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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용 전화번호’ 62개를 만든 이유

불법사채 조직, 어떻게 추적했나
김소영 기자|동아일보 정책사회부 2024-07-05 10:00:01
"하나하나 확인해 보지 않는 이상 알 방법이 없어요.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겠어요?"

취재 초반, 아이템 주제를 '정식 대부업체로 위장한 불법사채'로 정한 뒤 그 실태를 금융당국 및 수사당국 관계자들에게 물을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플랫폼) 속에 숨어든 불법사채 조직 때문에 수많은 피해자가 고통받는다는 건 정부도 알았다. 하지만 정확히 ‘얼마나’ 문제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플랫폼에 광고 중인 정식 대부업체 중 어느 곳이 불법사채 조직과 연결된 곳인지 알 방법이 마땅히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말을 반복해 들을 때마다 취재팀의 고민은 깊어졌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일일이 확인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면, 우리가 대출 이용자인 척 하나하나 검증해 보자.’
취재기자들은 대출 이용자를 가장해 플랫폼에 광고 중인 정식 대부업체에 전화했다.취재기자들은 대출 이용자를 가장해 플랫폼에 광고 중인 정식 대부업체에 전화했다.
‘위장 취재’ 준비 3단계
정식 대부업체의 불법성을 검증하는 ‘위장 취재’에 앞서 총 3단계의 준비 과정을 거쳤다.

첫째, 어떤 대부업체를 검증할 것인가.

검증 대상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무한정 늘릴 수는 없기 때문에 일정한 기준이 필요했다. 여러 플랫폼에 ‘중복으로’ 광고를 올리는 업체를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광고를 많이 할수록, 그만큼 활발하게 영업을 하는 업체라고 판단했다.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가 25개 플랫폼에 광고 중인 대부업체 818곳을 크롤링(Crawling)했다. 그리고 그중에서 4개 이상 플랫폼에 광고를 게재한 62곳의 업체명, 전화번호, 주소 등의 데이터를 추출했다. 이게 위장 취재의 기반이 됐다.

둘째, 무엇을 불법행위로 볼 것인가.

그다음으로는 대부업체의 어떤 행위를 불법행위로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정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단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현재 영업 중인 특정 대부업체가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고 보도하려면 반드시 근거가 명확해야 하고, 만약 이 근거가 부실하면 애써 위장 취재를 다 해놓고도 기사의 신빙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과 변호사, 불법사채 피해자 지원 단체 관계자 등 전문가 7명의 자문을 받았다. 그 결과 △법정 상한(연 20%)을 초과한 이자를 제안 △대부업 등록번호가 없거나 밝히기를 거부라는 2가지 기준을 세웠다. 이렇게 위장 취재의 뼈대를 만들었다.

셋째, 정식 대부업체와 불법사채 조직 사이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추적할 것인가.

불법성 검증 기준을 만든 뒤에는 테스트를 해봤다. 플랫폼에 광고 중인 업체 중 몇 곳에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대출 문의를 했다. 그 이후부터 여러 피해자들이 말했듯, 발신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전화와 문자가 쏟아졌다. 불법사채 조직과 연결된 업체에는 한 번만 전화해도 그 번호가 여러 경로를 거쳐 조직의 손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이 경로를 역추적하는 건 수사기관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업체 1곳을 검증할 때는 1개의 전화번호만 ‘일회용’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취재팀이 검증하고자 한 업체는 총 62곳. 그렇다면 필요한 전화번호도 62개였다. 동아일보 편집국 소속 기자들에게 알음알음 부탁해 해당 기자의 명의로 정식 개통했다. 투넘버 부가서비스에 번호 변경 서비스까지 이용해 한 사람당 총 5개의 전화번호를 만들었고, 휴대전화 기기는 중고 공기계를 구매했다.
‘위장 취재’에 활용한 휴대전화들‘위장 취재’에 활용한 휴대전화들
매일 다른 사람이 된 3주, 전국을 누빈 3주
3단계 준비를 마친 뒤, 본격적인 위장 취재가 시작됐다. 취재팀은 3주간 출근 직후 매일 다른 사람이 됐다. 나는 '어린이집 교사 박○○', 김태언 기자는 '학원강사 송○○', 서지원 기자는 '헤어디자이너 한○○'였다.

