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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없이 인터랙티브 기사를 구성하려면

‘미아: 품을 잃은 아이들’ 인터랙티브 어떻게 기획했나
위은지 기자|동아일보 디프런티어센터 2023-12-28 10:12:20
히어로콘텐츠 7기 팀은 친부모에게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버려진 아이들을 취재했다. 많은 아이들을 만났지만, 조유라 기자가 앞서 <인사이드>에서 언급했듯 이들의 신원을 구체적으로 공개하기 어려웠다. 당연히 그들을 찍은 사진이나 영상도 거의 없거나, 있어도 보도에 활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취재 기자들과 인터랙티브 기획 아이디어 회의하는 모습취재 기자들과 인터랙티브 기획 아이디어 회의하는 모습
보통 인터랙티브 웹은 사진과 영상을 주 재료로 제작하기 때문에 어떤 멀티미디어 재료를 활용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됐다. 여러 차례 회의를 거듭한 끝에 일러스트와 취재원의 음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인터랙티브 기사를 기획해보기로 했다.
아기가 유기됐던 장소를 찾다
12월 17일 보도한 <그 아이들이 버려진 곳> 인터랙티브 기사는 영아 유기 사건이 발생했던 장소와 사건 내용을 보여준다. 아이가 귀한 저출산 시대에도 어떤 아기들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길가나 화장실, 계단에 누워있어야 했다는 사실을 새로운 형식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아이들이 침대 대신 누워있었던 그 장소들을 찍어 독자들에게 보여주기로 기획했다. 2017년부터 올해 11월까지 선고된 영아 유기 관련 판결문 62건을 모두 살펴봤다. 이 중 직접 현장을 방문해볼 만한 사건을 추렸다. 실제 범행이 이뤄진 위치를 확인했고, 직접 방문해 사진을 촬영하고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지 취재했다. 수도권부터 부산, 충남 보령, 강원 고성 등 19곳을 다녀왔고 그 중 6곳을 추려 자세한 사건을 소개했다.

필자도 강원도 고성에 있는 공중 화장실을 다녀왔다. 2021년 말 이 곳 화장실 변기 안에 태아가 버려졌다. 친구들과 고성 여행을 왔던 20대 여성이 화장실 변기에서 출산을 했고, 태아는 1시간이 지나서야 동네 주민에게 발견됐다. 아이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평생 장애를 갖고 살아가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필자가 방문했던 강원도 고성의 한 화장실. 평일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유동 인구가 거의 없었다.필자가 방문했던 강원도 고성의 한 화장실. 평일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유동 인구가 거의 없었다.
착점은 좋았지만 막상 사진을 모아보니 문제가 보였다. 이미 사건이 끝난 지 오래된 지라 사진 속 장소들은 그저 평범해 보였다. 당연히 당시 상황을 재현해 찍을 수도 없었다. 사진의 색감이나 구도도 제각각이었다. 원본 사진을 그대로 모아 보여주면 오히려 독자들에게 물음표를 남길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먼저 시각적인 통일성을 주기로 했다. 장소들을 흑백 톤의 일러스트로 옮겼다. 현장에서 만난 목격자의 증언과 판결문 내용에 기반해 해당 장소에서 아이가 놓여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에 아이를 그려넣었다. 이 곳이 그림 속 상상의 장소가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곳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실사도 흑백톤으로 변환해 같이 사용하기로 했다.
실제 법당 내부 사진(왼쪽)과 이를 흑백 톤의 일러스트로 그린 결과물(오른쪽).실제 법당 내부 사진(왼쪽)과 이를 흑백 톤의 일러스트로 그린 결과물(오른쪽).
다음으로 독자들이 해당 장소를 자세하게 살펴보게 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지점에서 독자에게 인터랙션을 요구하기로 했다. 평범해보이는 이 골목길에 아기가 버려져있었다고, 불빛을 비추어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놓여 있는 아기를 찾아봐달라고 요청했다. 음성 버튼을 켜면 아이의 울음소리도 들을 수 있게 했다. 아기를 발견해 누르면 사건의 개요가 나오도록 구성했다.

이 기사가 나가고 난 뒤 ‘소름끼친다’ ‘무섭다’는 반응이 많았다. 최근 영아 유기 의심 사건이 언론에서 자주 다뤄지다보니, 어쩔 수 없이 이러한 뉴스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고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한 건 한 건 결코 가볍게 넘길 뉴스가 아닌, 아주 끔찍한 범죄라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그 때의 기억
<사운드트랙: 품을 잃은 아이들> 기사는 <그 아이들이 버려진 곳> 기사에 비해 뒤늦게 기획됐다. 원래는 어렸을 때 친부모를 떠나 자라야만 했던 성인의 이야기를 일러스트를 활용한 스토리북으로 구성해 보여주려고 했다. 그러나 취재 상황 상 스토리 주인공을 선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대신 아이, 성인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모아서 보여주기로 했다.

