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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나이가 든다
‘치매머니 사냥’ 추적기
전혜진 기자
2026-01-02 17:55:18
취재가 끝났지만, 아직도 귓가에 쟁쟁한 목소리가 있다.
‘치매머니 사냥’을 주제로 정하고, 취재에 착수한 지 석 달. 취재팀의 가장 큰 고민은 ‘주인공 찾기’였다. 소외된 이웃, 숨은 영웅을 다루는 히어로콘텐츠의 취지에 맞게 기사의 내러티브를 살려보자고 의견을 모았지만, 걸맞은 주인공은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다.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심정으로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주인공을 찾아 헤맸다.
그러던 10월 15일. 모르는 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자는 치매 아버지를 둔 아들이었다. 아버지가 지인에게 사기를 당했는데, 취재팀이 보낸 온라인 카페 쪽지를 받고 연락했다고 했다. 이미 비슷한 연락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큰 소득 없이 끝났던 터라 기대는 없었다. 가볍게 언제 일어난 일인지를 물었다.
“지난해 석가탄신일이요.”
짧고 정확했다. 그 한마디에 ‘이분이다’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리고 정확히 두 달 뒤, 그의 이야기는 <헌트: 치매 머니 사냥>의 1회가 됐다.
‘치매머니 사냥’을 주제로 정하고, 취재에 착수한 지 석 달. 취재팀의 가장 큰 고민은 ‘주인공 찾기’였다. 소외된 이웃, 숨은 영웅을 다루는 히어로콘텐츠의 취지에 맞게 기사의 내러티브를 살려보자고 의견을 모았지만, 걸맞은 주인공은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다.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심정으로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주인공을 찾아 헤맸다.
그러던 10월 15일. 모르는 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자는 치매 아버지를 둔 아들이었다. 아버지가 지인에게 사기를 당했는데, 취재팀이 보낸 온라인 카페 쪽지를 받고 연락했다고 했다. 이미 비슷한 연락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큰 소득 없이 끝났던 터라 기대는 없었다. 가볍게 언제 일어난 일인지를 물었다.
“지난해 석가탄신일이요.”
짧고 정확했다. 그 한마디에 ‘이분이다’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리고 정확히 두 달 뒤, 그의 이야기는 <헌트: 치매 머니 사냥>의 1회가 됐다.
돌발상황에도 통했던 진심
10월 26일 경기 화성의 한 요양원에서 ‘헌트: 치매 머니 사냥’의 주인공 강대용 씨(가운데)를 처음 만났다. 면회실에서 아들(왼쪽)과 필담을 나누는 모습을 필자가 바라보고 있다. 이틀 뒤 아버지 대용 씨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취재하다 보면 대부분의 취재원들은 자신이 겪은 일이어도 정확한 시점을 기억하지 못한다. 기껏해야 ‘작년 이맘때’ ‘두세 달 전쯤’ 정도로 설명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러나 강성식 씨는 달랐다. 첫 통화에서부터 사건이 일어난 날짜, 인지한 시점, 진행 상황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미 1년도 더 지난 일을 이토록 자세히 기억하고 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분노와 슬픔이 동시에 느껴지는 그의 목소리도 그러한 생각을 더했다.
그렇게 몇 차례의 통화와 만남을 거쳐 그의 아버지가 있는 경기 화성의 요양원을 찾았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고향 땅 800평을 팔아넘기고 잠적한 ‘고향 친구’를 여전히 믿는 치매 노인과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 취재팀은 다음 주에 한 번 더 오겠다 약속하며 2시간의 인터뷰를 마치고 요양원을 나섰다.
그렇게 몇 차례의 통화와 만남을 거쳐 그의 아버지가 있는 경기 화성의 요양원을 찾았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고향 땅 800평을 팔아넘기고 잠적한 ‘고향 친구’를 여전히 믿는 치매 노인과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 취재팀은 다음 주에 한 번 더 오겠다 약속하며 2시간의 인터뷰를 마치고 요양원을 나섰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이틀 뒤 강 씨로부터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현실감이 없었다. 불과 며칠 전 면회실 탁자에 놓인 과일, 과자, 두유 등을 드시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만큼 위중한 상태로 보이지는 않았던 터라 당혹스러웠다.
노트북을 덮고 곧장 경기 안산의 빈소로 향했다. 빈소에서 만난 강 씨의 눈 주위가 붉었다. 영정사진 속 대용 씨는 이틀 전 요양원에서 간식을 먹던 때처럼 해사하게 웃고 있었다. 조문을 마치고 복잡한 마음으로 빈소를 나서려는데 강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자님도 열심히 준비하셨을 텐데, 저희 아버지가 갑자기 이렇게 되셔서 어떡해요.” 개의치 마시라 황급히 손을 내젓는데 강 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라도 끝까지 협조할게요.”
