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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도, 세상도 아닌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왜 지금 ‘아이들의 삶’이라는 주제를 골랐나
홍정수 기자|동아일보 히어로스쿼드 2023-12-22 16:16:24
어른이 아닌, 아이의 관점
이번 히어로콘텐츠 취재기자 4명은 모두 아이가 없다.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를 포함해도 마찬가지다. 사진기자와 편집자를 제외하고는 아이를 키워본 적이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기획의 시작부터 끝까지 천착했던 단 한 가지를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아니라 ‘아이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만들자는 생각이다.
유기아동 발생의 시작부터 동행하기 위해 상주를 준비하던 시기.유기아동 발생의 시작부터 동행하기 위해 상주를 준비하던 시기.
남들이 ‘터치’하고 지나가는 것을 파고들 기회
기존 히어로콘텐츠들은 주로 인간의 생사와 직결된 묵직한 소재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왔다. 특히 바로 직전 기수가 내놓은 ‘표류: 생사의 경계를 떠돌다’ 시리즈가 대단히 큰 반향을 일으키던 상황이었다.

직전 시리즈의 색채를 따라갈 수도 있었지만, 비장미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넓혀보자는 데 의견이 모였다. 채널A와 처음으로 공식 협업을 하게된 만큼 , 좀 더 참신하고 사회적인 주제, 비주얼을 강화한 제작에 대한 욕심도 있었다.

7월, 취재팀은 청소년 도박, 노인빈곤, 3D 기피업종, 지하공간 난개발 등 각양각색의 주제들을 넓게 훑었다. 회의를 열 때마다 “이게 진짜 마지막”이라며 매번 새로운 소재들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한 달 만에 고른 주제는 ‘베이비박스 아이들의 삶’이었다.
어쩌면 처음 생각한 것과 정 반대인, 가장 식상하고, 가장 신파적일 수도 있는 소재를 택한 것은 결국 ‘우리에겐 6개월의 자산이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당시는 출생미신고 아동 전수조사 사태의 여파로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출생신고와 베이비박스 관련된 기획기사를 앞다퉈 내놓다가 잠잠해지던 시점이었다. 중대한 이슈가 ‘반짝’ 하고 사라진다는 안타까움이 컸다. 대부분의 기사들이 본질을 짚지 못하고 중복된 내용이라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모두가 ‘터치’하고 지나치는 내용을 누구보다 깊고 끈질기게 다루는 것이 히어로콘텐츠의 목표 중 하나다. 그 기준으로 과감하게 선택한 주제가 아동이었다. 특히 출산율 쇼크 속에서도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소외된 현실이 쉽게 간과되고 있다는 문제의식도 있었다.

주제는 베이비박스 아동에서 유기아동으로, 다시 넓은 의미의 ‘버려짐’을 겪은 아이들로 점점 확대됐다. 그동안은 오직 미혼모, 미혼부, 국가와 정부라는 ‘어른’의 시각으로 다뤄졌던 내용들이다. 우리만은 그러지 말자고 다짐했다. 시각을 달리 하는 것도 혁신인 만큼, 철저하게 ‘아동 중심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이야기가 풀릴 것이라고 회의마다 주문처럼 외웠다.
주사랑공동체의 베이비박스는 건물 안 ‘베이비룸’의 탈의실 겸 창고에 연결된다. 취재진은 상주기간 동안 이곳에서 일손이 부족할 때 아이를 함께 돌보기도 했다.주사랑공동체의 베이비박스는 건물 안 ‘베이비룸’의 탈의실 겸 창고에 연결된다. 취재진은 상주기간 동안 이곳에서 일손이 부족할 때 아이를 함께 돌보기도 했다.
바닥부터 시작해 한땀씩 이어진 섭외
아이템을 정했다는 발표(?)에 주변에선 대부분 ‘아…’ 라는 미적지근한 반응만 돌아왔다.

아기들은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존재다.
어린이들은 보호자의 동의가 없으면 취재가 불가능한 대상이다.
게다가 (현재까지 살아온) ‘삶’이라는 주제는 역동적으로 취재할 현장도 마땅치 않았다.
사진기자는 “지금까지 히어로 취재를 몇 번 함께 했지만 이번이 가장 어려울 것 같다”며 회의마다 우려를 내놨다.

그 어려움은 곧 현실이 되었다. 섭외부터 난관이었다. 섭외가 쉬운 주제였으면 애당초 히어로 주제로 자격미달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 잡았지만, 생각했던 차원 이상이었다.
취재를 진행하면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우리나라 아동보호체계는 전국의 200여개 시군구라는 기초 지자체 단위로 짜여져있다. 그나마도 실제 현실에서의 운영은 사실상 민관에 거의 이관되어있었다.
중앙의 한 곳을 뚫으면 전체의 부분과 연결되는, 취재하면서 늘 익숙하게 대했던 상황과는 전혀 달랐다. 밑바닥부터 시작해야했다.

