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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럽지만 찜찜한, 한국 아이돌의 '무엇'을 전할 것인가

퇴짜의 연속, 아이돌 취재원 섭외기
임보미 기자|동아일보 국제부 2021-10-05 09:00:00
그래서 아이돌의 ‘무엇’을 얘기할 것인가?
기초 취재 당시 아이돌 관련 책을 읽고 있는 필자의 모습. The Original Content기초 취재 당시 아이돌 관련 책을 읽고 있는 필자의 모습.
일단 지금의 아이돌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제껏 나온 아이돌 관련 컨텐츠를 꼼꼼히 스캐닝했다. 앞서 나온 콘텐츠들의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K팝이 연습생 발굴부터 훈련, 곡 선정, 작업까지 고도로 전문화된 산업으로 발전했다는 관점, 10대 초반부터 모든 것을 희생한 채 연습생 경쟁에 내몰려야하는 구조와 성공한 뒤에도 인간상품이 되어야 하는 특수성에서 오는 아이돌의 정신적 어려움에 대한 비판적 관점.

취재팀이 아이돌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모두 달랐다. 아이돌이라는 소재를 두고 어떤 점을 조명할 것인가를 두고 다시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수년간 10대를 훈련시키고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춤, 노래를 만들어내는 한국 기획사의 독보적인 역량이 지금의 BTS급 아이돌을 구축한 것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동시에 '그 어떤 나라에서 일면식도 없는 10대를 합숙시켜가며 춤, 노래에 완벽한 ‘인간병기’로 훈련시키는 일을 하겠느냐?'라는 의문도 따랐다.

더욱 딜레마였던 것은 그런 ‘비인간적 훈련’이 아니고서는 지금의 K팝이 경쟁력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동시에 한국의 아이돌을 보며 열광하고 한국말까지 배우는 외국인들을 보며 많은 한국인들이 ‘국뽕’이라는 자조적인 표현 속에서도 가슴이 벅차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가감 없이 보여주기
취재 당시 자료의 일부. 이외에도  방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The Original Content취재 당시 자료의 일부. 이외에도 방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한국 아이돌은 전례 없는 ‘성공신화’를 이루고 있었지만 동시에 아이돌의 삶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찜찜한 부분도 많았다. 수많은 이들이 동경하지만 성공은 어렵고 성공을 한다한들 끝없는 육체적·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았다. 또 대부분의 청춘은 성공은커녕 데뷔에도 이르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현직 아이돌에게 이런 허심탄회한 복합적인 감정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물을 수도, 솔직한 답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때문에 사전취재에서는 전직 아이돌 준비생, 전직 아이돌을 만나 당사자가 보는 ‘아이돌’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묻는 데 집중했다.

전 아이돌그룹 JJCC의 리더 김영진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쏟아 부었던 것에 대해 “저는 용기라고 생각하는데 저희 팀 막내는 낭비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용기라고 생각이 들어요. 버틴 것만으로도…”라고 했다. 한 팀에서도 아이돌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렇게 달랐다.

아이돌을 바라보는 어떤 시선을 부각해 전달할 용기는 없었다. 어차피 일정 정도는 맞고, 일정 정도는 틀린 얘기가 될 것이 뻔했다. 특정 메시지를 강조하기보다 있는 지금의 아이돌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쪽을 택했다.

‘지금 우리와 세계가 환호하는 한국 아이돌은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이를 보고 멋진 열정이라 환호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이를 보고 놀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저 한국의 아이돌은 이런 노력을 거쳐 데뷔를 하고, 데뷔해서도 대부분이 망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이런 노력을 하고, 짧게 타오른 아이돌의 생을 마감한 이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로 했다. 이 같은 단상이 모두 합쳐졌기에 지금의 K팝 아이돌이 있다는 것만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퇴짜의 연속, 아이돌 취재원 섭외기
취재 소재를 ‘아이돌’로 정하고 나니 주변에서는 다들 ‘BTS 만나는 거야?’라고 물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사실 이 소재를 선택한 된 가장 큰 이유도 세계를 흔들고 있는 BTS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전무후무한 ‘지구 최고의 보이밴드’의 삶을 살고 있는 BTS를 취재할 수만 있다면 그만큼 매력적인 스토리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획 단계부터 취재는 2021년 현시점 진행형인 이 이야기를 가장 자세하게 보여줄 수 있는 현역 아이돌의 모습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췄다. 최대한 많이 관찰할 수 있고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K팝 아이돌의 ‘지금’을 보여줄 수 있는 취재원이 필요했다.

