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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근로자들과 부대끼며 얻어낸 ‘부실 시공의 진실’

5개월 간의 건설 현장 취재기
이문수 기자|동아일보 정책사회부 2025-02-11 09:30:01
지난해 11월 수도권 한 공사현장 취재를 위해 취업한 기자의 안전모. 이름과 혈액형 등의 정보가 적혀있다. 지난해 11월 수도권 한 공사현장 취재를 위해 취업한 기자의 안전모. 이름과 혈액형 등의 정보가 적혀있다.
“무너지진 않았잖아요”
“가방끈도 짧고 수중에 아무것도 없었던 나를 애들 대학 공부 시키고, 집 사게 만들어준 건설업, 도저히 이렇게 흘러가는 걸 보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무더웠던 지난해 8월 경기 부천시에서 처음 만난 30년차 방수 기능공 김용학 씨는 ‘누락’의 실체를 히어로콘텐츠팀에게 들려줬다.

히어로팀이 취재 초반 ‘순살 아파트’를 주제로 정하고 사전 취재에 나섰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철근 몇 개 빠진다고 아파트 안 무너져요’였다. 건설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건물 하나에 수십 수백만 개의 철근이 들어가기 때문에 실수가 있을 수 있다는 것. 건설업계 관계자들과 통화할 때마다 ‘부실 시공’의 인식 자체가 우리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너지진 않았잖아요’라는 말은 와우아파트,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겪은 나라의 건설업계에서는 나와선 안될 말이었다. “그래도 괜찮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오히려 “그래서는 안 괜찮다”는 확신이 강해졌다.

대다수의 취재원들은 비협조적이었다.

부실 시공은 건설현장 관계자들 입장에서는 불편한 진실이다. 철근소장, 감리 등 대부분의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취재를 시도할 때마다 가시부터 곤두세웠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자신에게 혹시라도 피해가 올까봐’하는 우려였다. 이해 가는 측면도 있었다. 불경기에 좁은 업계 특성상 내부 고발을 했다가 잘못된 경우가 한둘이 아니었다. 부실 시공을 내부 고발한 경험자들은 제보를 해도 기사화되지 않거나 오히려 잘 모르는 상태로 보도해 곤란했던 경험이 있다며 말하길 꺼려했다.
지난해 12월 13일 김용학 방수 기능공이 서울 강동구 한 스튜디오에서 히어로팀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3일 김용학 방수 기능공이 서울 강동구 한 스튜디오에서 히어로팀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밥벌이 할 수 있게 만들어준 이 업계가 이렇게 무너져내리는 것을 가만 지켜볼 수는 없다’며 입을 연 사람들이 있었다. 182명의 건설업계 관계자 취재는 무더웠던 8월 경기 부천시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답은 현장에 있다… 전국 취재 시작
지난해 8월 25일, 김용학 씨의 사무실에서 현장 관계자 3분을 모시고 처음으로 대면 인터뷰를 했다.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이니 인터뷰에 막힘이 없었다. 신상준 철근소장은 인터뷰 목적을 듣고 ‘건설업계의 문제점’을 보고서 형태로 미리 정리해 오기도 했다. 4시간의 인터뷰 끝에 ‘그간 부실시공 취재한다는 기자들이 많았는데 쉽지 않았다’는 의심의 눈초리는 사라졌다. 확신이 들었다. 그날 4명의 인터뷰에서 현재 우리나라 건설의 문제점을 명확히 정리할 수 있었다.

불법하도급과 최저낙찰제, 유명 무실한 감리 제도, 외국 인력 급증으로 인한 소통의 장벽, 숙련공 부족.

문제점은 알았으니 뒷받침할 증언과 현장이 필요했다. 불법하도급으로 인한 실질 공사비 감소, 극한으로 하청을 쥐어짜는 최저낙찰제를 담아내려면 하도급 사장을 만나야했다. 감리의 문제를 알기 위해서는 감리를 만나야했다. 외국인력 급증과 소통의 부재, 숙련공 부족 문제를 다루려면 현장 직군 인터뷰와 르포가 필요했다.

