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이야기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
Part 3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소방관이 구조한 국민은 107만388명이다.
위급한 상황에 놓인 국민을 구하다 대신 목숨을 잃은 소방관도 있다.
허승민 소방관은 2016년 5월 강원 태백시의 연립주택 지붕이 강풍에 날아가 도로에 떨어졌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도로변에 떨어진 지붕 구조물을 제거하던 중 강풍이 이어지며 옥상에 남아 있던 강판이 허 소방관의 머리로 떨어지면서 순직했다.
이영욱 소방관은 2017년 9월 강원 강릉시의 오래된 목조 건물 석란정에 불이 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불을 끈 후 복귀했지만 이튿날 새벽 4시경 불이 다시 붙었다는 신고에 두 번째로 출동했다. 화재 진압 중 무너진 건물 잔해가 그를 덮쳤다.
이호현 소방관은 2017년 9월 석란정 화재 현장에 팀장인 이영욱 소방관과 함께 출동했다가 사고를 당했다. 두 사람은 18분 만에 구조됐지만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김국환 소방관은 2020년 7월 전남 구례군 지리산에서 물놀이를 하던 피서객을 구하려 계곡에 뛰어들었다가 급류에 휩쓸려 순직했다.
박단비 소방관은 2019년 10월 독도에서 응급환자를 이송하다가 헬기가 바다로 추락해 순직했다.
배혁 소방관은 2019년 10월 독도에서 응급환자를 이송하다가 헬기가 바다로 추락해 순직했다.
미로 같은 물류창고에서 불을 끄다가 쓰러졌다. 계곡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다가 거센 물살에 휩쓸려 순직했다. 응급 헬기로 위급 환자를 이송하다가 추락했다. 107만여 명을 구조하는 동안 소방관 44명이 순직했다.
위급한 현장에서 더 많은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무기력감. 옆에 있는 동료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자신도 언제 죽거나 다칠지 모른다는 불안감. 극심한 스트레스와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은 소방관을 무겁게 짓누른다.
같은 기간 100명이 넘는 소방관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화재진압, 구조구급 활동을 하다 세상을 떠난 순직 소방관보다 2.4배 많다.
소방관이 출동하는 현장은 대부분 위험한 곳이다. 불을 끄다 화상을 입거나 무너진 잔해 탓에 뼈가 부러질 수도 있다. 또 유독가스 탓에 난치병에 걸릴 수도 있다.
소방관은 자신이 공무 중 다치거나 병이 생겼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야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같은 기간 공무 중 부상(공상)이 인정된 소방관은 6000명이 넘는다. 공무 중 부상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한 소방관은 제외된 숫자다. 현장에서 다치거나 질병이 생긴 소방관이 통계 숫자보다 더 많다는 뜻이다.
같은 기간 소방관의 도움으로 구조된 국민의 수다.
같은 기간 소방관의 도움으로 구조된 국민의 수다.
1983년부터 2022년까지 40년간, 소방관들에게 0은 도달하고 싶어도 도달하지 못한 숫자다. 1983년부터 매년 1명 이상의 소방관이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려다 세상을 떠났다. 순직 소방관이 1명도 없던 해는 1982년이 마지막이다.
소방관은 위급한 국민들을 구조하고, 돕기 위해 출동하는 것이거든요. 소방관이 어려움에 빠지면, 국민들도 위험해지는 거예요.
-정은애 전 전국소방노동조합 위원장
대전 현충원에 있는 소방 공무원 묘역에 올 때마다 묘비가 늘어나 있어요. 제발 늘어나지 말라고 기도해 봐도, 매년 순직하시는 소방관이 생겨요. 그걸 볼 때마다 눈물이 나죠.
-고 허승민 강원 태백소방서 소방관의 아내 박현숙 씨
현숙의 남편 승민이 강풍 피해 현장에서 구조 활동 중 다쳐 세상을 떠난 지 6년이 흘렀다. 그가 떠난 뒤에도 24명의 소방관이 화재, 구조, 구급 현장에서 다른 이를 위해 헌신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소방관은 목숨이 위험하고 다칠 것을 알면서도 가장 먼저 현장에 뛰어든다. 그런 소방관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가족들은 늘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산화’는 세상을 떠난 소방관과,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산화,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