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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PC, 모바일은 모두 다르다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을 위한 고군분투
위은지 기자|동아일보 디프런티어센터 2021-10-26 08:09:19
팀원들과 회의 당시 모습. 맨 오른쪽이 필자다. The Original Content팀원들과 회의 당시 모습. 맨 오른쪽이 필자다.
종이에 익숙한 신문기자인 탓일지는 모르겠다. 나는 노트북으로 글을 집중해 읽지 못한다. 한 단어 단어 꼼꼼히 봐야 할 글이라면 꼭 인쇄를 한다. 반면 가벼운 마음으로 빠르게 훑어봐도 될 글에는 굳이 종이를 낭비하지 않는다. 그런 글은 스마트폰으로 읽어도 충분하다.

이전부터 ‘플랫폼에 따라 기사가 달라져야 한다’는 명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명제가 진심으로 와닿은 건 히어로콘텐츠 기사를 준비하면서다. 단순히 신문용으로 압축된 기사를 늘여쓰는 것만이 ‘디지털’은 아니었다. 반대로, 친절한 문체로 쓰인 디지털 기사가 신문지상에 잘 어울리는 것도 아니었다. 취재팀은 동일한 취재 내용을 가지고 신문과 디지털 플랫폼에 맞춰 다른 구성의 기사를 제작했다.
어떻게 다르게 구현했나
‘99℃ : 한국산 아이돌’ 시리즈 5회 ‘아이돌의 시간표’ 신문 기사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라면 하나가 채 다 익지 못하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 영상에는 멤버들을 포함해 모두 96명의 나흘 밤낮이 녹아 있다.”

이 한 문장은 ‘디오리지널’ 사이트에 올라온 디지털 스토리텔링 기사에서 아래와 같이 표현됐다.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면 뮤직비디오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 96명의 이름이 마치 영화 크레딧처럼 올라간다.
신인 걸그룹 ‘트라이비’의 뮤직비디오 현장을 취재했던 취재팀은 3분여의 뮤직비디오(뮤비)를 제작하는데 나흘이나 촬영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심지어 그 나흘도 꼬박 밤을 새다시피하며 촬영해야 했다.

누구나 마우스 클릭 몇 번이면 쉽게 볼 수 있는 뮤비지만, 그 영상을 만들기 위해 약 100명의 스태프가 동원됐다. ‘소비자’로서 뮤비를 대하는 우리의 가벼움과 ‘생산자’로서 뮤비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이들의 무거움이 대비됐다. 이런 느낌을 독자들에게 시각적으로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디지털 기사는 완성된 트라이비 뮤비 재생화면으로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할 것 없이 느껴지는 카메라 앵글 안 모습이다. 그 다음 앵글 밖에 선 스태프들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이들의 이름을 영화 크레딧처럼 보여줬다. 그 어떤 설명보다, 뮤비 제작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은 긴 명단을 보여주는게 독자들에게 이들의 노력을 전달해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TRI.BE(트라이비) '러버덤(RUB-A-DUM)' MV
나중에 생각하면 늦더라
신문에 기사를 쓸 때는 정해진 분량에 맞춰 문장에 정보를 꾹꾹 담아 쓰는데만 초점을 뒀다. 다른 신문보다 더 새로운, 많은 정보를 담는 것이 중요했다. 디지털 세계에서의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하다. 유튜브 영상, 넷플릭스 시리즈, 웹툰·웹소설을 포함한 모든 콘텐츠가 경쟁 상대다. 우리의 기사는 이미 이런 콘텐츠들을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는 소비자들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신문을 뛰어넘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기획하기 위해서는 많은 상상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상상력을 확장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시작부터 ‘디지털 스토리텔링 기사를 제작한다’는 전제는 있었지만 신문 제작 프로세스에 익숙한 기자들에게 어느 단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디지털화를 고민해야 할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어떤 시도가 가능한지 잘 모른다는 점도 있었다. 현장에 있다 보면 출입처 이슈를 따라가는 데 바빠, 또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우리에게 당장 닥친 과제가 아니다 보니 해외에선 어떤 기사들이 제작돼왔는지 충분히 공부한 적이 없었다.

그 핑계로, ‘일단 기사부터 쓰고 디지털은 나중에 생각하자’는 결론을 내렸던 것 같다. '결국 기사가 좋아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었다.

기사가 중요한 것은 맞지만 디지털 플랫폼에서는 기사‘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2회 ‘무대로 가는 길’ 기사를 맡았던 나는 디지털 기사 제작을 위한 시안을 만들기 위해 홈페이지 제작 툴인 ‘윅스’에 가입했다. 완성된 기사 초고를 윅스에 얹기 위해 페이지를 연 순간 막막해졌다. 기사의 첫 화면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영상을 넣을 것인지, 넣는다면 어떤 영상을 넣을 것인지, 기사 제목은 어떤 크기로 어떤 효과를 주어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본문에는 기사 흐름에 맞춰 다양한 사진을 쓰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기사 내용에 어울리는 사진을 고르기도 쉽지 않았다.