답은 ‘현장 박치기’였다.

우리의 기획 취지와 진정성을 보이는 방법은 관계자들을 일일이 찾아가 물어보는 방법 뿐이었다. 일요일에만 쉬는 현장 직군의 이야기를 들으려 인터뷰는 대체로 주말에 이뤄졌다. 일이 바빠 시간 내기 어렵다는 취재원에게는 ‘어디 계신지 언제 괜찮으신지 말씀만 주시면 제가 다 맞춰서 찾아 뵙겠다, 30분만 시간 내달라’고 졸랐다.

주중에는 교수, 건축구조기술사, 안전관리자, 시공사 관계자를 인터뷰하고 전국 아파트 철근 탐사를 다녔다. 주말에는 서울, 수도권, 그리고 지방을 돌며 현장 사람들을 만났다. 시공 중인 아파트, 물류창고, 문화센터, 지자체 건물을 비집고 들어가 현장 관계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고기 굽고 공 차며 들은 ‘부실시공 이야기’
“기자님, 저희 모임에 한 번 오실래요?”

‘이번에 정말 제대로 건설업계 취재한다더라’라는 이야기는 현장 사람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졌다. 취재 약 한 달 만에 건설 현장 종사자들이 모이는 정기 모임에 초대받았다. 저녁으로 고깃집에서 갈비도 구워먹고, 야유회에서는 족구도 하고 해신탕도 함께 끓여 먹었다. 물론 취재 일정이 빠듯해 거의 쉬는 날 없이 다니다 보니 체력적으로 힘겨워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은 날도 있었다. 9월말 그날 고깃집 바로 옆에 앉은 건설 종사자가 바로 3화에 나오는 건설 하도급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정 소장은 기사 취지를 말해주니 ‘몇달 째 너무 힘든 일이 있는데 어떻게 해결해야 하냐’며 도움을 청했다. 4차까지 이어진 하도급 구조에서 가장 말단 하도급 사장이었던 그가 맡고 있는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자세히 들어보니 그토록 찾고 있던 ‘건설업계 불법하도급’의 실체가 명확히 드러나는 이야기였다.
지난달 8일 정민호(가명) 소장이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철골 구조물을 나르고 있다. 지난달 8일 정민호(가명) 소장이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철골 구조물을 나르고 있다.
1~3차 하도급에서 원청이 내린 공사비를 나눠먹고 실질적으로 공사를 수행하는 정 소장에게는 ‘돈이 없다’며 공사 대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공사비가 부족해지자 말단 하도급 사장 정 소장은 돈을 벌기는 커녕 자기 돈까지 써가며 겨우 일을 하고 있었다. 업계 신용상 공사를 도중에 그만두는 행위는 앞으로 이 업계에서 일을 안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었다. 공사 기간은 길어지고 대금 지급이 안되자 정 소장에게 협력업체들로부터 내용증명이 날아들었다.

결국 정 소장은 균열이 있던 부실 기둥을 돌려보내지 않고 공사 현장에 시공할 수 밖에 없었다.

비슷한 시기 2023년 9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감리단장을 맡았던 황우진(가명) 씨를 만났다. 황 씨는 검단 LH 아파트 붕괴 이후 자신이 맡고 있던 현장에서도 심각한 벽체 철근 누락을 발견했다. 그러나 LH 측에서 돌아온 대답은 “철근 누락 절대 입 밖에 내면 안 된다”는 경고였다. 불과 5개월 전 있었던 붕괴 사고 탓에 ‘다시 철근 누락이 발생하면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황 씨는 두고 볼 수 없었다. 모 언론사에 해당 내용을 제보했다. 기사가 나가자 공사는 중단됐고 황 씨는 소속 건축사사무소에서 잘리고 말았다. ‘내부 고발자’로 낙인 찍히자 취업도 어려워졌다. 황 씨는 기자에게 “그래도 공사도 중단됐고, 입주민들이 ‘용기내줘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거면 된 게 아닌가요”라고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9월 말 정 소장과 황 감리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우리나라 건설현장의 ‘진짜 문제점을’ 발견했다. 실질 공사비를 좀먹어 부실시공을 야기하는 불법 하도급, 그리고 감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구조적 모순이었다.
건설현장 취업기
이제 남은건 ‘현장의 생생한 경험’이었다.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철근이 어떻게 엮여 들어가는지, 외국인 근로자는 얼마나 많은지, 실제 부실시공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건 아닌지 확인하려면 현장에서 일을 해봐야만 했다. 인력사무소, 앱, 취재원 연결 등을 통해 9월부터 약 3달간 구직활동에 나섰다.

