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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이 나의 일이 될 때
26인의 환자 취재기
송혜미 기자동아일보 경제부
2023-04-07 10:00:01
‘안녕하세요. OOO 선생님 통해 연락드리게 된 동아일보 송혜미 기자입니다. 취재 동의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감사드려요. 혹시 통화 편하신 때 언제실까요?’
지난해 12월 9일 충북대병원에 입원해있는 종열 씨에게 처음으로 보낸 문자. <표류> 시리즈의 취지를 전해들은 종열 씨는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표류> 인터랙티브 기사 1회 <그들이 구급차를 탔던 날>의 첫 사례자이자 지면 시리즈 기사 주인공이기도 한 종열 씨와의 인연은 이 한 통의 문자로 시작됐다.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이지만 사실 몇 번을 고쳐 썼다. 장문의 문자를 한바탕 썼다가 너무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지웠다. 친근하게 물결(~)이나 느낌표(!)를 붙일지, 그게 아니면 신뢰감을 주도록 마침표만으로 문장을 끝낼지, 전송 버튼 누르기 직전까지 고민했다. 그러느라 종열 씨의 연락처를 전달받고도 2시간 후에야 문자를 보낼 수 있었다.
종열 씨뿐만이 아니다. 모든 표류 환자와의 첫 만남이 내내 이런 과정을 거쳤다. 누군가의 삶에 발을 들이는 첫 걸음이라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들어야 하는 이야기가 아프고 괴로운 것일수록 망설이는 시간은 더 길어졌다. 표류 끝에 세 살 자녀를 잃은 가족을 취재할 땐 며칠동안 문자를 썼다 지웠다 휴대폰을 붙들고 씨름했다. 하루아침에 아이를 잃은 슬픔 앞에서 어떤 인사말도 무심하게 느껴져서다. 그들의 이야기를 끝내 기사에 다 담지 못한 것도 남겨진 가족들의 고통이 너무 크고 깊었기 때문이다.
텍스트 기사와 더불어 인터랙티브 기사를 함께 제작해야 하는 점도 취재를 어렵게 했다. 텍스트 기사엔 이야기만 있으면 되지만 인터랙티브 기사에는 생생한 시청각 자료가 필요하다. 활자보다도 그게 우선이다. 표류 당시 구급차, 응급실, 수술실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 같은 것들. 기시감이 들 법한 이 아이템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생생하게 시각화했을 때의 충격파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청각 자료를 구하고 사용하는 데는 생각보다 난관이 많았다. 구급차나 응급실 CCTV 영상은 보관 기간이 짧았다. 현장에서 내내 카메라를 켜고 있다 만나는 환자가 아닌 이상 지난 사례에 대해 이미지, 영상, 음성을 구하는 게 어려웠다. 설령 자료를 구하더라도 환자나 가족들이 사용을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표류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로워했다. 악몽 같던 그날을 다시 마주볼 자신이 없다고 했다. 이런 사정으로 취재를 한참 진행하다 더 이상 응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어렵게 말을 꺼낸 사례자도 있었다.
종열 씨뿐만이 아니다. 모든 표류 환자와의 첫 만남이 내내 이런 과정을 거쳤다. 누군가의 삶에 발을 들이는 첫 걸음이라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들어야 하는 이야기가 아프고 괴로운 것일수록 망설이는 시간은 더 길어졌다. 표류 끝에 세 살 자녀를 잃은 가족을 취재할 땐 며칠동안 문자를 썼다 지웠다 휴대폰을 붙들고 씨름했다. 하루아침에 아이를 잃은 슬픔 앞에서 어떤 인사말도 무심하게 느껴져서다. 그들의 이야기를 끝내 기사에 다 담지 못한 것도 남겨진 가족들의 고통이 너무 크고 깊었기 때문이다.
텍스트 기사와 더불어 인터랙티브 기사를 함께 제작해야 하는 점도 취재를 어렵게 했다. 텍스트 기사엔 이야기만 있으면 되지만 인터랙티브 기사에는 생생한 시청각 자료가 필요하다. 활자보다도 그게 우선이다. 표류 당시 구급차, 응급실, 수술실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 같은 것들. 기시감이 들 법한 이 아이템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생생하게 시각화했을 때의 충격파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청각 자료를 구하고 사용하는 데는 생각보다 난관이 많았다. 구급차나 응급실 CCTV 영상은 보관 기간이 짧았다. 현장에서 내내 카메라를 켜고 있다 만나는 환자가 아닌 이상 지난 사례에 대해 이미지, 영상, 음성을 구하는 게 어려웠다. 설령 자료를 구하더라도 환자나 가족들이 사용을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표류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로워했다. 악몽 같던 그날을 다시 마주볼 자신이 없다고 했다. 이런 사정으로 취재를 한참 진행하다 더 이상 응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어렵게 말을 꺼낸 사례자도 있었다.
병원에서 먹고 자며 취재를 했을 때 모습. 사례 섭외는 크게 두 가지 경로를 거쳤다. 구급차, 응급실, 수술실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환자를 만나거나, 제보를 통해 표류 사례를 접하거나. 후자의 경우 시청각 자료를 구하는 게 특히 어려웠다.
취재가 난관에 부딪히던 순간을 곱씹어볼수록 알겠다. 선뜻 이야기를 들려주고 취재에 기꺼이 응해주는 사람들을 만난 게 큰 행운이었다는 걸 말이다. 시리즈에 등장하는 취재원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말을 했다. 이런 일이 계속될까봐 걱정된다고. 다른 사람들이 같은 일을 겪을까봐 무섭다고. 결국 <표류> 시리즈는 커다란 고통 속에서도 가족이, 친구가, 이웃이 같은 일을 당하지 않기만을 바란 환자와 그 가족들의 선의에 빚지고 있다.
기사가 끝나도 이들의 삶은 계속된다. 취재하는 동안 표류 환자, 그 가족에게 진 빚에 보답하는 길은 이 끝나지 않는 이야기에 계속해 귀 기울이는 일이다. 또 수년째 같은 고통을 외면해온 정부와 정치권이 이번엔 제대로 된 응답을 내놓을지 지켜보는 일이다. 6기 히어로콘텐츠팀은 총 5회로 계획한 시리즈를 마치고 해단식을 가졌다. 아이러니하게도 해단식에서 나온 결심은 “끝까지 지켜보자는 것”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기사가 끝나도 이들의 삶은 계속된다. 취재하는 동안 표류 환자, 그 가족에게 진 빚에 보답하는 길은 이 끝나지 않는 이야기에 계속해 귀 기울이는 일이다. 또 수년째 같은 고통을 외면해온 정부와 정치권이 이번엔 제대로 된 응답을 내놓을지 지켜보는 일이다. 6기 히어로콘텐츠팀은 총 5회로 계획한 시리즈를 마치고 해단식을 가졌다. 아이러니하게도 해단식에서 나온 결심은 “끝까지 지켜보자는 것”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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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미 기자동아일보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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