최정상의 아이돌이 한 신문사의 장기 취재에 응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섭외시도 자체를 안 할 수는 없었다. 일단 BTS로 한국의 아이돌을 보여줄 수 있을 내용을 정리해 하이브 홍보팀 메일로 보냈다.

다음은 하이브에 보낸 취재 의뢰 메일 전문.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2020년 창간 100주년을 맞은 동아일보가 한 세기 레거시를 바탕으로 차별화된 디지털 콘텐츠를 전달하려는 시도입니다. 뉴스가 스치듯 소비되는 시대에, 저널리즘의 본연에 더욱 천착해 독자의 머리와 가슴에 오래 머물 수 있는 보도를 추구합니다. 그간 ‘증발’ ‘환생’ 등을 제작했고 앞으로도 우리 사회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보도를 이어갈 것입니다.
-관련링크: 동아일보 디오리지널(https://original.donga.com)

▽3기 주제: 아이돌
-BTS를 비롯한 한국 아이돌 그룹의 이름을 빌보드 차트에서 보는 게 어느덧 익숙한 현상이 됐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어떻게 Kpop이 전 세계를 호령했을까’라는 물음에 쉽게 답하지 못합니다. 그간 국내외 언론에서 이러한 주제를 다룬 분석 기사를 내놓긴 했으나 대부분 한정된 학자, 관련 전문가의 멘트에 의존하는 형식이 주를 이뤘습니다. 단군 이래 처음으로 K-pop을 세계의 중심에 선 시대, 그 주체인 K-pop 아이돌 그룹과 이를 육성해 낸 기획사를 중심으로 이 ‘어떻게’를 설명하려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특히 BTS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보이밴드입니다. 저희는 2021년 한국 언론에서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콘텐츠가 BTS가 이끈 K-pop 아이돌이 이룩한 발전에 대해 설명하는 고품질 기사라고 판단했습니다. 나아가 국내 독자들을 위한 디지털, 지면 기사 제작과 동시에 외국어판 기사도 동시에 제작해 세계 속 K-pop의 위상에 맞는 전달력을 갖추도록 할 것입니다.

▽하이브 취재의뢰 내용
#1. HitmanBang과 BTS의 ‘완벽한 컨텐츠’를 좇는 여정
-방시혁 PD께서는 2018년 KBS 명견만리 강연에서 BTS와 걸어온 길을 ‘가장 완성도 높은 컨텐츠를 선보이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해당 프로그램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BTS 신드롬’이라는 성과에 얽매이기보다 전 세계에서 소구력을 가지는 ‘탁월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제작자가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하는 지(세계 음악에서 인기 있는 트렌드를 분석하고), 또 주된 팬층인 Z세대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퍼포먼스, 뮤직비디오를 위해 애쓰는 아티스트와 조력자들의 고심이 밴 ‘장면’들을 직접 볼 수 있어서였습니다.
-같은 강연에서 ‘BTS의 시행착오에서 배우고 이런 것들의 구체화해 우리만의 모델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K-pop이 완성도 높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을 수 있게 기여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덧붙이셨는데요. BTS의 성공공식을 이어가기 위한 하이브의 ‘모델’은 과연 어떤 과정으로 돌아가고 있는 지를 저희가 시간이 되는 한 오래 관찰하는 방식으로(~5월 중순, 길면 6월 초까지) 취재가 가능할지 문의드립니다.
-또 방시혁 프로듀서께서는 2019년 타임지 인터뷰에서 ‘우리 회사는 연습생들에게 아티스트로서의 삶에 대해 교육하는데 많은 투자를 한다. 다만 지침만 주고 그 다음에는 아티스트들이 필요한 걸 요구하도록 여지를 둔다. 그런 진정성이 팬들에게 닿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BTS 성공 이후 연습생 시스템을 더 학교처럼 바꿨다’고 밝히셨는데요. 이런 연습생 시스템은 어떤 식으로 구축돼있는지 팬과 대중들에게 공개해주실 수 있는 부분에 한해 저희가 관찰하고 취재한 내용을 기사로 전달할 수 있으면 합니다. 같은 타임지 인터뷰에서도 언급하셨듯 ‘락스타 내러티브’를 강조하는 서구 스타시스템 환경에서; 또 국내에서도 한국 연습생 문화를 톱다운식, 공장식으로 폄하하는 인식이 있는데 지금 세계 무대를 노리는 연습생-기획사는 어떻게 꿈을 준비하고 있는 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은 이러한 편견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2. BTS: 나를 찾는 여정
-‘진정성 있는 이야기’가 결국 전 세계를 통틀어 BTS 팬덤을 이끈 힘입니다. 그간 BTS가 노랫말, 인터뷰 발언, 블로그 글 등을 통해 남긴 메시지들은 곧 BTS 멤버 개개인이 걸어온 인생이자 성장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짧지 않은 시간인 만큼 멤버들의 진솔한 고민이 녹아있는 이 방대한 양의 텍스트를 시계열적으로 구성한다면 ‘자아’를 찾아 성장하는 모습을 따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보도방식
-6월경 신문지면 및 온라인에 시리즈를 연재 예정입니다. 각 편마다 글(기사)와 사진, 동영상, 그래픽 등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구현합니다.
-기존 한국 언론의 기사처럼 단발성 접촉·기사출고가 아닌 장기간 여러 차례 관찰, 취재하며 취재원과 기사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깊은 기사를 쓰는 저널리즘의 원칙을 기본으로 합니다. 치열하게 노력하는 제작자; 아티스트의 익숙한 ‘스토리’를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 목표입니다. 정확한 팩트, 워딩 인용을 기본으로 하며 취재 및 기사 작성 과정에서 취재원과 긴밀히 소통한 것입니다.