그간의 진심이 통했던 걸까. 하나뿐인 아버지를 잃은 슬픔 속에서도 취재에 끝까지 응하겠다는 강 씨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길은 또다시 진심으로 취재에 임하는 것뿐이었다. 당장의 부채감을 뒤로 하고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는 치매 노인 대신 아들 강 씨에게 묻고 또 물었다. 히어로콘텐츠의 핵심 중 하나인 ‘실명의 취재원’을 설득하기 위해 기존 히어로콘텐츠 지면을 모두 인쇄해 파일로 만들어 보여드리기도 했다. 서울에서 4시간 떨어진 그의 고향에서 강 씨를 만나 “실명을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을 땐 또 한 번 진심이 통했다고 느꼈다.
노트북을 덮고 곧장 경기 안산의 빈소로 향했다. 빈소에서 만난 강 씨의 눈 주위가 붉었다. 영정사진 속 대용 씨는 이틀 전 요양원에서 간식을 먹던 때처럼 해사하게 웃고 있었다. 조문을 마치고 복잡한 마음으로 빈소를 나서려는데 강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자님도 열심히 준비하셨을 텐데, 저희 아버지가 갑자기 이렇게 되셔서 어떡해요.” 개의치 마시라 황급히 손을 내젓는데 강 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라도 끝까지 협조할게요.”
그간의 진심이 통했던 걸까. 하나뿐인 아버지를 잃은 슬픔 속에서도 취재에 끝까지 응하겠다는 강 씨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길은 또다시 진심으로 취재에 임하는 것뿐이었다. 당장의 부채감을 뒤로 하고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는 치매 노인 대신 아들 강 씨에게 묻고 또 물었다. 히어로콘텐츠의 핵심 중 하나인 ‘실명의 취재원’을 설득하기 위해 기존 히어로콘텐츠 지면을 모두 인쇄해 파일로 만들어 보여드리기도 했다. 서울에서 4시간 떨어진 그의 고향에서 강 씨를 만나 “실명을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을 땐 또 한 번 진심이 통했다고 느꼈다.
11월 28일 강 씨의 고향을 찾아 마지막 인터뷰를 했다. 아버지의 팔려버린 논 위에서, 강 씨는 “실명을 써도 좋다”는 허락을 했다.결국은 사람 이야기
11월 19일 ‘우리요양원’에서 필자가 치매노인 최명자(가명) 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곳의 풍경은 치매노인을 향한 경제적 학대에 무감각한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었다.‘요양원 24시’를 다룬 <3회-홀로 남겨진 노인들>은 독자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얻었다. 취재팀은 치매에 걸린 이후 경제권을 박탈당하고 요양원에 방치된 노인들을 조명하고자 현장을 찾았다.
처음 가 본 요양원 병실은 생각 이상으로 단조로웠다. 거동이 불가능한 와상환자들에게 최대치의 움직임이라고는 전동침대의 등받이를 올리고 내리는 정도였다. 그마저도 스스로 몸을 일으켜 세우지 못해 요양보호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숨소리만 들리는 병실에서 특이사항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어떻게든 현장감을 살려야 했다. 미닫이문을 열자 일제히 쏠리던 눈동자들, 요양보호사의 분주한 발걸음,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 ‘기저귀 타임’을 알리는 냄새까지. 온 감각을 동원해 미약하게나마 뛰고 있는 심장 같은 요양원의 분위기를 전달하고자 했다.
치매 노인을 인터뷰하는 일은 또 다른 난관이었다. 이번 시리즈를 취재하며 가장 어려웠던 부분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건의 경위는 당사자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하지만, ‘치매머니 사냥’의 경우 그것이 불가능했다. 사건 당사자인 치매 노인의 기억은 흐릿했고, 어떤 경우 본인이 피해자가 된 줄도 몰랐다. 결국 가족, 지인, 요양원 관계자 등 주변인의 증언을 통해 당사자의 인생을 퍼즐 맞춰야 했다.
우리요양원 7층의 세 노인의 삶 역시 그렇게 재구성됐다. ‘현실적이고 서글프다’ ‘기사 내용이 남 일 같지 않다’ ‘요양원에서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한참을 울었다’라는 반응이 뒤따랐다. 개인의 사연을 사회적 맥락으로 확대하는 일.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사람 이야기였다.