취재를 진행하면서 업체 62곳별로 전화를 건 시점, 전화가 걸려 온 번호, 걸려 온 시점, 통화 내용 등을 공유 파일에 기록했다. 이때 꼼꼼하게 기록해 둔 덕분에 추후 기사를 작성할 때 불법사채 조직과 손잡은 대부업체들의 특성을 유형별로 분석할 수 있었다.

수화기 너머 불법사채업자들은 황당할 정도로 뻔뻔했다. 당연하다는 듯 수천%의 불법 고금리 대출을 요구하고,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미등록 업자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여러 피해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채빚을 탕감받는 조건으로 불법사채 조직에 합류했다가 인생이 뒤바뀐 30대 남성, 사채빚의 굴레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가 마음을 다잡았던 30대 후반의 남성 등… 불법사채업자들의 교묘한 수법에 지금도 누군가의 인생이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한 번 더 마음을 다잡고 취재에 임하게 됐다.

그 결과, 법정 연이율을 지키면서 등록번호도 공개한 업체는 62곳 중 단 3곳뿐임을 확인했다. 이후에는 3주간 전국을 돌며 불법사채 조직과 연결된 업체 36곳을 모두 찾아갔다. 절반이 주소만 있는 ‘유령업체’였고 관할 지자체는 유령업체가 있다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밝혀냈다.
지금도 계속되는 문자폭탄
지금도 내게는 매일 불법사채업자들로부터 전화와 문자가 온다. 위장 취재를 할 때는 취재용 전화번호를 썼지만, 불법사채 조직과 연결된 업체의 대표에게 기자 신분을 밝히고 해명을 들을 때는 내 전화번호를 썼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은 대부업체의 경우 대표의 전화번호와 고객 상담용 전화번호가 같은 곳들이 많다. 대표에게 전화를 건 순간 내 전화번호가 조직의 손으로 넘어갔고, 그들은 나를 기자가 아닌 단순 고객으로 알고 연락해 오는 것이다.

업체 17곳의 대표들에게 연락했을 뿐인데 약 두 달간 받은 문자가 510개에 달한다. 대출 문의 고객의 연락처만 모아서 불법사채 조직에 팔아넘기는 일명 ‘DB(데이터베이스)’ 속에 내 연락처가 포함된 걸로 추정된다.

새벽에도 문자가 계속 와 아예 두달 동안 문자 알람을 꺼놨다. “대출 문의하셨죠?” 묻는 전화도 시도 때도 없이 와서 상당히 불편하기도 했다.

가끔 헛웃음이 나오는 문자들도 있었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5월 7일에는 '카네이션 준비 자금이 필요하면 대출을 받아라’는 문자가 왔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던 6월 15일에는 ‘벌써 한여름 같은데 더위 조심하라’는 말도 함께였다.
불법사채업자로 의심되는 이들에게 받은 광고 문자들불법사채업자로 의심되는 이들에게 받은 광고 문자들
‘대책 없는 방관’은 이제 그만
수화기 너머 불법사채업자들의 모습도 황당했지만, 취재 과정에서 황당함을 느낀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정식 대부업체로 위장한 불법사채’ 문제를 바라보는 정부의 태도가 무척이나 안일하다고 느낀 적이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방법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앞에서는 정식 대부업체라고 광고하고 뒤에서는 불법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서는…사람 속마음이 어떤지는 모르는 건데… ”

정부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불법사채업자들을 상대로 ‘독심술’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정부도 이건 알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 않았던 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끝까지 진지하게 파고든 적이 없었기 때문 아닐까.

보도 이후 정부는 플랫폼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처벌을 강화하며, 피해자에 대한 법률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대책의 방향은 올바르다고 본다. 알맞게 설정된 방향성만큼이나 실제 실행도 제대로 되기를 바란다. 6개월 동안 들여다본 불법사채의 세계는 반드시 그래야 할 만큼, 사람들의 인생을 처참하게 파괴하는 끔찍한 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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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기자
김소영 기자|동아일보 정책사회부

주로 사건사고와 보건복지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빈곤과 질병, 폭력과 같은 사회적 위험을 줄이는 데 보탬이 되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