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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에게 전화하지 못한 이유

김태언 기자|동아일보 사회부 2024-07-08 10:00:01
4시간의 인터뷰를 마치고 짐을 챙기던 참이었다. 한 손으로는 동대구역으로 가는 길을 검색하며, 조금은 가볍게 말을 이었다.

“이렇게 인터뷰하시는 거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질문은 짧았는데, 답은 길었다.

가끔 뜨개질한 물건들을 가지고 프리마켓에 나간다고. 수선집에 틀어박혀 있다가 사람들 웃음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고. 그 기분을 가끔 떠올린다고. 며칠을 고민했는데 왜인지 기자님에게 말하고 나면 그때 그 기분이 들 것 같아서. 지금보단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어서 연락했다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저 다섯 줄의 말을 생각했다. 하루하루 얼마나 마음이 불안했을까. 아무한테도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는 이 사람은 대체 얼마나 외로웠던 걸까.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 1회의 주인공 강선주(48)와의 첫 만남이었다.
일하는 내내 불법사채업자들의 전화에 시달렸던 선주. 한 사람에게 4시간 만에 764통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일하는 내내 불법사채업자들의 전화에 시달렸던 선주. 한 사람에게 4시간 만에 764통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돌고 돌아 스토리텔링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에게 주어진 목표는 ‘킬러 팩트’를 발굴하는 것이었다. 이전 팀들이 스토리텔링을 우선순위에 뒀다면, 시즌2는 팩트 발굴에 더 힘써보자는 취지였다. 불법사채를 소재로 정하고, 초반에 주력한 건 사채왕 찾기였다. 불법사채를 다루면서 피해자 이야기를 꺼내는 게 뻔하다는 생각도 컸다. 하지만 사채왕을 쫓는 내내 팀 내에서 여러 의견이 오갔다.

처음부터 이 소재를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결론은 피해자의 스토리텔링 기사는 빠질 수 없다는 것. 가해자 취재에 집중하더라도 우리 기사가 궁극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곳은 피해자였다. 다만 큰 걸림돌이 있었다. 불법사채 피해자에 대한 심리적 반감이 컸다. 많은 구성원이 ‘도박이나 유흥 때문에 돈 빌리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답은 당사자들이 알고 있을 것이었다. 취재팀은 우선 피해자들을 만나기로 했다.

피해자를 섭외하는 법은 단순무식했다. 우리는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신고센터부터 금융 복지 관련 재단과 시민단체 등 총 52곳을 접촉했다. 취재 공문을 보내고, 기사의 취지를 몇 번이고 설명하면서 사방팔방으로 섭외를 부탁했다.

그중에는 한 온라인 카페도 있었다. 카페에서는 선주를 포함한 불법사채 피해자들이 업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취재팀은 이곳에 ‘제보를 기다린다’는 게시물을 올렸고, “인터뷰하겠다”는 답이 오기까지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피해자에게 전화하지 못한 이유
피해자들과의 통화는 기본이 1시간이었다. 질병, 실직, 교통사고…. 사채를 쓰게 된 배경은 바깥의 인상과는 달랐다. 더는 불법사채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만 볼 수 없었다. 그럼 이제 할 일은 명확했다. 더 자세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전화상으로 울분을 토하던 사람들이, 대면 인터뷰를 요청하면 난색을 보였다. 이유는 하나같이 똑같았다. 신분이 노출될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

몇몇 피해자들은 도중에 연락이 끊겼다. 하지만 계속 전화할 순 없었다. 휴대폰을 못 쓸 정도로 전화해 대는 추심에 떨던 사람들이었다. 인터뷰 일정을 정하다가 갑작스레 “고민을 더 해보겠다”는 피해자도 있었다. 결국 “다시 생각해보니 가정이 있어 나서기 힘들 것 같다”는 거절 문자를 받았다.

당황스러웠지만 이해가 갔다. 불법사채 피해자 기사에 어떤 댓글들이 달리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더욱이 서너 줄의 인용구가 아닌, 삶 전체를 드러내 보여야 하는 히어로콘텐츠팀 기사에 등장하는 건 상당한 부담이었을 것이다.

취재팀이 할 수 있는 건 몇 번의 설득과 기다림. 그 뒤로는 오로지 피해자들에게 달려있었다. 문득 우리는 피해자들의 용기를 빌어먹으며 지내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그 결심을 후회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지금 선주는
선주와는 4월 21일부터 6월 13일까지 수차례 만나고 통화했다. 마지막으로 만난 날, 선주는 작은 선물이라며 무언가를 건넸다. 직접 뜬 수세미였다. “제 이야기 들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라는 말과 함께였다. 헤어지고, 전화를 끊을 때마다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하던 말이었다.

채무정리는 다름 아닌 온라인 카페 속 피해자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대응법이라고 해봐야 다른 피해자들이 써준 경고 메시지를 업자들에게 보내고, 모르는 번호는 차단하는 것이었다. 딸의 휴대폰은 바꾸었고, 고소장도 재차 접수했다. 평판이 무너진 건 본인이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이렇게 말하면 조용히 끝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말 괜찮아졌냐’ 물으면, 사실 곧바로 답할 순 없다. 기사를 보고 기부를 희망하는 사람이 연락을 원한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선주의 첫 마디는 “혹시 업자는 아니겠지요?”였다. 언제 다시 시작될지 모르는 추심에 여전히 마음이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1회 보도가 나가고 “누가 사채 쓰라고 등 떠밀었냐” “자업자득이다”라는 댓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아주 틀린 말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40만 원을 빌린 게 죄라면, 그 벌은 어느 정도여야 할까. 어느 하루에 764통의 전화가 오는 건, “내가 니 딸 죽인다”는 말에 퍼뜩 잠에서 깨는 건. 40만 원의 대가라 부를 수 있을까. 정말로 잘 모르겠다.
6월 13일, 마지막으로 직접 만난 날 선주가 준 선물. 식빵 모양 수세미다.6월 13일, 마지막으로 직접 만난 날 선주가 준 선물. 식빵 모양 수세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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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언 기자|동아일보 사회부

사회·문화부 기자로 일하며 진솔한 인터뷰에 대한 욕심이 생깁니다. 여전히 진심에는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