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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 시대의 언론사와 디자이너

대AI 시대, 언론사 디자이너가 AI와 선을 그어가는 방법
정시은 UI/UX 디자이너 2026-01-13 14:34:53
히어로 콘텐츠 11기의 주제는 '치매머니 사냥'이었다. 치매에 걸린 노인의 흐릿해진 기억과 판단력을 노려 재산을 갈취하는 범죄를 다룬 기획이다.

취재 속 피해자 강대용 씨는 평생 가족을 위해 일해왔다. 하지만 치매가 찾아온 뒤 그의 삶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가해자 박영길은 요양원에서 나와 고향에서 살게 해주겠다고 접근해, 고향 땅을 판 돈 4,200만 원을 자신의 통장으로 송금받고 잠적했다. 돈만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기억과 삶의 기반 자체가 함께 사라졌다.

인터랙티브 기획의 첫 단계는 취재 내용을 분류하는 일이다. 보통 선택지는 두 가지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내러티브 형식, 혹은 사건과 데이터를 정리해 보여주는 하드팩트 형식. 이번 '치매머니 사냥'은 내러티브 방식을 택했다.
치매 노인의 재산을 빼앗는 헌터 피해의 통계 사례 데이터를 활용한 시각화로 금전 피해를 주제로 작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취재기자와 인터랙티브 팀의 몇번의 회의를 거쳐 이번 주제의 본질은 숫자보다, 노년까지 일궈온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기의 심각성에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한 사람의 인생을 간접 경험하는 방식으로 이 본질을 보여주는 내러티브 형식을 택했다.
붉은 실로 '기억'과 '빼앗김'을 시각화하다
스토리 중심이라는 방향을 정한 뒤, 핵심 키워드를 정리했다. 치매로 인해 사라지는 '기억', 그리고 그 기억과 삶을 '빼앗는' 헌터. 이 개념을 독자가 직관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인터랙션으로 풀어내야 했다.

여러 아이디어가 오갔다. 피해자의 1인칭 시점으로 인지 부조화를 표현하는 방식도 검토했지만, 이전에도 자주 사용했던 접근이었다. 주 독자층이 40·50대인 매체 특성상, 조작이 복잡하거나 낯선 인터랙션도 부담스러웠다.

다시 취재 자료를 읽던 중, 피해자의 아들 인터뷰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그 땅은 돈이기도 하지만, 평생 가족을 위해 일하신 아버지의 인생이었다"는 말이었다. 이 문장에서 '치매 아버지의 빼앗긴 인생'이라는 키워드를 시각화할 방법을 고민했다. 평생 쌓아온 것이 조금씩 무너지는 과정을 독자가 체감하려면, 점진적으로 사라지는 시각적 메타포가 필요했다. 여러 안을 검토한 끝에 '실이 풀리듯 삶이 해체된다'는 개념에 도달했다.

최종적으로 선택한 방식은 스크롤 트리거를 활용한 모션 인터랙션이었다. 독자가 화면을 밀어 올리면, 스크롤 이벤트에 따라 붉은 실로 표현된 피해자의 일러스트가 점점 사라지는 구조다. 독자가 직접 스크롤하며 삶이 무너지는 과정을 체감하도록 설계했다.
자료가 없는 사건을 시각화하는 방법
시각화 방식을 정했지만, 가장 어려운 문제가 남아 있었다. 이미지 그 자체였다.
작업 시작 단계에서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취재를 통해 확보한 자료사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파킨슨을 앓다 치매가 심해진 피해자의 가족에게 전달받은 사진은 '너무 사실적으로 치매 노인의 일상을 담고 있었다.' 가족의 동의를 받아 전달받은 사진이었지만, 그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특히 치매머니와 같이 피해자와 유족이 있는 사건이라면, 한 사람의 삶이 콘텐츠화되는 과정에서 언제나 '예의의 선'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사실 이 문제는 히어로 콘텐츠를 진행하며 꽤 자주 발생하는 일이다. '사실적'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거나 그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각 미디어를 중심으로 하는 인터랙티브 콘텐츠에서는 사건의 지역, 실제 건물, 가해자나 피해자의 실제 사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지양한다. 프로젝트를 작업하다 보면 글의 톤 조절부터 시작해서, 특히 사진 자료의 사용은 언제나 가장 예민한 문제로 남는다.

피해자 강대용 씨의 젊은 시절 사진이나 일하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았다. 가해자 박영길의 사진 역시 확보할 수 없었다.

언론사 디자이너에게 이런 상황은 낯설지 않다. 심층취재 나 사회적 이슈를 다루다 보면, 자료가 없거나 법적·윤리적 이유로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특히 치매를 앓던 피해자의 실제 사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유족의 동의가 있더라도 조심스러운 선택이었다. 독자가 받을 감정적 충격이 사건의 본질을 가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여기에 일정이라는 현실적인 조건이 더해졌다. 제작 기간은 2주 남짓이었다. 전통적인 이미지 합성 방식으로 접근했다면, 지금과 같은 시각화는 시간과 리소스 측면에서 시도조차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AI는 선택지라기보다 현실적인 대안에 가까웠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의 과거 모습을 구현하면서도, 실제 인물을 특정하거나 왜곡하지 않아야 했다. 이미지 가공이 필수적인 팀의 업무 특성상, 많은 디자인 리소스가 이미지 가공에 소요되고 있었다. AI 이미지 생성 기술의 보편화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작업은 텍스트 스토리보드를 정리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피해자의 인생에서 꼭 필요한 장면을 추려내고, 각 장면에 어떤 이미지가 필요한지 명확히 했다. 유족의 동의를 받아 실제 얼굴 사진을 참고해 피해자를 닮은 AI 이미지를 생성했고, 가해자는 사진 자료가 없어 AI로만 표현했다.

