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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외과 전공의 111명을 추적하다

다른 렌즈로 문제를 보다
이상환 기자|동아일보 사회부 2023-04-10 10:00:01
분명 의사가 부족한 건 맞긴 한데… 진부할 정도로 많이 나와서 모두가 아는 얘기.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라 꼭 써야 하지만, ‘또 그 얘기구나’ 싶은 그런 주제를 써야 했다. 수술실 의사 부족 문제다.

고민하다 결국 기존 기사들과는 다른 방식, 다른 렌즈로 문제를 들여다 보기로 했다. 그때 떠올린 게 한 기수를 전수 조사하는 것이었다. 전공의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을 의사들을 추적하고, 이들의 삶의 궤적을 파악해 졸업앨범 형식으로 정리하는 것.

문제는 신경외과 전공의는 한 기수만 해도 100명이 넘어간다. 누군지도 모를 100여 명의 의사들을 하나하나 추적하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신경외과 의사들이 속해 있는 대한뇌혈관외과학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게 지난해 12월 방재승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를 만났다. 학회에서 이사를 겸하고 있는 교수다. 평일에는 매일 같이 수술에 들어가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수술이 없는 토요일에 겨우 만날 수 있었다. 그 역시 힘이 들어 응급 수술이 많은 뇌혈관 파트를 떠나는 후배들에게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었다. 흔쾌히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여기서 취재가 끝난 건 아니었다. 학회에서도 100명이 넘는 의사들의 정보를 파악하는 데 2달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전공의를 시작한 지 10년도 넘은 이들이기에 정보가 없어 학회에서도 일일이 확인해야 했다. 처음 학회에서 준 자료에는 △근무지 △세부 전공 △전문의 과정을 한 병원 등의 정보가 나와 있었다. 한 면을 채울 기사로 쓰기에는 추가 취재가 필요했다.
1월 23일 충남 서산의료원에서 취재용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는 모습. 의료진들이 일하는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병원 응급실에서 먹고 자며 취재를 했다.1월 23일 충남 서산의료원에서 취재용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는 모습. 의료진들이 일하는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병원 응급실에서 먹고 자며 취재를 했다.
디테일의 힘
나는 기자치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디테일의 힘’을 의심하는 편이다. 한 줄의 디테일한 정보가 들어가기 위해선 수많은 발품을 팔아야 한다. 읽지 않는 시대에, 그저 한 줄로 소비되고 사라지는 디테일이 기사에서 어떤 힘을 가지는지 의심하곤 한다. 다만 이번만큼은 디테일이 힘을 가졌을 거라고 믿고 싶다.

팀원들과의 회의 끝에 △응급 수술 건수 △그만두고 싶다고 느낀 적 있는지 △개두술 가능 여부 등을 추가 취재하기로 했다. 이들을 인터뷰해 학회에서 받은 자료보다 더 세세한 디테일을 담고 싶어서다. 추가 취재해야 하는 대상은 2011년 신경외과 전공의를 시작한 111명 전원.

이 취재가 들어가던 즈음, 다른 파트 취재는 끝이 보이던 시기였다. 시간이 촉박해 서둘러야 했다. 걱정이 앞섰다. ‘그 많은 이들에게 일일이 다 언제 걸지, 남은 시간도 없는데… 또, 누군지도 모르는 기자가 전화를 걸었을 때 인터뷰에 응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못 버티고 떠난 과거를 들쑤시러 전화를 얼마나 달가워할까…’ 고민만 할 수 없었기에, 주말에도 나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래도 언제나 그렇듯 취재는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70명 넘는 의사들은 기꺼이 인터뷰에 응했다. 수술실을 떠나 개업한 의사들은 “비록 나는 떠났지만, 후배들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며 남았으면 한다”는 말도 덧붙이곤 했다.

지면 4회 기사는 이렇게 끝난다. “취재팀이 연락한 대학병원 응급 개두술 의사 9명 중 7명은 최근 1년 안에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의사가 그냥 힘든 게 아니라, 남아있는 의사들마저 떠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힘들 게 취재하지 않았다면 나오지 못했을 결론이다.
마지막으로
그래도 마지막 후기니까 이 정도는 적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기사가 나간 날 4회의 주인공인 이시운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에게 연락이 왔다. “주변에서 안부를 묻는 것 보니 기사가 잘 나간 것 같다”고. 이 교수에게 취재에 응해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보내면서 짧은 생각을 덧붙여 보냈다. “그렇게 기사가 나가도 뭐가 바뀔지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실제로 그 순간 든 생각이었다. 대책은 매번 표류하고, 표류 끝에 상처 입는 피해자는 반복될 것 같다는 강한 의심이 들었다. 그런데도 이 기사를 계기로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이 알게 된다면 작은 변화라고 생겼으면 싶다. 10년쯤 지나서 더 이상 표류하는 환자가 없어져서, 내가 틀렸으면 싶다. 만약 정말 그런 변화가 생긴다면 그건 힘들게 목소리를 내준 표류 환자들과 의료인들 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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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환 기자
이상환 기자|동아일보 사회부

주로 사건과 금융을 취재했습니다. 사건팀에선 부조리한 상황을, 금융팀에선 누군가의 욕심이 만든 돈의 흐름을 지켜봤습니다. 취재하다보니 세상엔 정답을 알 수 없는 문제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써도 될까, 항상 의심하며 취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