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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한 초콜릿은 이게 아니었는데

보이지 않는 1%는 어디에
송은석 기자|동아일보 사진부 2021-10-19 08:08:48
히어로콘텐츠 사진 취재를 3번째 맡았다. 의욕적으로 시작해 만족했던 부분도 있고 아쉬움도 있다. 하나의 주제를 갖고 다양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건 정말 좋았다. 그런데 장기 기증이나 스스로 세상과 단절을 선택한 사람들처럼 '과거형'이 된 주제를 촬영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3기는 '현장성' 있는 주제가 되길 원했다.

그래서 취재 기자들과 기나긴 논의 끝에 결정된 건 '아이돌'이었다. 취재 기자들은 BTS와 K팝 비즈니스를 연관시켰지만 사실 나는 그런 명분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현장성과 초상권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취재를 원했다. 그리고 '종이신문에 저연령층의 독자 유입이 가능하지 않을까?'같은 경영진스러운 생각도 해봤다.
트라이비 현장 취재 당시 필자(맨 오른쪽). The Original Content트라이비 현장 취재 당시 필자(맨 오른쪽).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하리라
의욕이 앞섰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됐던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를 보면서 감을 잡았다. 전역 후 오랜만에 여성 아이돌의 춤추는 모습을 봤다. 핑크 뒷면의 블랙에 초점을 맞췄던 그 다큐멘터리처럼 방송을 통해 보여지는 아이돌 모습 이상을 취재하는 게 목표였다.

급 결론을 내자면 이런 내 기대감은 취재가 시작되면서 와르르 무너졌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지상파와 케이블 가요 무대는 취재가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소속사에서 아이돌의 평소 모습을 촬영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어쩔 땐 약속을 하고 갔음에도 이미 상황이 종료돼 허탕을 쳤다. 중앙 일간지의 영향력이 예전과 다르다는 건 알았지만 이번에 뼈저리게 느꼈다. 원래 예상했던 장면들은 아름답고 좋은 순간만 편집돼 아이돌 SNS 계정에 업로드되고 있었다. 언론이 아니어도 그들은 스스로를 알리고 있었다.

결국 내 카메라에 대부분 앨범 커버, 뮤직 비디오 촬영, 쇼 케이스 같은 세팅된 모습들만 담겼다. 단기간 취재원들과 친해지지 못했던 내 능력도 부족했다. 내가 원했던 사진은 씁쓸함이 가미된 다크 카카오였지만 촬영한 건 그냥 달콤하기만 한 초콜릿이었다. 맛있지만 깊이는 부족했다. ‘광고 기사냐?’던 익명의 댓글이 아직도 묵직하게 가슴을 때린다.
그들의 노력은 '진짜'
그렇다고 그들의 열정을 보지 못했던 건 아니다. 남자그룹 T1419를 처음 만난 건 해가 뜨기도 전 새벽 6시, 청담의 한 미용실이었다. 바로 전날 밤까지 안무 연습을 마친 뒤라 멤버들은 피곤해 보였다. 그러나 초췌한 모습은 화려한 메이크업으로 가려졌고, 의상을 갈아입자마자 힘차게 다음 일정으로 이동했다.

비대면 팬사인회 취재 땐 사실 멤버들이 형식적으로 대할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면서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자리 한번 일어나지 않고 팬 한 명 한 명 대화를 나눴다.

그저 학생들 같았던 여자그룹 트라이비의 첫 느낌은 사실 아이돌이 아니라 아이들 같았다. 실제로 송선을 제외한 멤버들 모두 10대였다. 그러나 뮤직 비디오 촬영 날 최고의 장면이 나올 때까지 수십 회 똑같은, 파워풀한 춤을 추던 그녀들은 프로였다. 춤을 추다가 발목을 접지르고, 무릎이 까져도 오케이 사인이 나올 때까지 그녀들은 멈추지 않았다.
T1419의 새벽을 취재하던 날 현장. The Original ContentT1419의 새벽을 취재하던 날 현장.
화려한 조명 뒤의 서포터들
유감스럽게도 트라이비 신곡 발표 쇼케이스 행사 역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심각해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넓은 콘서트 홀에 팬들은 물론이거니와 취재진 수도 적었다. 그러나 어두운 2층 객석에서 부모님들은 일찍이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딸들을 자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촬영 허가가 나지 않아 아쉬웠다.

그들을 지원하는 수많은 매니저를 비롯한 직원들의 지원 또한 인상적이었다. 다음 스케줄로 이동하기 위해 운전부터 모든 일정을 총괄하는 매니저는 물론 아이돌과 똑같이 새벽에 출근해 자정이 넘을 때까지 일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촬영한 영상을 보면서 동작을 수정해주는 안무 지도가 등 아이돌이 최고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있었다. 케이팝 비즈니스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히어로콘텐츠 취재를 마친 뒤 일상으로 돌아왔다. 비가 오면 비를 찍고 섭씨 40도가 넘는 날씨엔 아스팔트에 엎드려 아지랑이를 찍는다.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는 시민들을 촬영하고 지친 의료진을 보며 감동적인 순간이 나오길 기다린다. 늘 하던 대로 관성적으로 취재를 하던 도중 문득 트라이비T1419를 떠올린다. '지금의 나는 그들처럼 100도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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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석 기자
송은석 기자|동아일보 사진부

고등학생 때부터 주변을 사진으로 담는 걸 좋아했습니다. 대학생 때 사진 동아리와 학보사를 거쳐 사진기자가 됐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최신 카메라와 월급을 받고 있어서 행복합니다. 세상도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좋은 사진을 찍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