친부모의 사랑 없이 자라는 삶은 어떤 삶일까. 쉽지 않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상황을 상상하기 쉽지 않다. 이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이들이 겪은 일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모았다. 아빠한테 맞고, 겨울에도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 집에 사는 것이 힘든 상황인 줄 몰랐던 민정 씨(가명)의 이야기. 처음으로 할머니가 본인에게 선물을 사줬는데, 그 선물이 보육원을 보내기 전 주는 마지막 선물일 줄 몰랐던 승우 씨의 이야기.

가장 마음을 울렸던 건 첫 번째 앨범 첫 번째 트랙에 등장하는 정연, 정훈(가명) 남매의 이야기였다. 정연, 정훈을 포함해 8남매를 키운 엄마는 자녀들을 ‘쓰레기집’에 방임했고, 두 남매는 현재 보육원에서 살고 있다. 방임을 당하면서도 15살 정연이는 엄마가 속상해할까 봐 이유도 묻지 못했다. 이들 남매는 오히려 엄마한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미안해했다.

일화를 텍스트로만 보여주기보다는, 이들의 목소리로 직접 들려주고 싶어서 인터뷰를 녹음했다. 힘들었던 기억을 이야기하다보면 감정이 북받치지 않을까 했는데 녹음파일 속 이들의 목소리는 대부분 담담했다. 친부모에게 맞았고, 방치당했고, 버려졌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거친 풍파 속에서 깎여 나가야 했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취재원들의 ‘목소리’가 주인공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음악 어플 GUI를 차용해보기로 했다. 자세한 디자인 과정은 내용은 여하은 디자이너의 <인사이드>에서 읽어볼 수 있다.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이번 인터랙티브를 기획하며 ‘사용성 개선’에도 중점을 뒀다. 우리의 인터랙티브 기사는 독자에게 상하 스크롤 외에 추가적인 액션을 요구하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불편함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동안의 고민이었다. 생소할 수밖에 없는 인터랙티브 기사를 덜 불편하게 경험하도록 코치마크나 버튼의 위치에 신경을 썼다.

모바일로 소비하는 독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 모바일 디자인을 먼저 시작했다. 모바일은 화면이 작기 때문에 인터랙션 요소를 다양하게 배치하기 어려워 PC 디자인을 먼저 시작해왔다. 그렇다보니 나중에 모바일 화면으로 옮길 때 사용성에서 다양한 이슈가 발생해왔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디자인 진행 순서를 바꿨다.

모바일 와이어프레임을 잡고 사내에 다양한 연령대의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사용성 테스트(UT)를 진행했다. 예를 들어 <그 아이들이 버려진 곳> 기사의 경우 장소를 가로로 배열할지 세로로 배열할지, 판결문의 원본을 열어볼 수 있는 버튼을 제공할지 말지 등 디테일한 부분을 검증하며 디자인을 수정해갔다. 매체 특성상 40대 이상 독자들이 많이 이용하는데, 이들이 모바일에서 큰 텍스트 설정을 해두었더라도 기사를 읽는데 문제가 없을지 QA 단계에서 꼼꼼하게 살폈다.

그동안 보도된 인터랙티브 기사들의 체류 시간(세션당 평균 참여시간)을 보면 모바일 이용자의 체류시간이 PC 이용자 체류시간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이번에 보도한 두 기사의 경우 두 기기의 체류 시간이 거의 비슷하게 나왔다.
아쉽게 만들지 못한 콘텐츠
늘 보도가 끝나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 중 하나는 ‘쉐어러블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실현하지 못한 것이다. 한창 유행했던 MBTI 테스트 형식을 차용해 독자들과의 접점을 넓히는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실제 기획도 시작했다. 하지만 무거운 주제를 가벼운 형식 안에 넣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위의 두 인터랙티브 기사를 만드는 데도 시간이 부족해 결국 흐지부지됐지만, 다음에는 독자들이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싶다.
쉐어러블 콘텐츠 기획 초안. 결과물로 이어지지 못해 아쉽다.쉐어러블 콘텐츠 기획 초안. 결과물로 이어지지 못해 아쉽다.
벌써 2년도 더 된 글인데, 히어로콘텐츠 3기 취재를 마치고 이런 <인사이드>를 썼다. 나름 비장한 문장으로 마무리했다. ‘의식적인 노력 없이는 세상의 속도를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고 말이다. 세상의 속도는 KTX처럼 빠르게 가는데 나의 노력은 고작 달리기 수준밖에 안되는 거 같아 답답하기도 하다. 새해에는 더욱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콘텐츠를 기획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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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은지 기자
위은지 기자|동아일보 디프런티어센터

2021년부터 히어로콘텐츠와 같은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 기획을 맡고 있습니다. 지면에 비해 제약이 적은 디지털 공간에서 어떻게 독자들에게 기사를 더 효과적이고 흥미롭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