 찍어야 했다. 취재팀이 종로소방서에 협조를 구했으나, 마네킹은 없었다. 급히 마네킹 대여업체를 통해 퀵으로 마네킹을 받았다. 무더운 여름날 커다란 마네킹을 소방서로 들고 가면서, 내가 이상한 짓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잠시 현타가 오기도 했다. 취재기자 2명과 소방서 직원까지 달라붙어 간신히 마네킹에 소방장비를 모두 입히고 사진을 찍었다. 혹시라도 잘못될까봐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그렇게 450장 가량을 촬영했다.

소방장비를 입힌 마네킹을 촬영하고 있는 필자.

사진을 3D 모델링 소프트웨어에 넣고 돌렸다. 생각보다 그럴싸한 모델이 나왔다. 다만 텍스쳐를 다듬어야 했다. 다행히 히어로콘텐츠 1기부터 함께하고 있는 뉴스디자인팀 김충민 기자가 3D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알았다. 다듬은 모델을 개발자 인턴이 웹에 띄웠다. 그렇게 소방관 3D 모델이 탄생했다.

촬영한 사진으로 제작한 3D 모델.

이것 이외에도, 기사를 다채롭게 만들기 위해 안하던 일을 해야 했다. 현직 소방관의 음성을 넣기 위해 취재기자가 서울 곳곳을 누볐다. 소방차가 화재 현장으로 출동하기 위해 소방서를 떠나는 그 찰나를 담기 위해 소방서에 3번이나 갔다. 세 번째로 간 구로소방서는 새벽 5시 반에 갔다. 비오는 날 구로소방서 건너편 인도에 카메라를 세워놓고 3시간 반을 무작정 기다린 끝에 기적적으로 영상을 촬영할 수 있었다.

우리는 왜 새로운 시도를 하는가

디지털 기사를 제작할 때 어려운 점은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가’다. 신문을 만들 때는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치열하게 고민했지만, 어떻게 담을 것인지를 고민해본 적은 그닥 없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생각보다 무궁무진한 비주얼라이제이션 방식이 있다. 그 중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골라내고, 그 중에서도 어떤 방식이 기사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기존에 하던 방식이나 루틴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기사를 만든다는 건, 흥미롭게 들릴 수 있지만 그 과정은 꽤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자꾸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는 이유는, 그럴 때 기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질 것이고 나아가 독자들에게 더욱 친절한 기사, 흥미로운 기사를 만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독자들과 기자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계속 던져주는 것. 그것이 내 역할이자 디지털이노베이션팀의 역할이지 않을까 싶다. 7월 말 ‘디 오리지널’ 사이트를 개편한 이유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기존의 디 오리지널 사이트는 히어로콘텐츠팀이 제작한 디지털 특화 기사를 주로 싣기 위해 제작됐다. 개편을 통해 동아미디어그룹 사내 구성원이 제작한 보다 다양한 참신한 기사를 모아볼 수 있는 공간으로 확장했다. 앞으로 더욱 좋은 콘텐츠로 공간을 채워나갈테니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