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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시공, 피해자는 ‘함구’할 수밖에 없었다

부실시공, 피해자가 오히려 입을 다물어야 했다.
김수현 기자|동아일보 경제부 2025-02-10 17:24:33
필자인 히어로콘텐츠팀 김수현 기자가 지난해 11월 말 제보자와의 통화를 시도하고 있다.필자인 히어로콘텐츠팀 김수현 기자가 지난해 11월 말 제보자와의 통화를 시도하고 있다.
‘부실시공의 문제점’,

지난해 7월, ‘7글자 아이템’만 정해놓고 갈피를 잡지 못하던 때 한 인터넷 한 카페에 제보를 바란다는 글을 올렸다.

“아파트 하자 때문에 안전 불안을 겪는 입주민을 찾고 있습니다.”

3시간도 지나지 않아 제보 쪽지들이 여럿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지하수가 역류하고 있습니다” “장마철만 되면 엘리베이터가 멈춥니다” “부엌 배관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한 달에 한 번꼴로 누수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부실시공 하자로 고통받는 입주민들의 아우성이었다.

쪽지에 적힌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통상적인 취재 절차를 따라 제보자의 이름, 직업과 나이를 물었다. “그리고, 어디 아파트신가요?” 제보자들은 대부분 이 과정에서 멈칫하며 되물었다. “저… 기자님… 제 이름이나 아파트 단지명이 보도에 나올까요? 제가 제보했다는 사실이 혹시라도 다른 입주민들한테 알려지면 절대 안 돼요. 집값 떨어진다고 다들 난리날 거에요”
“이런 집인데 과연 안전할까요” 말 못 하는 속사정
지난해 8월 히어로팀이 네이버 모 카페에 올린 아파트 부실시공 제보 요청 글.지난해 8월 히어로팀이 네이버 모 카페에 올린 아파트 부실시공 제보 요청 글.
제보자들이 아파트명, 신상 공개를 꺼리다보니 7개월에 걸친 히어로팀의 취재 역시 그 어느 때보다 ‘극비리’에 진행됐다. ‘아내한테도 제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며 한밤 중 집 밖에서 전화해온 제보자, 엘리베이터 하자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이 없는 꼭두새벽까지 기다렸다는 제보자,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척 관리사무소를 ‘뚫고’ 하자 관련 자료를 구해준 제보자도 있었다. 모두 ‘우리 집은 안전할까’라는 두려움 속에 용기를 내준 사람들이었다.

취재가 실패할 때도 있었다. “도저히 설득할 수 없었다”며 돌연 취재를 거부한 제보자만 해도 열 손가락으로 세기 어렵다. 그럴 땐 “제가 직접 말씀드릴 테니 아파트 입주자협의회장님 번호만이라도 알려주십쇼” 읍소하거나 손 편지 써서 전달하기도 했다.
히어로팀이 아파트 부실시공 관련 제보를 받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모 아파트 입주민대표협의회 측과 접촉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히어로팀이 아파트 부실시공 관련 제보를 받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모 아파트 입주민대표협의회 측과 접촉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끝끝내 연락할 방도가 없으면 아파트 입주민 전용 카페에 들어가 가입란에 구구절절 사정을 설명했다. 

“안녕하세요. 동아일보 김수현 기자입니다. 현재 저희는 아파트 주거 안전에 대해 취재하고 있습니다. 만약 선생님께서 용기를 내주셔서 하자에 대해 제보해 주신다면...”
결국 돌고 돌아 문제는 집값
수많은 거절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사례가 하나 있다. 건설사의 파산으로 하자 소송에서 승소한 후에도 보상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충청권 A 아파트 단지의 이야기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내려가, 각 동 대표 어르신들을 만나 한 시간에 걸쳐 설득했다.

주민들은 지역명과 아파트 이름, 입주민 이름, 그리고 구체적으로 무슨 하자인지를 보도에 절대 언급하지 않는 조건으로 기사화를 허락했다. 하지만 이런 조건으로는 도저히 기사를 쓸 수 없었다. 히어로팀은 거의 포기하는 심정으로 회의를 마쳤다. 아쉬운 마음에 아파트 정문 앞에서 발걸음을 서성일 때 한 동대표께서 다가와 말을 걸었다.

“기자님께는 너무 죄송하지만, 집값은 한 번 떨어지면 복구가 안 돼요. 옛날에 저기, ○○아파트 알죠? 거기도 예전에 누수가 심각하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10년째 집값이 그대로라니까요.”
부실시공 막을 수 있는 건 결국 ‘그 집에 사는 사람들’
7개월간의 취재를 통해 느낀 것은, 시공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입주민’이라는 것이다.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 2화 기사에 등장한 경기 한 아파트의 입주민대표협의회 회장 이동민 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직접 하자를 발견하고, 시공사는 물론 국토부에게도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한 덕분에 시공사가 직접 나서 보강공사를 서둘렀다.

국토부는 히어로팀 보도 이후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입주민이 지자체에 직접 문의하면 점검업체가 작성한 현장 안전진단 보고서를 확인할 수 있다”고 전했다. 지자체가 당장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요청을 통해 언제든지 받아볼 수 있게 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외부인’인 기자는 자료에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파트에 살고 있는 입주민이라면 누구나 ‘내 집’이 과연 안전한 지 확인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누락’ 시리즈를 읽고서 과연 ‘나의 아파트는 안녕한가’ 궁금해진다면 관할 지자체를 방문해 보고서를 확인해는 것도 방법이다. 아파트 부실시공 실시공 제보는 이메일 newsoo@donga.com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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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23~01.27·히어로콘텐츠 9기·
김수현 기자
김수현 기자|동아일보 경제부

국제부·사회부에서 일했습니다. 올바른 기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