처음 가 본 요양원 병실은 생각 이상으로 단조로웠다. 거동이 불가능한 와상환자들에게 최대치의 움직임이라고는 전동침대의 등받이를 올리고 내리는 정도였다. 그마저도 스스로 몸을 일으켜 세우지 못해 요양보호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숨소리만 들리는 병실에서 특이사항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어떻게든 현장감을 살려야 했다. 미닫이문을 열자 일제히 쏠리던 눈동자들, 요양보호사의 분주한 발걸음,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 ‘기저귀 타임’을 알리는 냄새까지. 온 감각을 동원해 미약하게나마 뛰고 있는 심장 같은 요양원의 분위기를 전달하고자 했다.
치매 노인을 인터뷰하는 일은 또 다른 난관이었다. 이번 시리즈를 취재하며 가장 어려웠던 부분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건의 경위는 당사자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하지만, ‘치매머니 사냥’의 경우 그것이 불가능했다. 사건 당사자인 치매 노인의 기억은 흐릿했고, 어떤 경우 본인이 피해자가 된 줄도 몰랐다. 결국 가족, 지인, 요양원 관계자 등 주변인의 증언을 통해 당사자의 인생을 퍼즐 맞춰야 했다.
우리요양원 7층의 세 노인의 삶 역시 그렇게 재구성됐다. ‘현실적이고 서글프다’ ‘기사 내용이 남 일 같지 않다’ ‘요양원에서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한참을 울었다’라는 반응이 뒤따랐다. 개인의 사연을 사회적 맥락으로 확대하는 일.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사람 이야기였다.
미리 본 우리의 미래
11월 6일 일본 사이타마현 한노(飯能)시의 성년후견지원센터에서 필자가 일본의 후견제도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취재팀은 치매머니 사냥의 해결책으로 ‘후견제도 활성화’를 꼽았다. 특히 취재 초반부터 모든 전문가가 입을 모아 강조한 ‘임의후견’에 주목했다. 이에 후견 제도가 잘 정착된 해외 국가를 찾아 한국의 후견제도가 갈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사실 일본 역시 서양에 비하면 ‘후견 선진국’은 아니다. 2000년 성년후견제도를 도입했지만 활성화가 더뎠고, 임의후견 역시 일본 내에서 이용되는 모든 후견 유형 중 가장 낮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취재팀은 한국과 법체계가 비슷하고 정서적, 문화적으로 유사성이 짙은 일본을 택했다. 우리보다 20년 먼저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이웃 국가에서 배울 점이 있을 것이라 봤다.
일본에서 성년후견전문 변호사, 법무사, 사회복지사, 교수 등을 만나 물었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자국이 겪은 시행착오를 설명하며 대안을 제시했다. 지자체가 협력하는 후견 시스템과 이웃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후견인, 그리고 임의후견 활성화를 위해 기울이고 있는 노력까지. 한국이 나아갈 방향에도 충분히 참고가 될 만했다.
이번 시리즈가 던지는 메시지는 간단했다. 우리는 모두 나이가 든다. 고령화 사회에서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문제를 개인의 부담으로만 남겨둬서는 안 된다. <헌트: 치매 머니 사냥>을 통해 우리의 문제의식에 작은 공감대라도 만들어졌기를 바란다.
사실 일본 역시 서양에 비하면 ‘후견 선진국’은 아니다. 2000년 성년후견제도를 도입했지만 활성화가 더뎠고, 임의후견 역시 일본 내에서 이용되는 모든 후견 유형 중 가장 낮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취재팀은 한국과 법체계가 비슷하고 정서적, 문화적으로 유사성이 짙은 일본을 택했다. 우리보다 20년 먼저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이웃 국가에서 배울 점이 있을 것이라 봤다.
일본에서 성년후견전문 변호사, 법무사, 사회복지사, 교수 등을 만나 물었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자국이 겪은 시행착오를 설명하며 대안을 제시했다. 지자체가 협력하는 후견 시스템과 이웃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후견인, 그리고 임의후견 활성화를 위해 기울이고 있는 노력까지. 한국이 나아갈 방향에도 충분히 참고가 될 만했다.
이번 시리즈가 던지는 메시지는 간단했다. 우리는 모두 나이가 든다. 고령화 사회에서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문제를 개인의 부담으로만 남겨둬서는 안 된다. <헌트: 치매 머니 사냥>을 통해 우리의 문제의식에 작은 공감대라도 만들어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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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트: 치매 머니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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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5~2025.12.18·히어로콘텐츠 1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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