이렇게 만든 이미지를 하단 레이어에 두고, 상단에는 붉은 실 일러스트를 겹쳤다. 독자가 화면을 스크롤하면 실이 풀리며 그 아래의 이미지가 드러나는 구조다. AI는 이야기의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독자가 사건을 따라가는 데 필요한 배경으로만 기능하도록 설계했다.
작업을 통해 세워진 언론사의 AI 사용 가이드라인
AI를 실제 프로젝트의 소스로 사용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팀 내부에서는 자연스럽게 기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2025년 현재, 인터랙티브 콘텐츠와 AI는 다양한 산업에서 적극 활용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프로모션과 경험 설계의 수단으로 적극 사용하고 있다. 세계관과 콘셉트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목적의 단기성 콘텐츠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언론사의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동아일보가 쌓아온 신뢰의 기반은 '공정 보도'와 '사실'에 있다. 같은 인터랙티브 형식과 AI 기술을 사용하더라도, 언론사에서는 그 사용 이유와 방식에 훨씬 더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

이번 작업을 거치며 팀 내부에서 정리된 가이드라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멋진 이미지보다 독자 경험(AX)을 우선한다.

AI 생성 이미지의 시각적 완성도보다 중요한 것은 독자가 콘텐츠를 소비하는 경험이다. 인터랙티브 콘텐츠도 결국 언론사 기사의 한 형식이다. 독자는 무엇보다 기사가 주는 진중함과 사실성을 기대한다. AI 이미지는 화려함이나 그래픽 고도화가 목표가 아니라, 사실을 전달하는 도구로 기능해야 한다.

팀의 AI 이미지 생성은 그래픽적 화려함보다 '불쾌한 골짜기' 같은 경험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얼굴이나 손처럼 어색함이 드러나기 쉬운 요소는 정면 노출을 피하고, 측면 구도나 실루엣, 흐릿한 표현을 사용했다.

AI가 실제 프로젝트에 도입되는 지금, 디자이너는 AI 자체의 활용보다 이 기술이 어떤 프로젝트에 사용되는지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AI는 방법이지 해결책이 아니다. 기술적 완성도보다 독자가 이야기를 따라가는 경험 설계가 우선이다.
둘째, 독자를 속이지 말 것.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데스킹 단계에서부터 반드시 공유하고, 기사 내에 명확히 표기한다. 실제 인물의 얼굴을 참고해 이미지를 생성할 경우에는 취재 대상 또는 유족의 동의를 전제로 한다. '이 이미지는 AI로 생성되었습니다'라는 문구는 선택이 아니라 기본 원칙이다.

셋째, AI 사용의 이유가 분명할 것.

예술적 효과나 화제성을 위한 사용은 배제한다. 사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데 쓰여서도 안 된다. AI는 자료가 없거나 직접적인 시각화가 어려운 상황에서, 독자의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보조 수단일 때만 사용한다.

이 가이드라인은 문서로 먼저 정리된 규칙이 아니라, 실제 제작 과정에서 마주한 판단의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진 기준이다. 그래서 인터랙티브 콘텐츠에서는 기획 단계부터 스토리보드와 함께, AI를 사용할지 여부와 그 범위를 동시에 고민한다.
다시, 독자의 입장에서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만들며 점점 분명해진 생각이 있다. ‘제작’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터랙션은 기술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사회의 이야기를 독자가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지금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와 연결해 이해하도록 돕는 하나의 방법이어야 한다.

우리가 다루는 사건은 결국 사회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또 다른 사회의 개인인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지점에서 멈춰 생각하게 되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인터랙티브 팀은 항상 묻는다. 이 장면에서 독자는 무엇을 이해하게 될까.

그 질문의 끝에서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신기한 기사'보다는 '이해하기 쉬운 기사'에 가까워야 한다는 것. 복잡한 기술이나 자극적인 연출보다, 사회와 사건의 구조를 한 단계 더 쉽게 풀어주는 방식이 필요했다.

치매와 재산 범죄라는 무거운 주제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독자에게 필요한 것은 충격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따라갈 수 있는 경험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붉은 실이라는 메타포를 선택했고, 그 아래에 피해자의 인생을 담을 이미지가 필요했을 때 AI를 사용했다. 윤리적 기준 안에서, 이해를 돕는 방향으로.

2주라는 시간 안에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이미지를 만들고, 인터랙션과 결합해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하는 일은 AI 없이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AI는 어디까지나 도구다.

이 프로젝트를 마치며 남은 질문도 있다. AI 생성 이미지에 대한 독자의 신뢰는 어떻게 쌓아야 할까. 표기만으로 충분할까. 어디까지가 이해를 돕는 보조이고, 어디서부터가 왜곡일까.
답은 계속 찾아가야 한다. 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AI 시대에도 언론사 디자이너의 역할은 변하지 않는다. 진실을 흐리지 않으면서, 독자가 세상의 이야기를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 AI와 함께 일하지만, 결국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며 우리가 다시 확인한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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