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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3역… “바쁘다 바빠”

욕심을 버리자 따오기가 왔다
전영한 기자|동아일보 사진부 2022-01-11 08:45:17
이번 동행 프로젝트의 메시지는 생태계 속 다양한 생명체와의 공존이었다. 한반도에서 이뤄진 생태 복원 사업을 제대로 살펴보는 것이었다. 취재 대상으로 ‘따오기’와 ‘반달곰’이 선택됐다. 사실 따오기를 직접 보기는커녕 울음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저 늘 어릴 적 부르던 동요를 통해서만 기억하고 있었다. 경남 창녕군 우포늪 주변에 자연방사 된 따오기를 찾아 카메라에 담아야 하는 목표가 생겼다. 회의가 진행될수록 마음이 설렜다. 기획 과정에서 콘티가 여러 차례 바뀌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의욕은 더 커졌다.
‘안 되면 되게 하라’로 다 됐는데…
1990년대 중반부터 여러 조류와 남한의 희귀동물 취재를 위해 혼자 전국의 산과 강, 바다를 돌아다니며 취재했다. 포유류를 취재할 때 몸을 씻지 않는 것도 옛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포유류는 냄새에 민감하고 쇳소리는 더더욱 싫어해 행동 하나하나에 유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7년이었다. 폭설이 내린 겨울 강원 지역의 한 산악지대에서 성인 남자 손바닥보다 큰 포유류 발자국을 발견했다. 혹시 한반도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를 카메라에 담을까 위장막을 친 차량 안에서 일주일 동안 씻지도 않고 기다린 적도 있다. 자연은 사람과의 소통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그저 ‘기다림의 미학’에 수긍하고 겸허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맨땅에 헤딩까진 아니었다. 여기에 동영상 제작을 위해 카메라 여러 대와 망원렌즈, 조명 그리고 드론까지 투입됐다. 위장막을 제외하고 촬영장비만으로 자동차 트렁크가 꽉 찼다. 필름 카메라부터 시작해 디지털 카메라 캠코더까지, 다양한 장비로 이후 취재한 경험이 있던 터라 그리 힘들 것 같지 않았다. 여러 차례 회의를 거치며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비록 구닥다리이긴 하지만 나만의 방법으로 ‘동행: 그렇게 같이 살기로 했다’ 프로젝트 현장에 뛰어들기로 마음먹었다.
욕심을 버려야 보이는 피사체
물론 야생동물이 움직이는 찰나의 순간을, 카메라나 렌즈를 바꿔가며 사진과 동영상 거기에 드론까지 동원해 취재한다는 게 쉽지는 않다. 그래도 시작 전에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해 취재를 시작하자마자 벽에 부딪혔다. 수시로 카메라와 렌즈를 바꿔가며 최고의 사진과 동영상을 다양하게 찍고 싶었지만 마음만 앞섰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방식이 이번 현장에선 그리 쉽게 통하지 않았다.

생태 사진취재는 그야말로 순간순간 보이면 바로 촬영해야 한다. 찰나를 잡아내는 게 핵심이다. 찰나(刹那)의 어원은 불교에서 산스크리트 어의 '크샤나'를 음역한 아주 짧은 시간이란 뜻으로 전해진다. 사진을 찍은 뒤 카메라와 렌즈를 바꾸고 동영상을 찍으면 벌써 따오기는 날아가고 없다. 세 번 기회가 있으면 한 번만 살릴 수 있는, 아주 혹독한 영상 기록이다.

우포늪의 따오기 보호를 위해 오랜 기간 환경 감시 활동을 하신 어르신이 직접 노를 젓는 나룻배를 타고 여러 차례 촬영했다. 어르신은 한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작사, 작곡했다는 ‘우포늪’ 노래를 부르시며 신나게 노를 저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생태 취재 역시 하나부터 열까지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걸 다시 느꼈다. 아쉽게도 이번 동영상 취재 때 핀마이크가 없었다. 인터뷰 때 최대한 가깝게 촬영하면서 목소리를 크게 내달라고 요구했다. 물론 깨끗한 음질은 아니지만 자연 그대로의 소리를 함께 담아낼 수 있었다.
2006년 피아골 계곡의 추억
따오기와 달리 반달곰은 낯설지 않았다. 2005년 북한 평양동물원이 남한에 반달곰을 선물했다. 바로 ‘낭림33(당시 2년 6개월)’. 이듬해 4월 지리산에 방사된 낭림33이 동면에서 깨어나 활발한 먹이 활동하는 모습을 언론사 처음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이를 위해 당시 구례와 하동 지리산 중턱의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제보를 받기 위해 명함을 돌렸다. 지리산 능선을 오르고 점심식사를 위해 다시 하산하기를 반복했다. 위치추적기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가까웠지만 막상 우리가 접근하면 멀어졌다. 반달곰과의 숨바꼭질이 이어진 끝에 결국 주민 제보로 피아골 계곡 나무 15m 높이에 올라간 반달곰을 처음으로 촬영하는데 성공했다.

아쉽게 이번에는 그런 날 것 그대로의 상황을 포착하진 못했다. 그 대신 전남 구례군 국립관리공단 남부보전센터 자연훈련장에서 반달곰을 만날 수 있었다. ‘훈련 중’이지만 지리산 야생방사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습성은 야생 곰과 크게 다르지 않다. 멀리 나뭇가지 사이로 반달곰 무리가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조심스레 다가갔지만 인기척이 들리자마자 나무꼭대기로 올라갔다. 어쩔 수 없이 드론을 띄워 반달곰의 상태를 관찰하기로 했다. 지리산 5부 능선에는 나무들이 우거져 드론 이착륙이 쉽지 않다. 그리고 깊은 산 속이라 신호도 좋지 않았다. 자칫 드론이 ‘나홀로 비행’을 하다 사라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여러 상황을 감수하고 드론을 하늘로 날렸다. 반달곰 4마리가 나무꼭대기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을 확인했다. 문제는 시간이다. 해는 벌써 뉘엿뉘엿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다음 인터뷰 장소로 가려면 산길을 30분가량 걸어야 했다. 인터뷰를 진행할 취재기자들의 표정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조금만, 조금만 더…”를 기다린 끝에 반달곰 무리 촬영에 성공했다. 고맙게도 나무 아래로 내려와 마치 포즈를 취하듯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그렇게 2021년 또 한 번의 반달곰 취재가 이뤄졌다.
어떤 동행이 좋을까
생태 복원 사업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멸종된 동물을 사람의 손으로 되살리는 게 마땅하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동물이 자취를 감추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자연의 섭리가 아니라 사람이다. 고의로 또는 무의식 속에서 인간이 동행을 거부하면서 동물들이 사라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새로운 동행의 길을 찾지 않으면 따오기든 반달곰이든, 언제든지 다시 사라질 수 있다.
전영한 기자
전영한 기자|동아일보 사진부

취재 현장에 흑백과 컬러 필름이 공생하던 시절부터 기자로 생활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아프리카 등 세계 분쟁 지역을 다니고 국회와 청와대를 출입했습니다. 제가 취재하는 다양한 사진에 ‘마음의 정원’을 새겨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