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유를 묻지 말 것.
2. 제3자에게 행선지를 알리지 말 것.
3. 신속·은밀하게 움직일 것.
의뢰인의 증발을 돕는 이들에게 이 세 가지 규칙은 불문율이다. 달빛마저 사라진 어두운 밤, 최소한의 짐을 꾸려 움직일 때 구구절절한 사연이나 신상정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증발할 시간과 장소면 충분하다.
취재팀은 수년째 증발을 돕고 있는 업체 10곳을 접촉했다. 이들은 “질문은 금물. 의뢰인을 모시고 사라질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예전에는 야반도주만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이 있었다. 특히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 나라 경제가 출렁이면 이런 업체들이 반짝 성업을 이뤘다. 최근에는 고객 요구사항에 따라 맞춤형으로 증발을 돕는다. 개인용달 사업자들이 ‘아침 댓바람 이사’, ‘남친 몰래 이사’ 같은 광고를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A이사업체 대표는 “처음에는 눈길을 끌려고 재미 삼아 이런 문구들을 넣었다. 평일 낮에 시간 내기 어려운 직장인들이나 혼자 사는 사람들을 타깃으로 했다”면서 “그런데 의외로 사라지기 원하는 분들의 문의가 한 달에 몇 건씩 오더라”고 말했다.
업체들에 따르면 최근 20~40대 젊은층의 의뢰가 늘고 있다. 증발 시간은 0시에서 새벽 6시에 집중돼 있다. 행선지는 전국 구석구석으로 스며든다. 이동 거리, 옮겨야 할 짐, 필요 인원에 따라 가격은 달라진다. 일반 이사 비용의 1.5~2배가 시세다. 이사업체인 ‘쉐어워크’ 대표는 “고객이 ‘무조건 빨리 와 달라’고 하는 경우는 대부분 흔적 없이 사라지려는 사람이다. 이럴 때는 우리도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조용히 움직이는 걸 최우선으로 한다”고 말했다. B용달업체 대표는 “의뢰인들이 눈에 띄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무조건 1t짜리 소형 트럭을 찾는다”면서 “여기에 못 싣는 짐들은 폐기 비용을 따로 주면서 ‘흔적 없이 없애 달라’고 한다”고 전했다.
관련 업체들은 여러 차례 증발을 처리하다 보면 어떤 이유로 사라지려 하는지 대략 짐작이 될 때도 있다고 말한다. 그래도 의뢰인이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사연을 묻지 않는 게 원칙이다. 모르는 편이 더 나을 때도 있다. 증발자의 짐을 챙기고 뒷정리까지 한 적이 있는 C심부름업체의 대표는 “빚 독촉에 못 이겨 도망치는 의뢰인이 있었다. 우리는 이런 배경이나 사연에는 아예 눈을 감고 일을 처리해야 안 다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