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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기사가 디지털이라는 옷을 입다

어떤 기사건 전달력이 관건
이기욱 기자|동아일보 사회부 2022-08-19 09:00:01
“어려울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가족이 될 수도 있지만 위급할 때는 또 저희 소방관들을 가장 먼저, 가족보다 먼저 떠올리시잖아요. 이런 것들 때문에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당신이 119를 누르는 순간>을 취재하면서 한 소방관에게 들었던 말이다. 화재, 붕괴, 수해 등 위급한 재난 현장에는 항상 소방관이 있다. 쳐다보기만 해도 아찔한, 다가가기 조차 힘든 그런 현장이다. 매번 재난 현장을 취재할 때마다 서슴없이 그 안으로 들어가는 소방관은 어떤 마음일까 의문이 종종 들곤 했다. 그리고 그런 현장에는 대부분 순직자가 발생했다.

주제를 선정한 이후 취재팀은 소방, 경찰, 군인 순직자 30여 명을 대상으로 그들의 유족에게 연락했다. <산화,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 취재를 하며 만난 유족들, 친구, 동료들에게 들은 순직자들은 누구보다 열심이었고 자신의 직업을 사랑했다. 문득 이들이 순직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지면의 문법에서 벗어나서
지면에 실릴 기사 외에 이러한 사명감을 가진 이들이 왜 순직해야 하는지, 그 근무환경을 보여주자는 아이디어가 제시됐다. 소방관이 밤낮없이 일하고 출동을 대기한다는 건 많이 알려진 사실이었다. 당연히 머릿속에 의문이 들었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 아닌가?’

기획자인 위은지 기자는 글로 쓰면 그럴 테지만, 전달 방식을 달리하면 괜찮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결국 이걸 어떻게 차별화해서 보여주느냐가 관건이었다. 그 방식이 무엇일지,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했다. 지면의 문법에 적응해버린 신문기자라, 뻔한 내용을 어떻게 해야 지면과 다르게 보여줄 수 있는지 고민할 재량은 부족했다. 그래서 기획에 맞춰 그 재료들을 하나씩 갖춰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음성, 사진, 영상 등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러한 재료들은 소방서라는 현장에 있었다. 하지만 섭외부터 난관이었다. 소방관들이 어떤 환경에서 근무하는지, 그 환경에서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일이 술술 풀릴 줄 알았다. 누구나 직장에 대한 불만은 있고, 불만은 남들과 나눠야 제 맛이니까. 하지만 역시나 코로나가 문제였다.
<당신이 119를 누르는 순간>에는 스크롤을 내리면 소방서에서 소방차들이 한 대씩 나가며 관련 설명이 화면 위로 등장하는 부분이 있다. 신고가 접수된 이후 소방차가 차고지에서 탈출하기까지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지를 보여주는 게 목표였다. 원래는 대기하던 소방관들이 신고가 접수된 이후 차에 탑승해서 현장에 도착하는 모든 과정을 전부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장면을 촬영할 수 있는 소방서가 필요했다.

소방서 섭외에 나섰던 7월 초. 잠잠하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다시금 활개치던 시기였다. 사회필수인력이라는 점에서 소방관들의 안전은 중요한 요소였다. 역시나 소방본부 차원에서 동행 취재를 전부 금지했다. 최대한 타협을 봐야 했다. 소방관과의 접촉은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향으로. 차고지에 카메라만 두고 소방관들과는 접촉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첫 소방서가 섭외됐다. 종로소방서였다.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그늘이 없는 소방서 차고지 앞에 카메라를 설치해두고 기다렸다. 시간은 자꾸 흐르는데 신고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소방관 업무 중 출동이 많아 힘들다는 구급대원들조차 출동을 좀처럼 하지 않았다. 더위에 지쳐 날을 잘못 잡은 건지, 소방서를 잘못 고른 건지 판단조차 어려워질 때쯤 포기하고 돌아왔다.

두 번째로 영등포소방서를 방문했다. 지역 특성상 적어도 매일 한 건은 화재 신고가 접수되는 곳이었다. 희망에 부풀어 아침부터 소방서를 찾았다. 기자를 맞이한 소방서 직원도 촬영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오후 4시쯤 됐을까,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일부러 연출 장면을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세 번째로 방문한 구로소방서에서야 영상을 찍을 수 있었다. 새삼 대한민국이 그래도 안전한 나라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신문기사는 전화통화로 취재한 내용을 글로 적을 수 있었지만, 이걸 영상이나 음성 등으로 보여주려면 기존의 취재와는 달라야 했다. 특히 <당신이 119를 누르는 순간>에는 소방관 음성이 삽입됐다. 직접 대면해 양질의 음성을 녹음하는 것부터 신문기자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성공적인 취재를 위해서는 취재원의 말에 최대한 반응해줘야 한다. 그래서 어절 사이사이, 단어 사이사이에도 ‘네’, ‘그렇죠’ 등의 추임새를 넣는 게 이미 몸에 배어버렸다. 막상 음성을 녹음하려니 그 습관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한창 취재를 진행하다가 아차 싶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기자의 목소리도 함께 녹음된 뒤였다. 양해를 구하고 처음부터 녹음을 시작했다. 추임새의 자리는 눈빛과 끄덕임으로 대체했다.

총 세 명의 소방관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의 경력이 녹아있는 진솔한 녹음을 얻을 수 있었다. 모든 재료들은 갖춰졌다. 이제는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이를 어떻게 구현하는지 기다림만이 남아있었다.
아무리 좋은 기사도 닿지 않으면 무용지물
‘훌륭하다’, ‘레전드다’. <당신이 119를 누른 순간>이 출고된 이후 기자의 지인들에게 하나 둘 연락이 왔다. 뻔한 소재가 어떻게 새롭게 탈바꿈하는지를 볼 수 있었다. 소방서에서 영상 촬영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아 고생했던 것을 빼면, 비교적 그렇게 품을 많이 들인 취재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가진 전달력은 뛰어났다. 소방관의 음성은 보는 이의 귀에 꽂힐만한 것들이었고, 영상과 그래픽은 설명 텍스트와 적절하게 배치되며 보는 이의 이해를 도왔다. 스크롤을 내릴수록 ‘이걸 어떻게 이렇게 구현했을까’ 하는 감탄이 이어졌다. 2.6초에 한 번씩 신고가 접수된다는 내용을 표현한 대목은, 글로 쓴 기사로는 절대 보여줄 수 없는 내용이었다.

<당신이 119를 누른 순간>을 보며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이렇게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 콘텐츠로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면 기사만 써왔다면 꿈꾸기 어려웠을 일이다. 아무리 좋은 기사도 독자에게 닿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경험은 기자에게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계기가 됐다. 이제 코딩책을 펼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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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욱 기자
이기욱 기자|동아일보 사회부

읽는 도중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는 게 활자의 매력이라고 믿습니다. 그 매력에 빠져 글을 쓰는 기자가 돼 문화, 사회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아무 때나 읽어도 좋은, 읽으면서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런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