한 땀 한 땀 사람을 소개받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각종 NGO와 관계기관, 협회와 단체를 두드렸다.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자신의 이야기를 내비친 사람들, 논문을 쓴 사람, 과거 기사에 등장한 사람들에게 무작정 손을 내밀었다. 베이비박스에는 유기아동 보호조치의 모든 프로세스를 보고 싶다며 상주취재를 끈질기게 요청해 허락받았다. 한번도 언론에 제대로 공개된 적 없었던 서울시 아동복지센터 내부까지 들어갔다. 전국의 아동유기 범죄 현장을 하나하나씩 끌어모아 실제 두 발로 방문하고 눈으로 보고 사람을 수소문했다.
추웠던 날씨 서울 중구 명동에서 장노출 사진촬영을 마친 뒤 결과물을 확인하는 홍진환 사진기자와 3회 주인공 박가람 씨추웠던 날씨 서울 중구 명동에서 장노출 사진촬영을 마친 뒤 결과물을 확인하는 홍진환 사진기자와 3회 주인공 박가람 씨
결론을 정해놓은 취재는 하지 말자
우리가 하고자 했던 것은 충격적인 문제를 까발리고 속시원한 대책을 촉구하는 ‘사회 고발성’ 아이템이 아니었다. 한 아이의 생애주기에 따라 독자들이 함께 아이의 삶을 체험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똑 떨어지는 결론을 깔끔하게 내놓기 쉽지 않은 주제였기에 접근방식을 더 고민해야했다. 우리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정답을 우리 손으로 미리 정해놓고 가지 말자. 현실을 있는 그대로 세밀하게 보여주자. 독자들이 몰입하고 공감하고 스스로 느끼게 만들자.”

당초의 계획은 8월에 섭외하고 9~10월에 취재하고 11월에 제작하고 12월에 기사를 쓰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초 기대했던 인물들이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는 일도 많았고, 취재에 응했던 인물들이 여러 이유로 마음을 바꾸는 일들도 허다했다. 섭외작업이 11월까지 이어지며 취재와 제작, 기사작성이 막판에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

전달하고자하는 메시지가 명확한지, 전체 시리즈 안에서 각 회차의 역할이 분명한지, 당사자나 관계자에게 피해가 될 부분은 없는지, ‘아동 중심’의 관점에 어긋난 시각은 없는지, 자체적인 검수 외에도 회사 안팎의 인물들에게 끊임없이 자문을 구했다. 피드백에 따라 밤 9시, 아침 8시에도 ‘긴급 회의’를 열기도 했다.

지면으로 나오는 기사는 한 번 인쇄되면 돌이킬 수 없기에, 최종적인 제작 단계에서 가장 긴장감이 높아졌다.
취재팀이 줄곧 가슴에 품었던, ‘사건은 순간이지만, 아이의 삶은 오래도록 이어진다’라는 생각은 현장기자부터 데스크, 편집기자와 편집국장까지 함께 공유했다. 기사에 나온 아이들이 나중에 자라면서 이 기사로 인해 상처나 피해를 입을 일이 없을지, 관찰자의 피상적 관점이 아닌 아이의 관점이 충분히 담겼는지 의견을 모으고 모아 사진과 제목을 택했다.
18일자 동아일보 1면. 임팩트있는 짧은 문장 안에 아이의 목소리를 담았다18일자 동아일보 1면. 임팩트있는 짧은 문장 안에 아이의 목소리를 담았다
1회 유준이의 여정이 일요일이었던 17일 오후 5시에 온라인에 먼저 출고됐다. 과연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식상하다고 느끼진 않을까, 비난하고 공격하는 댓글이 달리진 않을까, 저녁 내내 긴장감이 등줄기를 타고 내렸다. 독자들의 반응이 하나둘씩 올라오더니 순식간에 늘었다. 걱정스러운 내용은 거의 없었다. 많은 이들이 아이의 여정을 마음속으로 따라가며 먹먹함에 함께 울고, 앞으로 이어질 인생에 응원을 보냈다.
“나에게 가족은 사랑”
이번 취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귀했던 경험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린이날 행사장에서 “오늘 재미있었어요?” 하며 가벼운 질문, 귀여운 대답을 주고받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 초등학생에게 가족과 미래, 결혼을 묻고 중학생에게 ‘자녀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엄마를 이해하느냐’고 묻는 것은 그 무엇보다 조심스럽고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내어준 대답은 늘 상상 이상의 울림을 줬다.

겉보기엔 누구보다 밝고 사랑스럽지만, 친엄마에게 방임 학대를 당해 보육시설에 분리돼 살고있는 10살 남자아이를 만났다. “가족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스케치북에 한 번 글로 써줄 수 있을까요?”라고 묻자, 아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이렇게 썼다. “나에게 가족은 사랑, 꼭 필요한 것이다.”



이 글은 <미아: 품을 잃은 아이들'> 시리즈 기사를 제작한 히어로콘텐츠 7기 팀원들이 쓰는 제작 후기입니다. 어떤 철학과 고민을 담아 기사를 제작했는지 독자 여러분에게 공유합니다. 다음 후기는 26일 오전 10시에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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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수 기자
홍정수 기자|동아일보 히어로스쿼드

10년 동안 정치부, 사회부, 편집부, 국제부를 오갔습니다. 문제를 지적하기는 쉽지만, 널리 알리고 바로잡기는 결코 간단치 않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이야기'의 힘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저희의 이야기가 세상의 품을 좀 더 따뜻하게 데우는 데 기여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