‘건설업 기초안전보건교육 이수증’도 따고 앱으로 이력서를 100곳 넘게 보냈지만 취업이 쉽지 않았다. 불경기로 인해 아파트 건설 현장에 20대 무경력자가 취업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11월 중순, 비로소 일자리가 잡혔다.
지난해 11월 말 기자가 취재를 위해 취업한 수도권 아파트 재건축 현장. 오전 6시 45분경 아침 조회 시간 인부들이 모여들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기자가 취재를 위해 취업한 수도권 아파트 재건축 현장. 오전 6시 45분경 아침 조회 시간 인부들이 모여들고 있다.
직접 본 건설 현장은 이전 취재에서 들었던 문제점들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빠듯한 공사 기한 탓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공사는 진행됐다. 이태원 뺨치게 글로벌한 건설 현장 내에서는 서로 소통은 커녕 간단한 인사말조차 어려웠다. 현장에서 만난 외국인 근로자들은 모두가 불법 체류자 신분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불법 체류자 신분이라 인터뷰가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이번 기획 취재에서 가장 아쉬웠던 순간이었다.

기자는 현장 일에 요령이 없어 오후 5시 마감 이후에는 온 몸이 저릿하고 허리와 손 끝이 뻐근했다. 일이 고되니 현장에서 먹는 점심 식사가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6년 전 육군훈련소 수료날 부모님과 먹은 바깥 음식이 떠올랐다. 3만 원 주고 산 안전화가 하루 만에 엉망이 될 만큼 힘든 경험이었다.
’평생 벌어 집 한 채 사는 나라’
취재가 늘 잘 풀리지만은 않았다. 워낙 큰 돈이 오가는 업계라 오보에 대한 책임과 소송 위험, 건설이라는 전문 분야를 취재하는 비전문가 기자로서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제 일 처럼 발 벗고 나서 도와주고, 적극적으로 증언해준 업계 관계자들 덕분에 ‘누락’은 마무리 될 수 있었다.
2023년 한 아파트 건설현장의 벽체에 수평계(공구의 일종)가 박힌 체 시공됐다. 2023년 한 아파트 건설현장의 벽체에 수평계(공구의 일종)가 박힌 체 시공됐다.
“아무것도 없었던 젊은 시절의 나를 번듯한 집 한채와 자녀 대학공부까지 시킬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이 이 건설 노가다판”이라는 어느 근로자의 말. 모든 불이익과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취재에 협조해준 현장소장과 감리, 건축구조기술사 등 업계 종사자.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꼭 남기고 싶다. 이들이 보여준 직업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은 아직 초년병인 기자에게 큰 울림이었다.

이번 보도만으로 우리나라의 건설업계가 부실 시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경종은 울렸다고 생각한다.

‘평생 벌어 집 한 채 사는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가, 어느 아파트든 걱정하지 않고 입주할 수 있게 되는 그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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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 아파트 건설 현장은 '보이지 않는 세계'입니다. 아파트가 올라간 뒤에는 제대로 지어졌는지 누구도 알기 어렵습니다. '안전'을 단지 '운'에 맡겨야 하는 현실. 기자들이 직접 탐사장비를 들고 아파트의 철근 누락을 7개월 간 추적했습니다.
2025.01.23~01.27·히어로콘텐츠 9기·
이문수 기자
이문수 기자|동아일보 정책사회부

주로 사회정책을 취재했습니다. 정책의 이면에 담긴 사람들의 땀과 눈물, 욕망과 이상을 보고 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