이샘물 기획자가 공유해준 ‘영감을 주는 목록’에 있는 외신들의 다양한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 기사들을 살펴봤다. 거기서 뉴욕타임스의 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배경에 동영상이 재생되고 스크롤을 하면 문장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영상 위를 지나가는 형식이었다. 소제목마다 이런 식의 효과를 주면 독자들도 흥미롭게 볼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형식으로 제작하기 위해서는 동영상이 필요했다. 우리가 촬영한 영상이 별로 없었다. 다행히 며칠 뒤 트라이비 쇼케이스 현장 취재가 예정돼 있었다. 기사 초고는 나왔기 때문에 기사에 들어갈 내용 취재보다는 영상을 최대한 많이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쇼케이스 당일 기사의 주인공인 송선과 트라이비의 무대 뒷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계속 스마트폰을 들고 그들의 주위를 맴돌았다.

여러 고민의 결과로 제작된 ‘디오리지널’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를 읽은 기자가 아닌 주변 지인들은 “언론사에서 이런 것도 하느냐”며 신기해했다. 글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그래픽과 스크롤 효과 등이 접목되니 더욱 흥미로워했다.
이렇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채널A 1theC스쿼드팀 김신애 CD가 동영상 촬영 교육을 해주는 모습. The Original Content채널A 1theC스쿼드팀 김신애 CD가 동영상 촬영 교육을 해주는 모습.
늘 지나고 나면 아쉬운 점들이 보인다. 첫 번째로, 기사를 구상하는 단계부터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할지 고민했더라면 더 다양한 재료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2회의 경우에도 초고 완성 후 현장 취재가 추가로 있었기 때문에 동영상이 들어가는 디지털 포맷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 ‘잘 모르겠으니 나중에 생각하자’며 디지털 기획을 뒤로 미루다보면 선택의 폭이 더 좁아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기사를 마치고 나면 활용할 수 있는 재료가 사진밖에 없는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사도 PC와 모바일을 다르게 놓고 봤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디지털’로 묶이지만 노트북 모니터로 보는 것과, 스마트폰으로 보는 것은 또 다르기 때문이다. 2회의 경우에도 PC버전과 모바일버전은 다른 느낌을 준다. 예를 들어 2회에서 적용된 스크롤 시 동영상 위를 가로로 지나가는 제목 효과의 경우 모바일에 최적화되지 않아 일부 스마트폰에서는 버벅거렸다.

구상을 하고도 실행하지 못했던 것도 있다. 취재팀은 아이돌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내지 짧은 영상도 제작하자고 논의했었다. 소재의 특성상 영상으로 제작하면 더 흥미로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하는 채널A 1theC스쿼드 소속 김신애 CD로부터 동영상 촬영 강의를 한 시간 들었다. 영상 편집 툴인 어도비 프리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계정도 부여받았다. 취재팀장은 삼각대와 스마트폰용 짐벌을 샀다.

결과적으로 영상을 제작하지는 못했다. 이 산업의 특성상 고퀄리티로 제작된 수많은 아이돌 관련 영상이 있는데, 여기에서 경쟁력을 갖추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따로 카메라맨이 없기 때문에 취재팀이 직접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었는데, 취재를 하면서 틈틈이 찍다보니 충분히 취재원을 촬영하기 어려웠다. 인터뷰도 스마트폰 마이크로는 수음이 잘 되지 않은데다, 노트북 타자 소리 같은 현장음이 그대로 들어가버렸다. 크게는 영상으로 뭘 보여줄 것인지 구체적인 콘티도 없었다. 첫 시도에서 너무 큰 목표를 잡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틈틈이 촬영한 영상을 디지털 기사에 편집해 활용할 수 있었다. 2회뿐 아니라, 디오리지널 기준 4회 ‘내 주머니 속의 아이돌’ 기사에서도 동영상과 사진을 같이 배치했다. 그럼에도 취재 틈틈이 촬영한 영상을 디지털 기사에 활용했다. 앞서 언급했던 2회 송선편에서 트라이비 멤버들의 무대 뒤 모습을 보여주는 짤막한 영상들을 넣을 수 있었다. 기자가 직접 현장을 촬영하고, 영상 편집까지 했다. 2회 뿐 아니라 전체 기사에 들어간 짤막한 영상들은 다 기자들이 직접 촬영하고 편집했다.
아는 것이 힘이다
그동안 우리는 글만 써왔다. 사진은 사진기자가 찍어주고, 그래픽은 그래픽 기자가 제작해주고, 레이아웃과 제목은 편집기자가 달아준다. 기사 쓰기 외의 일은 기자의 일이 아니었다. 안 하다 보니 할 수 있음에도 ‘못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취재팀은 스스로 디지털 기사에 들어갈 사진을 리사이징하고 영상을 편집했다. 기본적인 동영상 편집은 쉽다. 어도비 프리미어에 영상 파일을 불러놓고, 단축키 ‘c’를 눌러 원하는 부분에서 영상을 자르고 필요없는 토막은 지우면 된다. 그것도 어렵다면 스마트폰 갤러리에서도 손쉽게 영상을 자를 수 있다. 포털에 ‘영상 편집하는 법’을 검색하면 수많은 설명 글이 나온다.

우리는 기사라는 좋은 콘텐츠를 갖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세계에는 좋은 콘텐츠가 더욱 빛나도록 잘 가공하는 사람도 많다. 기자 스스로가 1인 크리에이터가 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적어도 디지털의 세계에서 우리가 무엇을 새롭게 해볼 수 있는지 탐구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의식적인 노력 없이는 세상의 속도를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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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은지 기자
위은지 기자|동아일보 디프런티어센터

2021년부터 히어로콘텐츠와 같은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 기획을 맡고 있습니다. 지면에 비해 제약이 적은 디지털 공간에서 어떻게 독자들에게 기사를 더 효과적이고 흥미롭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