▽‘윈윈’ 포인트
-히어로콘텐츠는 동아일보에서 모바일 환경에 익숙한 시대에 맞춘 디지털 스토리텔링 기법을 바탕으로 고품질 저널리즘을 구현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해당 컨텐츠는 동아일보 자체 페이지는 물론 동아일보의 주요 포털(네이버, 다음) 뉴스 서비스 메인 화면에 지속적으로 노출됩니다.
-취재원(아티스트; 제작자) 또한 주요 타깃이 될 기존 팬층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k-pop에 관심이 덜한 일반 대중에게 인지도를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팬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인 아이돌을 둘러싼 호기심 해소, 관심 증대를 가져올 수 있고 별 관심이 없거나 비판적이었던 일반 대중의 경우 k-pop에 대한 막연한 왜곡된 인식, 편견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동아일보는 평소 아이돌을 밀착 취재하는 매체가 아니다. 히어로팀 기자들 역시 각각 산업부, 스포츠부, 국제부, 사회부 소속이었다. 기획사 입장에서는 기존에 형성된 신뢰관계라는 게 전무한 기자들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기자의 메일은 기획사 입장에서는 사실상 ‘스팸메일’과 다를 게 없다. 때문에 솔직한 진정성을 앞세워 다가가는 수밖에 없었다. 대체 지금 K팝 아이돌은 어떤 치열함의 세계에서 생산되고 있는지에 대한 솔직한 궁금증, 기획의도를 모두 적었다. 깊이 있는 보도를 위한 협조를 구한다는 간곡한 편지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기자의 장문의 읍소(?)에 홍보팀장은 최소한 ‘해당부서 문의 후 회신드리겠다’는 답변을 해줬다. 이후 하이브측에서 실제 얼마나 진지하게 내부 논의가 이어졌는 지는 알 길이 없다. 결국 하이브 측에서는 아티스트 및 방 의장의 직접 취재는 ‘어렵다’는 답을 줬지만 그 속에는 적어도 난처함과 미안함이 함께 담겨있었다. 아무래도 아이돌을 다루는 기사다보니 BTS가 언급되는 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하이브 측에서는 내용 확인, 자료 요청, 관계자 연락처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해줬다.
두드려라, 열릴 때까지
당시 취재원에게 보낸 섭외 요청 이메일. 당시 취재원에게 보낸 섭외 요청 이메일.
취재팀의 과제는 ‘어떻게 BTS 없이 BTS로 축약되는 K팝 아이돌의 ‘지금’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가 됐다. 한국 아이돌 업계를 대표하는 기획사인 SM, JYP에도 홍보팀장에게 직접 장문의 맞춤형 이메일을 보냈으나 직접 취재는 응할 수 없다는 답은 같았다. 외려 “섭외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을 함께해줬다.

취재가 아닌 조언만 하겠다는 단서를 걸고 취재팀을 만나준 이경희 YG 전 이사 역시 아이돌 산업 전반에 대한 설명을 해주며 도움을 줬으나 아이돌 섭외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부분이냐는 질문에는 “기획사에서 오픈하기 꺼려할 것이다. 그나마 신인이면 모르겠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4대 기획사에 차례로 ‘맞춤형 기획안’을 공들여 적어보냈지만 차례차례 어렵다는 연락을 받았다. 결국 전략을 수정했다. 1)어느 정도 이 시장에서 인지도가 있는 기획사이면서 2)취재에 응해줄 요인이 있는, 데뷔한지 얼마 안 된 신인그룹이 있거나 곧 컴백을 앞둔 아이돌이 있는 곳을 찾아 3)홍보 담당자에게 먼저 전화를 해서 취지를 설명하고 자세한 내용을 이메일로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중소형 기획사 4곳을 일차적으로 추렸다. 먼저 대표전화로 걸어서 홍보 담당자를 연락받고, 취지를 설명한 뒤 서면으로 구처적인 취재계획서를 보냈다. 대표전화로 연락이 닿지 않은 소속사는 제외했다.

