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야, 우리 내년에는 꼭 밖에 나가서 눈사람 만들자, 알겠지?”
2019년 12월. 현우(가명·당시 4세)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병실 창밖으로 하염없이 내리던 함박눈. 이지선(가명) 씨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약속했다. 하지만 어린 아들도 덧없다는 걸 아나 보다. 수술받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몸. 언젠가부터 집에 가잔 말조차 하지 않는다. 내년 겨울에는 눈사람을 만들 수 있을는지. 자꾸만 눈물이 차올랐다.
입원 125일째. 아들의 가슴엔 검고 굵은 전선이 달려 있다. 심장이 아픈 현우는 넉 달 전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 결국 인공심장(심실보조장치) 이식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작디작은 몸엔 성인에게 맞춰진 인공심장을 넣을 수 없었다. 현우의 인공심장은 몸 밖에 존재했다.
현우와 연결된 ‘기계 심장’은 사무용 복사기처럼 커다랗다. 무게만 100㎏에 달한다. 심장에 피가 돌게 하는 기계에 연결된 선은 겨우 2m. 현우가 움직일 수 있는 반경은 거기까지였다. 가끔 병원 복도라도 걸으려 하면, 이 씨와 남편은 아들보다 몇 곱절 큰 기계를 끌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30분. 기계 심장은 전기를 연결하지 않으면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여보, 여긴 콘센트가 어디 있지?” 콘센트가 없는 병원 밖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현우의 심장이 이상하단 걸 안 건 두 살 때였다. 샛노란 개나리 물결이 한창이던 4월. 감기 기운이 있는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에 갔다가 뜻밖의 이야길 들었다.
“가슴에서 전엔 안 들리던 소리가 나요. 심잡음(心雜音)이 있어요. 큰 병원에 가보시는 게 좋겠어요.”
놀란 마음에 허둥지둥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확장성 심근병증.’ 표현조차 생경한 병명. 익숙해질 틈도 없이 의사는 무서운 말을 이어갔다.
“심장 근육의 이상으로 박동이 약해지는 병이고요. 지금 심장 기능이 정상의 30%밖에 안 되네요. 심해지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어요. 곧바로 치료에 들어가야 합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우는 그날부터 강심제를 먹으며 병원을 오갔다. 2년이란 시간이 흐른 2019년 여름. 목감기에 걸린 현우의 상태가 아무래도 이상했다. 두 달 넘도록 마른기침이 그치지 않더니 기운을 잃고 축 처져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평소에도 잘 먹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갈수록 밥 한 숟가락조차 뜨질 못했다.
다시 찾아간 병원.
“간경화 4기예요. 바로 입원하셔야 합니다.”
심장이 제 기능을 못하는 아이는 술 한 방울 먹질 않아도 간에 이상이 생긴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중환자실에서 며칠 동안 계속된 치료에도 현우의 심장 박동수는 속절없이 낮아졌다. 급기야 심폐소생술에 에크모(ECMO·인공심폐기) 시술까지 받았다. 현우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작고 여린 몸으로 외로운 싸움을 하는 현우를 바라봐야만 하는 마음은 미칠 지경이었다.
일주일 뒤,현우는 커다란 기계 심장을 달았다.
살아줘서 고마웠다. 뭘 해도 대견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가슴이 시렸다. 현우는 병실 침대 옆 매트가 온 세상이 됐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자동차를 만지작거리고 한글공부를 했다. 그곳만이 현우에게 허락된 놀이터이자 유치원이었다.
그렇게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병원에는 출입통제마저 내려졌다. 세살 터울 누나는 영상통화로만 얼굴을 마주했다. 누나는 문방구에서 신기한 걸 발견하면 꼭 현우 갖다 주라며 아빠에게 쥐여줬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봄.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집 앞에 벚꽃 길이 있거든요. 평일엔 제가 병원에서 자고 주말엔 현우 아빠가 병원에서 자요. 교대를 하고 집에 가다가 갑자기 눈물이 터졌어요. 이리 예쁜 꽃들이 가득 피어 있는데. 우리 현우는 같이 볼 수 없구나. 걷다 울고, 울다 걸었었지요.”
눈물이 터졌던 날로부터 정확히 이틀 뒤. 담당 의사 선생님은 믿을 수 없는 얘길 전했다.
“심장이식을 받을 수 있게 됐어요. 기증자는 아홉 살 남아입니다. 곧 수술 준비 들어가야 해요. 기다리고 계세요.”
입원 8개월 만에 찾아온 기적이었다.
처음엔 얼떨떨했어요. 한참 뒤에야, 이제 우리 현우 살 수 있구나 싶었어요.
그동안 아이가 겪었던 힘든 치료들. 하나도 빠짐없이 머릿속을 스쳐갔죠.
그리고…, 그리고 너무 죄송했어요. 이 고마운 날이 누군가에겐 너무도 아프고 슬픈 날일 텐데. 눈물이 멈추질 않았어요.
짐작은 했다. 현우가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날, 신문에 홍준이의 사연이 실렸다. 이 아이일지도 모른다. 전국에서 하루에 발생하는 장기 기증은 한두 건뿐. 더구나 아동 장기 기증은 훨씬 드물다. 이 씨는 아이의 사진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어떻게 편하게 바라볼 수 있었겠어요. 이 천사 같은 아이가 하늘나라로···. 현우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을 주고 갔는데. 기사에 나온 사진과 이름. 다 기억해요. 우린 이식을 받아 기뻤지만. 고마우면서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홍준이 부모님은 어떤 심정이실지. 죄책감이 몰려와 또 울었어요.”
이식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우는 일반병실로 옮겼다. 가슴의 수술자국도 아물어갈 무렵. 현우는 크게 소리쳤다.
엄마! 나 좀 봐봐! 나 봐봐! 나 이제 엎드릴 수 있어!
지난해 6월, 현우는 집으로 돌아왔다. 10개월 만이었다. 현우는 한시도 쉬지 않고 집안 곳곳을 뛰어다녔다.
누나는 더 신이 났다. 몇 달 동안 못 본 동생. 현우가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누나는 동생의 손을 잡고 어디고 붙어 다녔다. 이것 이렇고, 저건 저렇고. 집안 곳곳의 변화를 쉴 새 없이 조잘거렸다. 누나는 공책에 동생이 먹어야 하는 약의 이름도 적어뒀다. “현우가 먹는 약은 나도 알아야 하니까.”
현우는 건강해졌다. 이제 집 앞 공원에서 누나와 킥보드도 탈 수 있다. 짧게나마 외출도 가능해졌다. 눈이 오던 날, 약속했던 눈사람도 함께 만들었다. 지금의 이 일상. 믿기지가 않는다.
“다들 코로나19 탓에 집에만 있는 게 답답한 시기지만 저희는 ‘우리 집’에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해요. 매일 아침 현우 가슴에 손을 얹고 ‘고맙다’고 기도해요. 현우에게도 항상 ‘형아를 잊지 말자’고 말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