홍보 담당자에게 사전 연락 후에 문의를 하니, 적어도 며칠 뒤 그들이 ‘어렵다’는 회신은 해줬다. 이쯤 MLD엔터테인먼트의 남자 아이돌 T1419의 섭외가 결정됐다. 여자 아이돌을 추가 섭외하기 위해 데뷔 3년차 팀이 있는 기획사와 곧 데뷔하는 팀이 있는 기획사에 연락을 했다. 고맙게도 데뷔 3년차 여자 아이돌 기획사에서 서면 인터뷰는 가능하다고 답을 해줬다. 하지만 서면인터뷰로는 취재팀이 원하는 수준의 깊은 취재가 나올 수 없어 보류했다.

계속 거절을 당하던 중 취재 문의를 했던 한 남자 아이돌 팀 홍보를 담당하는 홍보 대행사 측에서 전화가 왔다. 남자 아이돌 취재는 어렵다고 하면서 “혹시 여자 아이돌도 취재하시냐”고 물어왔다. 본인이 홍보를 담당한 아이돌 중 트라이비라는 팀이 있는데, 신사동호랭이가 프로듀싱을 맡고 있다고 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한 번 문의해봐달라”고 부탁을 했다. 다음날 오전, 기획사와 협의를 잘 마쳐서 취재가 가능할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진정성에 온 응답
기사에 소개된 두 팀은 히어로팀의 기획 취지에 공감하고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취재를 오픈 하는데 가장 먼저 동의한 남자·여자 아이돌 그룹이었다. 취재팀은 사전 미팅에서 2021년 세계의 중심이 된 K팝 아이돌 산업은 대체 왜 이렇게 치열한 연습생의 시기를 거쳐야만 설 수 있는 무대가 된 건지, 적당히 하면 도무지 경쟁력이 없는 곳인지, 성공보다는 실패가 훨씬 많은 곳에 대체 누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도전을 하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취지를 솔직하게 밝혔다.

물론 기사 기획 초기단계 때는 정상을 경험해 본 아이돌 스타도 섭외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래서 계속 섭외를 시도했었는데 HOT 출신 토니안이 취재 말미에 섭외가 됐다. ‘이름값’만 봤다면 기존에 섭외된 아이돌 신인 두 팀보다는 확실히 토니안의 파워가 셌다. 하지만 인터뷰 한 번만으로는 한 달 넘게 취재한 현역 아이돌의 생생한 현장을 뛰어넘을 기사를 쓸 수 없다는 판단에 기사 전체에서 할애한 분량은 이름 없는 신인 아이돌 기사가 더 컸다.

다만 30분 인터뷰를 조건으로 만났던 토니안은 1시간 30분 넘게 진솔한 이야기를 해줬다. 인터뷰 전 간단히 사전 질문지를 전달했었는데 인터뷰 당일 취재팀과 마주 앉은 그는 “질문들이 신선했다. 생각을 많이 해보게 하는 질문이었다”고 첫마디를 꺼냈다. 이제껏 수도 없이 많은 인터뷰를 해봤을 테지만 그 역시 아이돌 스타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이야기를 물어본 인터뷰는 흔치 않았던 것이다. 이제껏 상품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아이돌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아이돌 스타로 살면서도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돈 많이 벌면서 유세냐’ ‘힘든 것 모르고 했냐’는 날 선 악플을 달기는 쉽지만 이들이 겪는 진짜 어려움이 뭔지를 알기는 어렵다. 토니안은 1세대 아이돌로서 후배들이 겪을 어려움에 공감했고,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을 기꺼이 이야기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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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는점 100도를 향해 마지막 1도를 끌어올리려 분투하는 ‘99도 한국산 아이돌’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2021.07.19~07.23·시리즈 6화·히어로 콘텐츠 3기
임보미 기자
임보미 기자|동아일보 국제부

흑과 백, 애와 증, 너와 나. 세상은 본디 이런 씨줄과 날줄이 얼키고 설킨 원인이자 결과 아닐까요? 엉킨 실을 단칼에 잘라내는 기사는 우리의 세상을 쪼그라뜨립니다.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매듭을 두고 씨름하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 숨겨진 아름다움과 비극을 뉴스가 이렇게나 일상적으로 태평하게 지나칠 수 없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